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해내는 힘
(제목: 끝까지 해내는 힘)--아트지, 유성펜.
뜨게모자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린 이 그림은 약 6개월에 걸쳐 조금씩 완성했다. 이런짓거리를 왜 하냐고? 컴퓨터로 사진을 필터링하기만 하면 몇초만에 나오는 그림인데 이런 무의미한 손그림을 왜 일일이 그리냐고?
심적고통이 닥쳐올때마다 나는 필사적으로 이런것들에 매달렸다. (솔직히 눈알이 빠지는 줄 알았다.) 최대한 불안에서부터 관심을 돌려보기 위한 나름의 방안이었으며, 기특하게도 나의 진통제가 되어 주었다.
가슬한 종이위에 쓱쓱 붓질을 한다는 것, 오돌토돌한 아트지 위에 펜 긁히는 소리를 들으며 그림을 그린다는것. 그것은 시각적 결과물 그 이상의 의미와 느낌이 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러하다. 힐링이었다.
끝까지 해내는 힘
우아하게 살긴 글렀다. 집구석에는 적폐가 넘쳐나고 떨궈내야할 것들이 첩첩산중이다. 엄마의 말마따나 귀신이 나오려다가 되려 기암하고 줄행랑칠 판이다. 수납용량 초과로 배가 터져나와 있는 서랍장. 서서히 덩치를 불리고 있는 옷무덤. 치우다 치우다 결국 때려쳤다. 마침표가 부재중인 원고더미들. 하나같이 끝마무리가 안된 그림 무더기들. 미완성의 대향연. 헛돈에 뻘짓에... 구석구석 어마무시하다. 청산이 시급하다. 의사쌤 왈 "그런게 ADHD의 대표적 증상입니다. 빼박입니다".
내집이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십년이 넘도록 은둔하고 있는 주제에 집이 불편하면 또 어쩌자는 말인가. 나도 참. 진짜 웃기는 짬뽕이다. 이 집구석이 내 마음을 한없이 무겁게 짓누르는 이유. 이 집은 내가 차마 손대지 못한 일들 혹은 채 다 완수하지 못한 일들로 가득한 곳이기 때문이다.
ADHD 증상들중 나를 가장 환장케 하는건, 도무지 일의 맺음이 안된다는 사실이다. 헛웃음이 난다. 기껏 열심히 일 다 해놓고 마무리를 못하는거다. 일단 어렵사리 시작된 일은 조금 힘들어도 열정적으로 해나간다. 정말 질색하는 분야의 일만 아니라면 열심히 집중해서 어지간히 진행해 나간다. 그러나 거참 신기하게도 매번, 맺음만 하면 되는 고지앞에서 돌연 일을 중단해버린다. 화룡점정이란걸 해본 역사가 없다. 정말 중요한 중간과정을 어렵사리 해냈으니 이제 완성을 한것과 마찬가지라고 쉽사리 간주해 버리는 것이다. ‘핵심은 다 끝내놨으니까 한숨 돌리고 나서 이제 천천히 마무리만 하면 되지 뭐..’
문제는, 그렇게 중단된 일의 마무리를, 몇달이고 몇년이고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다가, 결국엔 멀쩡하게 화석을 만들어버리고 만다는 사실이다. 난 정말이지 심각한 얘기를 하고 있는거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미 맥이 끊어진 일은 다시금 손대기가 쉽지 않다. 박물관도 아니고, 집구석에 화석이 넘쳐나니 집에 머무는게 찝찝할수밖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게 차라리 낫지, 도중에 중단된채 시간이 훌쩍 지나버린 일은 그 자체로 높은 허들이 되어버린다. 이것은 차라리 악몽이다. 마치 콘크리트 공사 후 돌연 중단된채 방치되어버린 대로변의 건설현장을 보는 느낌이다.
