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스바움의 '취약성'과 하루키의 '우물' 사에서
"우리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 성벽을 쌓지만, 그 견고한 고립 속에서 역설적으로 가장 처절한 외로움을 마주합니다. 마사 누스바움의 말처럼, 사랑이란 결국 그 완벽한 '자기 완결성'을 포기하고 타인의 불확실함을 향해 나를 던지는 지적인 모험입니다. 차무희와 도라미, 두 사람의 서툰 마찰을 통해 우리가 잊고 있었던 '취약함의 미학'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사랑은 나라는 성벽을 허물어 타인의 불확실함을 환대하는 지적인 모험입니다."
마사 누스바움은 우리가 서로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취약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 윤리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차무희와 도라미의 외로움은 결함이 아니라, 누군가를 향해 손을 뻗어야 한다는 정직한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완벽한 통역은 없더라도, 서로의 빈틈을 메우려는 그 서툰 다정함에 마음을 기대어 봅니다.
톱배우 차무희는 화려한 조명으로 성벽을 쌓고 그 안에 머뭅니다.
마사 누스바움은 이를 '자기 완결성의 신화'라 불렀습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혹은 타인에게 나의 행복을 저당 잡히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이죠.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속 인물들처럼 그녀는 깊은 우물 안으로 내려갔습니다.
그곳은 안전하지만 지독하게 고요합니다.
도라미와의 마찰은 기묘한 잡음과 같습니다. 누스바움은 우리가 자신의 결함을 견딜 수 없을 때, 그것을 타인에게 '투사'하며 비난한다고 말합니다.
무희와 라미의 신경전은 서로가 서로의 잃어버린 파편일지도 모른다는 공포에서 기인합니다.
내 안의 불안을 상대라는 거울을 통해 확인하는 순간, 방어기제는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돋아납니다.
사랑은 정성껏 가꾼 정원에 타인이 제멋대로 들어와 발자국을 남기는 것을 허용하는 일입니다.
누스바움은 이를 '자기 충족성의 포기'라고 정의했습니다.
내가 혼자서는 온전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 비를 맞는 길고양이처럼 처량하게 나의 '취약성'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완벽한 통역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저 오역 가득한 숲속에서 서로의 체온을 확인하며 천천히 걸어갈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