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지지 않는 침묵

생각과 능력이 일치하는 이순(耳順)의 영토

by agon바두슴


​파스칼 키냐르는 "진정으로 귀를 기울이는 자는 소음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나이가 듦에 따라 완고해진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낡은 고집이 아니라 내면의 심연에서 길어 올린 '확신'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릅니다.


​지천명(知天命), 하늘의 소리가 나를 흔들 때


​쉰의 고개, 지천명의 시절에는 내가 가야 할 길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그 길을 가기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했습니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거울 앞에 선 자존심은 여전히 망설임의 그물을 치고, "이것이 정말 나의 소명인가"라는 질문 앞에 우리를 세워두곤 했습니다.


그때의 우리는 외부의 충고에 가슴이 울렁이고, 세상이 그어놓은 '나이라는 허상'에 갇혀 결정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비틀거리기도 했습니다. 타인의 문장 속에 나를 끼워 맞추려 했던, 여전히 덜 자란 자존심이 나를 지배하던 박명(薄明)의 시기였습니다.



​이순(耳順), 어떤 파문에도 흔들리지 않는 호수


​이제 예순, 이순의 문턱에 들어서면 풍경은 단호해집니다. '귀가 순해진다'는 것은 단순히 남의 말을 너그럽게 듣는 차원을 넘어, 내면의 확신이 너무나 명징하여 외부의 어떤 소음도 내 결정의 궤도를 수정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비로소 '결정의 확고함'이 태어납니다.


이제 어떤 충고나 우려의 말도 내 안의 단단한 핵과 충돌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그저 빗방울이 바위에 닿듯 무심하게 흘러내릴 뿐입니다. 그와 동시에 찾아오는 것은 '망설임의 소멸'입니다.


결정은 이제 깃털처럼 가벼우면서도, 그 궤적은 운석처럼 단단합니다. 비대했던 자존심을 내려놓은 자리에 오직 '나의 의지'라는 순수한 결정체만 남았기 때문입니다.


​이 경지에 이르면 '생각의 일치'는 자연스러운 순리가 됩니다.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는 명제는 이제 이순의 삶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물리적 법칙이 되어, 생각과 행동 사이의 간극을 완전히 메워버립니다.



​생각의 한계를 넘어, 나라는 능력을 증명함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그것이 나고, 나의 능력이다."


​이 말은 이제 오만이 아닌, 한 생을 통과해온 자의 고요한 선언입니다. 이순에 이르러 비로소 우리는 "어떻게 보일까"라는 타인의 문장을 완전히 삭제하고, "무엇을 하겠다"라는 나의 단어로만 생의 페이지를 채웁니다.


​주저함은 내가 스스로 그어놓은 생각의 한계였음을, 그리고 그 한계를 지우는 순간 세상의 모든 가능성이 나의 능력이 됨을 이제는 압니다.


어떤 비바람도, 어떤 세속의 충고도 내 안의 명징한 결단과 부딪쳐 소란을 일으키지 못합니다. 이순의 결단은 침묵 속에서 증명되며, 그 침묵이 곧 나의 가장 거대한 영토입니다.


​"지천명의 떨림을 지나 이순의 평온에 닿았을 때, 비로소 나는 나의 주인이 된다. 나의 결정은 이제 세상과 충돌하지 않는다. 오직 나를 관통하여 완성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