고등학교시절, 학교 앞 버스정류장에 그런 건물이 하나 있었다. 제법 거나하게 큰 빌딩이었는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굵직한 쇼핑센터가 될 건물이었다고 했다. 공사가 중단된 채 을씨년스럽게 버스정류장을 마주보고 있던 그 콘크리트 덩어리는, 누가봐도 '알포인트'를 방불케 했다. 마치 거대한 흉가 같았다. 듣자하니 골치아픈 문제로 공사가 중단된 그 쇼핑센터를, 그 누구도 나서서 손대려 하는 사람이 없었던 모양이다.
문제의 그 골치덩어리 회색빌딩은, 나의 고교시절 내내 항상 유령처럼 그자리에 서 있었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어두운 버스정류장에 서 있으면, 창문이나 출입문이 달려 있어야 할 부분들이 마치 시커먼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괴물 같았다. 등골이 오싹해 올때마다 나는, 영화에 나오는 퇴마신부처럼 주기도문을 중얼거리고는 했다. 일년 365일이 납량특집이었다. 학기가 지날수록 그 주변의 상점들은 점점 맥을 못추고 하나씩 문을 닫았다. 거의 연쇄적이었다. '알포인트'가 회색의 거대한 유령처럼 그 지역전체를 점점 흉물스럽게 물들여 버린것이다.
사실 내 방의 경우도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먼지를 뒤집어 쓰고 미완성인 채로 그렇게 공간만 차지하던 애물단지들이, 나의집 전체를 점점 회색으로 물들여 갔다. 헉 무서워. 내집인데도 마음이 이렇게 불편하다고? 무언가 대책이 시급했다. 때로는 검은 알포인트에다가 진심으로 나를 대입해 생각해 보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긴 세월동안 나를 성숙의 길로 계속계속 인도하여 가시다가, 못난 쇠고집에 결국은 지치신게 아닐까? 그래서 내 인생이 오늘날 요모양 요꼴로 방치된 시멘트 덩어리처럼 흉물스러워진것은 아닌지. 졸지에 알포인트가 되어버린 내 인생을 나는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걸까. 나는 길을 잃어버렸다. 모든것이 화석처럼 응고된채 중단되어 버렸다. 그 무엇으로도 두번 다시 낭창낭창해지지 않는 내 인생일것만 같아, 나는 연신 서글픔과 막막함을 느낀다.
‘끝까지 해내는 힘’
나의 뒤통수를 제대로 후려 갈긴 이책의 지은이 나카무라 슈지는 지방대 출신의 작은 중소기업의 샐러리맨이었다. 그는 청색 LED를 개발하여 2014년 대망의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책의 내용에 의하면 그는 무려 500번의 실패를 했다고 한다. 히익~! 안봐도 비디오다. 내가 만약 그였다면 난 분명 서너번만에 때려쳤을거다.
책속에 등장하는 이공계열의 전문용어들이 너무 어려운 관계로, 내용중 상당 부분을 이해하지 못한채 술술 넘어가야 했다. 어쩌겠는가. 상관없다. 멀미만 촉발하는 이과적 내용은 솔직히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으니까.
이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번번히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는 내모습이 답답해 전전긍긍했다. 끝맺음이라는걸 해본 역사가 없다. '나'라는 이 덜되먹은 인간의 독보적 아우라가, 전래동화에 나오는 ‘바다에 빠진 소금맷돌’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바다속에는 끊임없이 회전하며 소금을 무한정 만들어 내는 맷돌이 가라앉아 있다는 내용의 이야기. 그래서 결국 짜디 짠 물이 되어버린 바다. 내 마음속에는 잡생각을 끊임없이 생성해내는 맷돌과 함께, ‘미완성’을 무차별적으로 뿜어내는 ‘미완의 맷돌’도 함께 가라앉아 있는게 분명하다. 완성되지 못한채 나의 주변에 좌악 깔려있는 이 수많은 일들. 어마어마 하다. 혹시 안볼때 이것들이 새끼를 치나? "부룩부룩" 수가 자꾸 불어나는 느낌은 나만의 착각인걸까. 별로 먹은것도 없는데 체한듯 명치가 깝깝하다. 바로 이런것들이 결국 내 불안과 강박의 내용이 되어버린다.
