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 주천 대불리, 아득히 불안했던 시절
비포장 먼지 풀풀 날리던 주천 대불리의 신작로.
그 길에서 나는 이름보다 먼저 부서지던 햇볕과 바람의 소리를 몸에 들였다.
이 글은 한 아이가 고독과 나란히 건너야 했던 푸른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이름을 갖기 전의 풍경
길은 말하지 않는다.
말을 하지 않기에, 길은 오래 남는다.
비포장 먼지 풀풀 날리던 신작로에서
나는 아직 ‘나’라는 단어를 갖기 전의 몸이었다.
햇볕은 부서져 있었고,
바람은 소리로만 존재했다.
그 모든 것은 설명되지 않은 채
몸속으로 들어와 앉았다.
아이에게 고독은 감정이 아니라 환경이었다.
혼자라는 뜻이 아니라
세계와 직접 맞닿아 있다는 뜻에 가까웠다.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이름으로
나는 그 길을 건너고 있었다.
비포장 먼지 풀풀 날리던 신작로길.
그 길은 지도보다 먼저 나를 배웠고,
나는 이름보다 먼저 그 길을 건너고 있었다.
발을 디딜 때마다 흙은 가볍게 부서졌고
부서진 것은 언제나 햇볕이었다.
빛은 한 덩어리로 머물지 못하고
잘게 쪼개진 채 바람에 실려 흘렀다.
대불국민학교 시절,
등하굣길은 이동이 아니라
몸이 세계를 통과하는 연습이었다.
느릿느릿 걷던 발걸음은 시간을 끌고 다녔고,
고독은 내 뒤가 아니라
내 안에서 자라났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지만
언제나 나와 함께였다.
그것이 고독의 첫 형태였다.
봄이면 산철쭉 아지랑이 뒤엉켜
꿈처럼 난만히 피어 있었다.
붉음은 풍경이 아니라 징후였고,
나는 그 앞에서 이유 없는 불안을 배웠다.
불안은 사건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저 어느 날, 몸 안에 놓인
작은 돌 하나처럼 굴러다녔다.
고독은 그 돌을 주워
내 호주머니에 조용히 넣어주었다.
있으면서도 온전히 있지 못했다.
그 시절의 시간은 꿈결이었다.
현실은 아직 굳지 않았고,
나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문장이었다.
길은 문장부호 없이 이어졌고,
햇볕과 바람은 의미를 요구하지 않았다.
고독은 설명 대신
여백으로 나를 감싸 안았다.
중년의 나이에 이르러서야
나는 그 고독이 하나의 알레고리였음을 안다.
그것은 상실의 예고가 아니라
존재가 자기 자신에게 도착하기 전
반드시 거쳐야 하는 빈 방이었다.
릴케가 말한 질문들이란
아마도 그런 방에서만 숨 쉬는 것인지도 모른다.
답을 부르지 않는 질문,
머무르는 동안만 살아 있는 질문.
그 부서지던 햇볕과 바람소리는
지금도 나의 몸 어딘가에서
느리게 흔들리고 있다.
삶이 다시 비포장도로처럼
거칠어질 때마다
나는 안다.
먼지가 일어나는 길 위에서
고독은 여전히 나를 버리지 않고
나란히 걷고 있다는 것을.
걷지 않아도 길은 남는다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다른 몸으로 옮겨갈 뿐이다.
중년의 나는 더 이상
그 신작로를 걷지 않는다.
그러나 길은 내 안에서
여전히 이어진다.
비포장의 감각,
부서지던 햇볕,
바람이 남기고 간 소리의 결.
그것들은 기억이 아니라
아직도 작동 중인 기관처럼
몸 어딘가에 숨 쉬고 있다.
고독은 끝내 나를 떠나지 않았다.
대신 말이 되지 않기를 선택했다.
그래서 나는 안다.
삶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들은
언제나 말 이전의 형태로 도착한다는 것을.
이제 나는 걷지 않는다.
대신 가끔 멈춰 서서
내 안을 지나가는
먼지의 기척을
얼굴들의 웃는 기척을 듣는다.
그것이 한때 길이었고,
한때 아이였으며,
지금의 나를
조용히 지탱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 온기 없던 햇볕에
코 맹맹한 시간들에 빚졌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