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진작 그럴것이지

by 스티키 노트


(제목: Are you OK?)ㅡ아크릴 물감 나의 맨처음 피사체는 변기였다.

진작 그럴것이지


진격의 직장생활로, 삼십대였던 시절의 내몸은 거의 개박살이 났었다. 척추와 경추등 내몸 이곳저곳이 정형외과적 난관에 봉착했다.(가구회사의 디자이너 노릇은 생각보다 우아하지 않다.) 게다가 허구헌날 밥먹듯 이어지던 철야작업. 눈앞이 노래질만큼 후덜덜한 허리통증으로 인해 격동의 직장생활을 더는 이어가지 못하고 부득이 내려놓아야만 했었다. 결혼생활이 시작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이었다.


근데 가만있어 보자... 사직서를 내고 오랜 칩거에 들어간 이후, 내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책을 만들어야 하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뭐였더라. 생각해 보니 내가 최종적으로 목표했던건, 내가 나자신을 먹여 살리는 일이었다. 언제부턴가 이런저런 이유들로 내가 나자신을 부양하는 일이 중단되었다.


직장생활이 중단되고부터, 나는 대인기피증을 심하게 겪었다. 건강이 어느정도 회복된 후에도 다시금 사회생활을 재개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만 해도 나는 경단녀의 고충에 대해 전혀 아는바가 없었다. 아 인간의 나약함이여~ 항우울제나 종합비타민 같은걸로 버틸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정말로 예상밖의 난국이었다. 자존감은 바닥을 훑으며 쌍끌이 조업을 했고, 멀쩡하던 멘탈은 저멀리 우주로 돌연 이사를 떠나 버렸다. 한번의 경력단절에, 그나마 원래부터 희박했던 약간의 자신감마저 쥐도새도 모르게 야반도주를 감행했다. 오 주여...나 스스로가 견딜수 없이 부끄럽고 창피했다.


나는 지명수배자처럼 숨어다니기 시작했다. 나의 말도 안되는 이 잠행에는, 하필 어릴적부터 계속 살아왔던 지역에 신접살림을 차렸던 일이 한몫을 하지 않았나 싶다. 콩나물 한봉지를 사기 위해 잠시 동네 수퍼마켓에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무수히 많은 지인들과 마주쳐야 했다. 그들이 반가움에 건네는 말 “요즘뭐해? 어떻게 지내?” 하는 물음이, 굴욕의 밥벌레로 살고 있던 나를 번번히 어쩔줄 모르게 만들었다. 아... 개짜증. 나의 멘탈이 지구를 떠나던날, 나의 육신도 함께 UFO에 동승 했어야 했다. 어디론가 간절히 사라져 버리고 싶었던 마음은 결국 나를 기나긴 은둔으로 이끌었다.


이전에 자랑스레 내세울수 있을만큼 화려하지는 않았을 지라도 나의 사회생활은, 자존감이 늘 바닥이었던 나의 정신적 존립에 적잖이 긍정적 영향을 주었던 모양이다. 나를 지탱하고 있던 코어가 '퇴사'와 함께 와르르 무너져 내린것을 보면 말이다. 어차피 끊어질듯 끊어질듯 위태로이 이어져 가던 직장생활이었기에, 이같은 여파는 미처 계산에 넣지 못했었다.


퇴사후 어느정도 건강이 회복되어갈 무렵, 주위를 아무리 두리번거려봐도 내가 할수 있는 일이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나의 그당시 체력과 컨디션과 누추하기 짝이없는 사회적 능력으로는 그러했다. 그렇다고 출산이나 자녀양육을 하고 있는것도 아니면서 전업주부로 살아간다는 것은 나 스스로 허용되지 않았다.


나의 무능력과 무직상태로 인해 자존감은 온전히 엎질러져 버렸다. 그리고 그 사실을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조차 들키지 않기를 바랬다. 나는 철저히 명랑한 활기를 연기해야 했는데 아뿔사, 이 노릇은 나의 불안을 더더욱 가중시키는 일이 되었다. “난 괜찮아요.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잘 지내고 있는걸요. 노는게 체질인가봐요 호호호” 악몽이 따로 없었다. 그 누구도 나의 짙디 짙은 그늘을 알게 해서는 안돼. 난 크리스천이야. 내 초라함과 소망없음을 그 누구도 눈치채선 안돼. 절대! 나는 죽어가고 있었던것 같다. 겉모습은 멀쩡했지만 나는 분명 집안에 갇혀 시시각각 시들어 가고 있었다. '주님 저를 살려주세요. 저를 도와 주세요. 뭐든 일을 할수 있게 해 주세요~!'. 내가 하던 기도는 절규에 가까웠고, 나는 마치 독방에 갇힌 죄수같았다. 나 스스로 만든 철장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고 있었다.


남편이 출근해 있는동안, 나는 집안에만 틀어박혀, 글을 쓰거나 낙서 수준의 그림들을 열심히 끄적대기 시작했다. 그 일은, 날이 갈수록 더해지는 불안을 해소시키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지만, 뭔가 살림살이 이외의 소일거리가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출발은 그러했다. 당시에는 아직 별다른 목표를 정하지 못했던 상태였으므로 매일같이 일기글과 다름없는 에세이를 쓰고 그림을 끄적대는 일에 열정을 쏟았다. 집요하게 나를 괴롭혔던 불안이나 일에 대한 욕구를 해소하고 싶었다.