‘백번의 미완성보다 한번의 완성을 경험하라’
‘1등이 아니라 끝까지 해내는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
‘벽을 기어올라서라도 끝까지 해내라! 시간이 걸려도 상관없다. 멀리 돌아가도 좋다. 서툴러도 괜찮다. 어쨌든 하나를 완성하는 일,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공계용어를 전혀 알지 못하는데다가 자기개발서라면 두드러기부터 올라온다. 이책에 나오는 나카무라 슈지의 저 교훈들이, 매사 맺음이 드문 나에게 얼마나 큰 울림이 되었는지 설명할 필요도 없다. 마치 그가 나의 눈을 매섭게 노려보며, 나를 지목하여 내게 하는말 같았다. "정신을 좀 차리는게 어때? 인생아".
중간중간 약발이 떨어질 때마다, 자꾸만 원래의 나로 되돌아 가려고 할 때마다, 부러 이책을 세워둔 책상 한가운데를 째려보며 애써 마음을 다져야 했다. 완성에 대한 의지가 약해질때 뿐만이 아니다. ‘내가 뭐라고, 나까짓게 무슨 글을 쓰겠다고…. 망신만 당할게 뻔해’ 라는 자격지심에 모든걸 때려치우고 싶어질때마다, 이 책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전혀 나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나에게는 맺음에의 투지가 그토록 희박했다.
징하다. 정말이지 지난하고 힘든 과정이다. 나의 이야기를 완성하여 책으로 탄생시킨다는 것은. 무기력과 싸우는 일도, 한번씩 불쑥불쑥 올라와 물귀신처럼 발목을 붙들고 늘어지는 자격지심과 난투극을 벌이는 일도, 나에게는 코에서 단내가 날만큼 치열한 일이었다. 투고가 거듭되고 출판사로부터 줄기차게 까일때마다, 이제 그만 귀촌을 고려해 봄이 어떨까 재고한다. 내 인생의 길에서 사사건건 툭하면 맺음하지 못하고 도망다니는 나를 본다. 또 또 또 자꾸만 본다. 이번만큼은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어르고 달래어 겨우 주저 앉히고, 얼음장같은 물에 들어가 잠수를 한다. 쇠심줄처럼 질기게 반항하는 나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나의 창조주께서, 고집센 당나귀같은 징함으로 계속 뒷걸음하는 나를, 당신의 그 '열심'으로 끝내 피니쉬라인까지 이끌어 내실 것이다. 나는 '맺음불가'의 이 악습을 끊어내고, 결국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그 성숙을 이루어내게 될 것이다. 그 믿음이 약해지지 않기위해 내가 내 종아리를 후려갈기는 심정으로 오늘도 나자신을 다잡는다. 그렇게 맘을 고쳐먹고 원고를 퇴고한게, 과장 안하고 팔십번을 족히 넘긴다.
내가 가진 장애뒤에 더이상 숨지 않고 이제는 한발 한발 나아가고 싶다. 그러나 이건 빡세도 너무 빡세다. 보통 고단한게 아니다. 장애라는 허들앞에 찌부로 눌려 살다가, 애초부터 내안에 존재 하지도 않는 투지나 지구력을 억지로 쥐어 짜내려니. 보통 고달픈 노릇이 아니다.
완성한다. 이번엔 반드시 완성한다.
성공은 모르겠고 일단 완성한다.
'끝까지 해내는 힘'.
나는 테이블 한가운데에 오롯이 세워둔 나만의 지침을 오늘도 열심히 째려본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쬐금만 더. 쬐금만 더 가보자.
나는 다시 노트북의 전원을 켜고 달그락 달그락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