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현란한 입놀림

by 스티키 노트
(제목: 비가 가로로 내리던 날)- 빵봉지 위 아크릴 물감

현란한 입놀림


일종의 적폐청산이랄까, 수다에 관한 나의 순수한 열정을 스스로 찍어 누르는 일. 이 일은 놀랍게도 어린시절부터 이어져 온 것이다. 다시말해, 언제나 멈출줄 모르고 샘솟듯 솟아나는 마음속이야기들이 유년기적부터 내 가슴과 머릿속에서 항상 드글드글 했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나의 불안과 폭발하는 충동성에 관해 타인에게 들키지 않기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들키지 않는편이 훨씬 더 생존에 유리하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터득해 지켜왔으며, 나의 수다욕구에 관해서도 그러했다. 놀랍게도 아이적부터의 일이었다. 그것은 배우들이 하는 일종의 연기생활 같은 것이다. 배우가 그들 자신과 그들가족의 생존을 위해 혼신을 다해 연기하듯, 나도 나자신과 가족들의 평화로운 일상을 그르치지 않기 위해, 있는 힘껏 연기해야 했다. 나의 어린시절은, 그러한 대승적 차원의 결단들로 인해 퍽이나 고달팠다.


어린 ADHD아이의 결단이라 하기엔 너무나 눈물겨운 처세가 아닌가. 친구들과 함께 학교생활을 하고 어울려 노는동안, 지껄이고 싶은 얘기가 좀 많았겠는가. 나는 정말 참새처럼 지저귀고 싶었었다.


어린 나는, 열의 일곱은 참아누르고 삼켜버렸으며, 그중 둘셋정도만 입밖으로 내보냈다. 더욱 놀라운건, 실제로 말수가 적은 아이라는 세간?의 평가를 얻어내는 지경, 아니 경지에 까지 이르렀었다는 사실이다. 인내와 자기절제가 그토록 훌륭했기 때문일까? 이 영악한 선택은,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징그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물론 중년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나의 연기생활은 생존을 위해 여전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자기절제의 측면에서만 본다면 오히려 어린시절이나 학창시절보다 승률은 현저히 떨어진다.


유구한 세월, 스스로의 입을 틀어막으며까지 찍어 눌러왔던 나의 열정. 수다를 향한 나의 순수한 열정이,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밟힌 지렁이처럼 꿈틀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열의 둘셋 정도밖에 억제하지 못하는 급발진의 형국에 다다랐다. 어쩌다 봇물이 터져버린 것이다. ‘아 전부 터져버려라. 다 터져나가 버려라. 이판사판이다. 죽으면 썩어 문드러질 몸뚱이, 바지런히 수다나 떨자. ’ 이렇듯 자폭하는 심정으로 나자신을 방치한 날들이 거의 두세달이 넘도록 지속된적이 있었다. 불과 몇년전 이야기이다.


그 무렵의 나는 마치 내 삶의 모든 욕구와 불만에 한풀이라도 하려는 듯, 틈만나면 아파트 이웃들과 수다에 매진했다. 은둔탈출이 거의 이루어지려는 찰라였다.


속이 뻥 뚫리는 듯 가슴속에 바람길이 났다. 모든 체증이 해소되었으며 여기저기 아프던 몸까지 개운해졌다. 제발 내 말을 믿어주길 바란다. 나는 실제로 두통이 사라졌었다. 언제나 딱따구리처럼 나를 쪼아먹을 기세로 달려들던 편두통이 거짓말처럼 날아가 버린 것이다.


남편과 함께 근사하다고 소문난 브런치 카페에 갔던 날이었다. 핫하다고 소문난 그 카페에서 생일맞이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던건, 생일날 만큼은 식사준비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유롭고도 호사스럽게 브런치를 즐기고 싶었다.


그곳에서 우리둘은 대여섯명의 중년여자들을 봤다. 그녀들은 우리보다 훨씬 먼저 도착했는지, 그곳에서 가장 큰 대형 테이블을 떠커니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우와 일찍들도 오셨네. 오픈런 한건가?’


그녀들은 정말이지 놀라운 데시벨로 줄창 떠들어 댔다. 나의 싱그러운 리코타치즈 샐러드와 봉골레 파스타가, 도대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남편은 “아줌마들이란….에잇..” 상당히 짜증스러워 했지만, 나는 그 와중에도 그녀들의 열정을 목전에서 관찰하는 일을 게을리 할 수 없었다. 그녀들은 경쟁적으로 떠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격앙되어 가더니, 그중 몇몇은 거의 악을 쓰다시피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깔깔깔 웃어대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자기야, 자기눈에는 저 여자들이 주책스럽게만 보이겠지만, 내가 보기에 그녀들은 치유중인듯 보여. 여자들의 수다는 막힌곳을 뚫어주고 열나는 곳을 식혀주는 힘이 있다고. 맞아. 아스피린이나 활명수 같은거라구. 저런 열정적 수다가 대승적 차원에서 진정코 이 나라 여자들을 살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거지. 그러니까 내말은, 저런 현상을 단순히 아줌마들의 지랄맞은 수다라고만 치부해서는 안된다는 얘기야. ”


남편은 내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더니 잠시후 더는 견디기 힘들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자기는 지금 이 상황이 아무렇지 않다는거야? 하나도 안 시끄럽다고? 나는 지금 골이 막 흔들리고 귀가 찢어질것만 같은데?”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 너무 시끄러워. 사실은 내가 지금 뭘 먹고 있는건지도 모르겠어. 빨리 여기서 벗어나야 될것 같기는 해”


우리는 곧장 일어나 일대에서 가장 핫하다고 소문난 그 브런치 카페에서 도망치듯 빠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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