나의 맨 처음 피사체는 변기였다. 물론 김이 좀 새긴 해도, 집에 머물면서 도무지 무엇을 그려야 할지도 알지 못했던 내가, 가까스로 생각해 낸 대상이 바로 욕실 변기였다. 시작치고는 꽤 참신하지 않은가. 그런데 왜 하필 변기였을까. 당시에는 신혼시절이라 집안에 이런저런 예쁜 소품들도 많았을텐데 왜 하필 변기였을까. 궁색한 욕망이란것은 항상 무언가가 시작되게끔 만드는 모체인걸까?


아무도 만나지 않고 스스로를 고립시킨채 하루하루 살아가던 당시의 나는, 혼잣말처럼 온갖 사물들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미친사람 같았을 것이다. 빛나는 신혼시절이었던 만큼 혼잣말 따위가 아닌 '사랑의 힘'으로 국난을 아니 심난을 극복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아니지 아니지. 나도 사랑타령 무척 좋아하지만, 애써 모처럼 이룬 이 사랑이 파국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나의 미친행각 정도는 적당히 숨기고 사는편이 현명하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나는 혼자 있을때 변기 뿐 아니라 손톱깍기, 과일, 선인장과 가방, 심지어 널어놓은 빨래들과도 대화를 나누고 그것들을 그렸다. 몇십년 전, 잠시 컬러풀한 변기가 유행했던 적이 있었는데, 예측컨데 우리들의 신혼집은 아마도 그 시기에 지어진 집이었을 것이다. 나는 배앓이를 자주 하는 편이었고, 그럴때마다 나의 초록 변기는 내게 이렇게 말을 걸어주었다. “아 유 오케이?”


그렇게 그저 속풀이와 넋두리의 수단이었던 글과 낙서들이 어느새 조금씩 진화를 시작하더니, 몇 안되는 주변의 반응이 차츰 달라졌다. “나쁘지 않은걸?”. 생각해 보면 그저 공치사일 뿐 이었을 텐데, 이거 이거....내 마음에 슬그머니 바람이 들면서 턱없이 목표가 생겨나 버렸다. 거국적으로다가 나의 글과 그림들로 책을 한번 만들어 보면 어떨까. 단 한번도 꿈꿔본적 없는 일이었다. 더욱 더 최종적인 목표가 있다면, 내가 만든 책을 통해 다만 소액이라도 수입을 갖고, 궁색하나마 경제적 자립이 가능한 수준까지 올라가보고자 하는 것이다. 아이고 뿅간다~. 지금 생각하면 진정코 어이없기 짝이 없는 바램이다. 내 필력으로 책을 써서 경제적 자립씩이나. 세상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랐었다.


남편의 수입은 자녀를 갖지 않은 우리 두사람이 생활하기에 크게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내가 자립할 능력이 없어서 남편의 수입에 의존하는 것과, 능력이 있음으로 협력해 살아가는 이 두 상황의 심적 차이가 현저하다는 점이다. 실현가능성이 거의 없는 사악한 꿈이라는 사실을 최근 겨우 깨닫게 되기는 했으나, 간절한 마음만은 여전하다.


내가 남편에게 몹시 질척대며 사는 이유는 그가 나를 경제적으로 부양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잘생긴 남자이기 때문도 아니다.(남편님 보고 계시죠?) 그를 사랑하고 항상 함께 하고픈 마음때문에 나는 남편이 필요하다. 나는 그 사실을 스스로 증명해내고 싶은 마음과 함께, 생활전선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그의 심적 부담 또한 조금은 덜어주고 싶다. 건강문제 등으로 남편에게 때로 다소 긴 휴식이 필요한 순간이 올때마다, 나도 영화처럼 그에게 든든한 어깨가 되어주고 싶었다. “자기 몇달 좀 쉬어가는건 어때? 걱정마. 내가 있잖아”. 지친 남편의 어깨를 토닥이며 이렇게 말해줄수있는 아내이고 싶다. 우리가 서로에게 질척대는 사이라는 사실은 무척이나 다행스런 일이며, 큰이변이 없는한 그 사실엔 변함이 없을거라 믿지만, '걍' 내 마음이 그렇다는 얘기다.

나의 맨처음 피사체는 변기였다. 왜 하필 변기였을까.

이런 몇가지 이유들로 나는 수입을 가져야 한다. 안다. 글을 쓰고 낙서와 다를 바 없는 그림을 그리는 일로 생계를 보장받기를 꿈꾼다는것은 현실적으로 허황된 일이다. ‘필력’이랄수도 없는 이 일천한 글솜씨와 그림실력을 가지고? 그정도로 철이 없지는 않다. 사악한 꿈 맞다. 그러나 그저 ‘로망’이라고만 치부해 버리기에는 내마음의 소망이 훌쩍 커져 버렸다. 쿨하게 살기가 이렇게 힘들다니.


불안을 내려놓고 좀더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 정신적인 독립을 이루고자 한다. 지금보다 견고한 일상을 다지며, 어른답게 나스스로를 책임질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런 간절한 꿈을 품을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 기적같기만 하다. 진작 그럴것이지.


꿈을 잃었었던 나.

깊은 침전을 헤매이던 나.

다시 일어설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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