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범가족

― 〈기생충〉과 〈어쩔수가없다〉

by agon바두슴

가족은 가장 작은 공동체다.
그리고 가장 빠르게 공범이 된다.
〈어쩔수가없다〉와 〈기생충〉은 악인을 고발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이미 익숙해진 “괜찮다”는 말의 구조를 해부한다.


나는 두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반복해서 따라 걸었다.
그 ‘반복’이라는 말은 감탄의 확인이 아니라, 세상의 균열을 촘촘히 더듬는 시선이다.
화면 위에 흩어진 빛과 그림자가 어디서 부서지는지,
그 충돌이 개인의 선택인지,
혹은 관계와 서사의 그물 속에서 불가피하게 생긴 틈인지.
나는 카메라의 호흡과 컷의 침묵을 통해 그것을 탐문한다.


그리고 깨닫는다.
한 동작이 영화 전부이며,
한 숨이 이야기 전체를 지탱한다는 것을



박찬욱의 〈어쩔수가없다〉에는 짧은 대사가 있다.
미리: “당신이 무슨 안 좋은 일을 하면, 그건 나도 같이 하는 거야. 알았어?”
만수: “아유, 걱정 마.


표현은 부드럽지만, 마음속에는 불확실한 책임의 시험이 깔려 있다.

그 속에는 불안과 의무가 얽힌 그림자가 있다. 미리는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는 동시에,

상대가 감당할 책임까지 조용히 떠넘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짧은 선언은 용기를 북돋운다. 함께 하겠다는 말은 단순한 약속이 아니라,

선택 앞에서 마음을 세우고 한 걸음을 내딛게 하는 작은 힘이 된다.


만수는 이를 가볍게 흘려 보이지만,

내면의 불안과 선택을 압박하는 심리적 장치다.

듣는 순간,

관계는 이미 새로운 힘의 균형 위에 놓인다.


이 순간 가족은 보호의 단위에서 공범의 최소 단위로 전환된다.


봉준호의 〈기생충〉에서도 유사한 장면이 반복된다. 영화 속에서 기택은 말한다.
“선을 넘지 말라고.”
이 말은 규칙처럼 들리지만,

실은 질서의 요청이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는 것은,

이미 선을 긋는 자와 지켜야 하는 자가 나뉘어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 선이 윤리가 아니라

생활의 편의에 의해 설정된다는 점이다.




우치다 타츠루는 반복해서 말한다.
사회는 악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 때문에 무너지지 않는다.
각자가 ‘자기 역할’을 성실히 수행할 때,

오히려 파국은 안정적으로 진행된다.


〈어쩔수가없다〉의 가족은 특별히 잔인하지 않다. 그들은 서로를 위한다.

바로 그 점이 위험하다. “우리는 가족이니까”라는 말은 판단을 중지시키는 가장 효율적인 장치다.


가족은 윤리 이전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윤리를 묻지 않아도 되는 곳, 그래서 가장 먼저 윤리가 사라지는 곳.


영화 <기생충> 유튜브캡쳐

​<기생충>의 가족 역시 마찬가지다.
​식구들은 서로를 탓하지 않는다.

그 침묵은 겉보기에 끈끈한 사랑 같지만,

실상은 공범들의 안락한 평화일 뿐이다.


​아무도 먼저 진실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모두가 조금씩 범죄에 가담한다.

그렇게 공동체는 '가족'에서 '공범 가족'으로 변모한다.
​급격한 파멸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불편한 양심이 사라질 뿐이다.


공범적 안정이다.

아무도 먼저 말하지 않음으로써,

모두가 조금씩 계속해서 가담한다.


이렇게 공동체는 ‘마을’에서 ‘공범 마을’로 이행한다.

급격한 변화는 없다.

다만 불편한 질문이 사라질 뿐이다.


중요한 것은,

이 두 영화에 악의 주체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신 “어쩔 수 없었다”,

“다들 그렇게 한다”,

“가족이니까”,

“선을 넘지만 않으면” 같은 말들이 반복된다.

이 말들은 설명이 아니라 면책의 공식이다.


박찬욱은 가족 내부에서,

봉준호는 사회 구조 안에서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언제부터 타인의 선택을 대신 떠맡는 존재가 되었는가.

<어쩔수가없다>유튜브 캡쳐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얼마나 안심했는가.
공범은 선언하지 않는다.
공범은 생활 속에서 천천히 완성된다.
이 두 영화가 불편한 이유는,

우리가 이미 그 과정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가,

사실은 가장 안정적인 공범 상태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영화는 조용히 보여줄 뿐이다.


가족이 공범으로 움직이는 순간,

보이지 않는 힘이 작동한다.
말하지 않아도,

문제를 기록하지 않아도,

침묵의 음모는 조용히 완성된다.


그 침묵 속에서,

가족은 서로를 보호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집단 방어기제를 작동시키고 있다.
위험과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지 않기 위해,
서로의 시선을 피하고,

불편한 질문을 삼키며,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내부를 봉쇄한다.


이 과정은 무해하게 보이지만,

동시에 가장 안정적인 공범 구조를 만들어낸다.
〈어쩔수가없다〉와 〈기생충〉은 보여준다.
가족이 가진 이 방어기제는 생존의 전략이자 윤리의 그림자다.


침묵은 단순한 무언의 동의가 아니라,

심리적 안정을 확보하고, 공범성을 은폐하는 장치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뒤에도 남는 것은 단순한 결말이 아니다.


우리는 묵묵히 작동하는 가족의 방어,

책임의 분산,

그리고 침묵의 음모를 목격한다.
이 불편한 관찰은 경고가 아니라 설명이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이미 우리는 모두 어떤 형태로든

공범의 구조 속에 놓여 있다.


언제나 어디서나

가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