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리가 낚시를 물은 적이 있던가요?
내 빛나던 시절의 기억을 가로채 두고 싶어서,
나는 글을 쓴다.
기억은 사라짐의 가장자리에서 빛난다.
그 빛은 오래된 물결처럼 흔들리며,
손끝에 닿지 않는 곳에서 나를 부른다.
존재한다는 것은 단순히 거기에 머무는 일이 아니다.
시간 속에서 흘러가고, 관계 속에서 흔들리며, 공간 속에 스며드는 일이다.
나는 한때 그렇게, 흔들리며 존재했다.
계곡의 물소리, 쉬리의 은빛 몸짓,
낚싯줄 끝에서 미세하게 떨리던 긴장.
차가운 물결 속에서 터져 나오던 웃음.
그것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내 안에서 여전히 흐르고 있다.
나는 붙잡을 수 없음을 알면서도 기록한다.
기억은 흘러가고, 기록은 그 흐름 위에 작은 돌 하나를 놓는다.
그 돌 위에 잠시 발을 올리고, 나는 다시 그 여름의 나를 만난다.
계곡은 물소리로 살아 있었다.
운장산(구절산) 자락에서 흘러내린 물은 새터를 지나고 수다리를 건너 말바위에 부딪히며 길을 바꾸었다.
물은 멈추지 않았고, 멈춘 적도 없었다.
그 자리에 이름들이 남았을 뿐이다.
수다리, 잿덤, 생이짓꺼리, 봉화탑
말바위 아래에서는 숨을 고르고, 숲정이와 비룡바위에 걸터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도깨비둠벙과 택기네 방앗간은
마을의 낮은 심장처럼
궁금하고 무서운 이야기들을 품고
간질거리며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그 여울 쉬리는 물살을 타고 은빛 몸을 뒤집었다.
돌 틈에 숨어 있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번뜩이며
다시 나타났다.
햇빛은 비늘 위에서 부서졌고,
그 움직임은 빠르고 짧았고,
머뭇거림 없이 고요했다.
쉬리는 계곡의 일부였고,
계곡은 쉬리의 몸이었다.
나는 물가에 앉아 낚싯대를 들었다.
찌는 물살을 따라 흔들리며 흘러갔다.
어떤 날은 삼거리 노적봉을 지나,
더 멀리 운일암 쪽까지 나아가기도 했다.
물길이 갈라지는 곳,
소용돌이가 생기는 자리.
그곳에서는 더 오래 숨을 참고,
더 조심스레 찌 끝을 바라봐야 했다.
작은 떨림이 먼저 왔다.
가슴이 먼저 반응했고,
손끝이 그다음이었다.
낚싯줄이 당겨질 때,
그것은 내가 얻은 것이 아니라
계곡이 잠시 허락한 교감처럼 느껴졌다.
낚시가 끝나면 우리는
곧바로 물속으로 들어갔다.
차가운 물결이 몸을 죄었고,
숨이 막힐 만큼 시렸지만
웃음은 물 밖으로 먼저 튀어나왔다.
바위에서 뛰어내려 잠수하고,
물속에 몸을 맡긴 채 떠다녔다.
그 수영은 기술이 아니었다.
방향도, 목적도 없었다.
몸은 물에 맡겨졌고, 마음은 세상에서 풀려났다.
말바위에 올라 몸을 말렸다.
젖은 살갗 위로 바람이 지나갔다.
우리는 바위 위에 누워 하늘을 보았다.
바람이 몸 위에 잠시 머물다 갔다.
그 순간, 말은 필요 없었다.
돌은 시간을 가두고 있었고,
우리는 그 위에 놓여 있었다.
그때 이름들이 떠올랐다.
찬동이, 경남이, 동진이
형민이, 동신이, 기성이, 대선이
지선이, 경렬이, 택기, 수남이, 순천이
인숙이, 막내
누가 먼저 헤엄쳤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여름, 우리는 모두 같은 물에서 나왔다.
찔레꽃 향기가 계곡 가장자리를 채웠고,
할미꽃은 고개를 숙인 채 계절을 보내고 있었다.
술패랭이와 망초꽃은 자기 몫의 빛을 조용히 내고 있었다.
그 여름날,
쉬리의 헤엄과 내 손끝의 떨림,
물속에서 터져 나오던 웃음은
하나의 풍경이 되어 지금도 기억 속에서 흔들린다.
그곳에서 나는 세계와 하나였고,
세계는 내 안으로 흘러들어 왔다.
벌뜸, 골뜸, 고래실, 웃진등
아이들은 떠났다.
나는 기억 쪽에 더 오래 머문다.
계곡은 멀어졌다.
기억은 멈추지 않았다.
기억은 매번 새롭게 구성되며 자란다.
계곡은 또 멀어졌다.
쉬리는 이제 기억 속에서만 헤엄친다.
낚싯줄 끝의 떨림은 마음속에서만 되살아난다.
차가운 물결은 추억 속에서만 출렁인다.
그러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은 또 다른 방식의 존재다.
몸은 늙었지만, 기억 속의 나는 젊다.
시간은 흘렀지만,
기억 속의 나는
그 여름에 여전히 누워 있다.
말바위 위에 몸을 붙이고 하늘을 본다.
바람이 지나가고, 나는 그것을 막지 않는다.
존재는 지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기억 속에서도 존재는 숨을 쉰다.
나는 그 기억 안에서,
매 순간 다시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