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내 작은 세상 속 질감

by 스티키 노트

(제목: 가면라이더의 침공)ㅡ유성펜과 연필

신혼시절, 초등학교 앞 허름한 문방구에서 가면라이더 하나에 오백원을 주고 세개를 구입한적이 있다.

책 무더기를 쌓아놓고 신나하던차에, 가면라이더를 올려놓으니 퍽 그럴싸해보였다. 번듯한 책꽂이가 없어도 나는 이 책무더기들이 좋았다.


(제목: 이봐~! 집밖에 좀 나가보는건 어때?)ㅡ유성펜과 연필






내 작은 세상 속 질감


대환장으로 이끄는 병적불안을 오래도록 겪으며, 소소하고도 익숙한 일상을 유의미하게 바라보는 안목이 나에게 생긴것 같다. 후천적으로 개발된 능력이라고나 할까. 이게 논리적으로나 학술적으로 맞는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곰곰히 생각 해 보면 분명코 인과관계가 있어 보인다.


불안이 클수록 시야가 좁아진다는데, 그래서인지 나의 시야와 행동 반경이라는 것은 유난히도 더 좁아 터졌다. 스스로를 우물에 가둔 저 무지몽매한 개구리처럼. 그런데 우물안의 좁디좁은 공간이 대우주의 전부인줄 알고 살아가는 개구리들은 정말로 계몽이 필요한 열등한 존재인걸까. 늘 우리집과 우리동네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 생활을 반복 하며, 매일같이 접하게 되는 광경들이 지겨울법도 하건만, 관점과 시각을 아주 조금만 달리 하면 영화속 한장면처럼 낯설게 느껴질때가 있다.


“에이….” 과장이 심하다고?? 하도 익숙하고 평범해서 시시하고 지겹기만한 대상이, 어느날 갑자기 스페셜해진다는 말은 너무 억지주장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런 내가 너무 짠해 보인다며 측은해 하는 내 친구들은 말한다. "왜 그렇게까지 그러고 사는거냐 인생아... 응?".


하아... 이것들아. 내가 입을 다물고 말지. 도대체 언제쯤 내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나타날까. 나는 언제쯤 그 누군가 에게서 공감의 “맞아 맞아, 나 그거 뭔소린지 알아!” 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내가 그렇게까지 말도 안되는 소릴 한거냐.


너무 익숙해서 지루하기까지한 생활공간이라도, 카메라 뷰파인더를 통해 보면 전혀 새롭고도 특별한 그 무엇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익히 한두번쯤은 경험해 본 적이 있을것이다. 가족들이나 강아지를 찍으려고 휴대폰 카메라를 켜고 대상을 향하던 도중, 순간적으로 카메라 뷰파인더에 걸린 거실의 한구석이라던가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놓여있는 테이블 위 풍경같은것들 말이다. “엇…” 특별하달것 하나 없는 내 익숙한 공간들이, 카메라 뷰파인더 속에서 뭔가 독특하고도 재미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요것 봐라~". 이게 도데체 왜 신선한거지?


바로 그거다. 내가 찐으로 소개하고 싶은건 바로 바로 그런 장면들이다. 아름다워라. 우연히 카메라에 포착된 그것들의 고고한 자태를 새삼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 아름다운 장면들을 일단 휴대폰으로 찍어 저장해 놓고, 하나하나 화지로 옮길수밖에 없게 된다. 거의 숙명적으로. 나의 불타는 소유욕이라는 것은 결국 이렇듯 그리는 행위로 귀결이 되고 만다.


내가 감격에 겨워 내 눈앞의 소소한 것들을 화지로 옮김으로써, 그림으로 더 특별하게 재탄생 시키는 그 과정. 그게 얼마나 박터지게 설레이는 과정인지 모를것이다. 불안한 나도 요럴때 만큼은 행복하다. 소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아름다움을 내 사유재산으로 귀속시키기 위해 나는 카메라에 담고 또 그린다. 쓰고 그리는 행위는 눈앞의 아름다움이 더욱 온전히 내것이 되게끔 만들어 준다. 내게 주어진 작은 행복이다. 누군가의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이 내 눈에 보인다는 사실은, 뭔가 대단한 비밀을 혼자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라도 된듯 설레는 일이다.


십여년전 나의 신혼집에는 쓸모를 결정하기가 난해한 코딱지만한 방이 하나 있었다. 어엿한 책꽂이를 좀 들여놓을라 치면, 그것만으로도 답답하리만치 좁고 작은방. 결국 책꽂이는 생략하기로 하고 그자리에 책 무더기들과 CD들을 빼곡히 쌓아올린다. 잉? 뭐지? 어느날 보니, 갑자기 그 무질서함이 너무 흥미롭고 재미있는거다. 도저히 도저히 그리지 않고는 배길수 없는 마음.


초등학교 앞 손바닥만한 문구점에서 500원이나 1000원을 주고 건진 플라스틱 미니 장난감들. 계산대 근처에 놓여있던 갖가지 모양의 펜들. 내부 톱니바퀴 얼개가 훤히 다 들여다 보이는 투명한 케이스의 수정테이프. 이런것들이 나에게는 모조리 '대박 아이템들'이라는 사실. (이런게 내 친구들이 특히 애처러워하는 대목이다.)


이 오묘한 책상위 조합들이 모조리 우연이란 말인가. 이렇게나 흥미진진한 풍경들인데?? 내 좁은 방안에서 매일 조금씩 모양을 달리하며 펼쳐지는 풍경들이다. 그 사소한 사물들간의 거리와 조화가, 생활속에서 매일 자연스럽게 재배치 되기 때문이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내가 얼마나 많은 풍경들을 놓치며 살고 있는지. 나의 빨간테 안경은 오늘따라 선인장 모양의 열쇠 고리와 나란히 누워 있다. 아름답다. (이것이 정말 내가 약을 좀더 세게 먹어야 하는 대목인걸까)


그것은 하루하루의 여행같은 것이다.

내 작은 세상속으로의 여행.

내 작은 세상속 질감.

들여다보는 즐거움속으로의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