세상은 여전히 살만하다
아침의 버스, 작은 실수 하나가 거대한 무대가 된다. 지갑을 두고 온 사실은 사소했지만, 기계음 “이용할 수 없는 카드입니다”는 단번에 나를 낯선 장면 속으로 끌어넣었다.
기사님의 눈빛은 냉혹한 심판 같았고, 뒷자리의 시선들은 상상 속 군중의 재판관 같았다. 그 순간, 나는 한없이 작은 존재가 되었고, 땀구멍은 마치 부끄러움의 문처럼 모두 열려버렸다.
그러나 낯 모르는 여성의 손길이 그 길기만 할 것 같았던 장면을 갈라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결제 버튼을 눌러주고, 작은 돈과 함께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는 문장을 남겼다. 제가 좋아하는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영화 〈앙〉에서 들었던 대사처럼 ― “세상은 여전히 살 만하다”는 그 고백은, 불완전한 인간의 서투름을 껴안아주는 시적 선언이었다.
하지만 곧 기사님의 질문 ― “지금 대신 차비를 내주시는 겁니까?” ― 는 다시 현실의 날카로운 각을 드러냈다. 친절을 기대하던 마음은 무너졌고, 나는 천사와 악마를 동시에 본 듯한 당혹에 잠겼다. 레비나스가 말한 “타인의 얼굴은 나의 책임을 부르는 목소리”라는 철학적 문장은, 바로 그 모순된 순간을 설명한다. 얼굴은 언제나 환대와 거절, 구원과 심판을 동시에 품는다.
실수는 인간을 드러낸다. 그것은 불완전함의 낙인이 아니라, 우리를 서로의 존재로 열어주는 틈이다. 누군가의 친절은 그 틈으로 빛을 들여보내고, 누군가의 차가움은 그 빛의 그림자를 또렷하게 만든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눈빛을 기억하고, 어떤 목소리에 응답하는가이다.
그날의 나는 알게 되었다. 실수를 통해서야 비로소 세상의 결은 드러난다는 것을. 천사와 악마는 멀리 있지 않다. 늘 우리의 하루, 우리의 버스 안에, 우리의 불완전한 선택 속에 함께 앉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