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다시 일어설수 있을까

미루다 미루다 결국 사달

by 스티키 노트
(제목: 세상에서 설겆이가 제일 싫어)--아크릴 물감

미루다 미루다 결국 사달


아아악~! 아아악~! 악! 악! 악!


온종일 악몽처럼 미뤄둔 설거짓거리를 몰빵으로 처리하기에 앞서 느끼는 막연함. 이런걸 공포심이라고 표현한다면 에이~ 다들 과장이라고들 하겠지. 하지만 엉망으로 뒤엉켜 있는 개수대를 째려보며, 차마 달려들지 못하고 다섯시간째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는 나를 보시라.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남들은 매일 하는 설거지가, 매번 이렇게까지 막연할 일인가. 이 단순하고도 평범한 일이 나에게는 마치 일생일대의 면접을 앞두고 있는 상황만큼이나 어렵고 막막하다. 하기는. 설거지를 좋아하는 주부가 몇이나 될까만. 치받아 올라오는 긴장에 '인데놀' 한알을 찾아 삼킨다. 나도 참 웃기는 짬뽕이다.


나에게 있어 '밀린 설거지'란, 우습게도 ‘피터팬’에 나오는 해적들의 처형방식을 연상케 한다. 천으로 눈이 가려지고 손이 뒤로 묶인채로 해적들에게 억지로 떠밀려 판자위를 걷는다. 몇걸음도 채 가지 못하고 갑자기 바닷물 속으로 풍덩 빠지게 되는 식이다. 상상만 해도 오소소 소름이 들고 일어나건만, 나는 매번 그 판자위를 걷는 느낌으로 설거지를 시작하고는 했다. 그 후덜덜함이라니. 언제 깨져 들어갈지 모르는 살얼음판을 걷는듯한 공포로 설거지를 시작해야 한다면 누군들 미루고 싶지 않을까.


과장이나 핑계가 아니다. 나는 저녁때마다 개수대와 소파 사이를 몇번씩이나 오가며, 있지도 않은 구들장이 내려 앉도록 한숨을 푹푹 내리쉰다. 그렇게 한숨을 쉬어대는데도 왜 가슴은 좀처럼 시원해지지 않는건지.


‘내가 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 다소 한심한 이 현상의 메커니즘을 파헤치기 위해 내가 사들인 심리서적만 해도 벌써 몇권인지 모르겠다. 학구열은 일등이다. 당연히 속시원한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런 내가 주부로서의 가책을 조금 내려놓을수 있었던 것은, 정식으로 ADHD와 불안장애의 진단을 받은 이후 부터였다.


사실 나는 불량주부였다. 대단히 수치스러운 자백을 좀 하자면. 나는 남편이 세상 질색하는 줄 알면서도 걸핏하면 설거짓거리를 몇일씩 미뤄 두고는 했다. 미친게 분명했다. 동절기에는 그나마 좀 덜하지만 덥고 습한 계절에는 최악이었다. 한번은 거의 일주일 가까이 미룬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더더욱 얼어 붙어서 싱크대 주변을 슬금슬금 피해다녔다. 대신 해주겠다는 남편의 도움도 딱 잘라 거절했다. 아 제발 그것 만큼은.... 도저히 너무 창피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미 최악으로 치달아 그보다 더 낯뜨거울수도 없었는데, 무슨 똥고집이었는지 모르겠다. 누가봐도 나는 정상이 아니었다.


썩은내가 나기 시작하고 벌레가 종류별로 꼬이기 시작해도, 점점 더 초조해지는 마음을 애써 외면한채 필사적으로 다른 집안일에 매달렸다. 이 무슨 해괴망측한 짓이란 말인가. 청소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씻겼으며 이불빨래도 부지런히 해 널었다. 잠시 엉덩이를 대고 앉을 틈도 없이, 부지런을 떠느라 나가 떨어질 지경이 됐다. 그래도 어쩐지 설거지 만큼은 손을 대지 못했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단지 그냥 게으른 사람이거나 독특한 사람인걸까. 아니면 단순히 설거지를 싫어할 뿐인건가?


나의 멘탈이 결국 해적선의 판자위를 걷다가 물고기밥이 되고 나서야, 겨우 겨우 설거지는 시작이 된다. 너덜너덜해진 마음. 결국 나의 설거지는, 내가 ‘막연함’이라는 감정에 맞서 사생결단 접전을 치른 후에야 어렵사리 시작이 된다. 막상 설거지가 시작되면 내가 배양해낸 모든 세균들을 향해 무자비한 수세미질을 가한다. 시작이 어렵지 막상 본게임에 들어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절도있게, 그리고 꼼꼼하게 일을 해치운다. 거의 일주일만의 설거지였다. (아악! 수치스러워!). 내인생에 두번다시 밀린 설거지는 없을것 처럼 푹푹 삶고, 있는대로 깔끔을 떨며 설거지를 마무리 한다.


한두주도 지나지 않아, 나의 부엌은 또다시 극악무도한 난장질에 희생되고 만다. 난 대체 왜 이러는걸까. 정말이지 죽을 만큼 창피하다. 이제는 좀 달라지고 싶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내가 무찔러야 할 적군의 이름은 ‘막연함’ 이었다. 뒤늦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이 흉포한 적군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무기를 휘둘러 대다보면, 주변은 어느새 내가 해치운 적군의 주검들로 즐비하다. 이토록 용맹히 대적함에도, 이 좀비같은 것들이 죽지도 않고 몇번이고 재차 살아나 덤벼드는 바람에 번번히 목덜미를 깨물리고 만다. 주방은 도로 난장판이 된다.


이 냄새나고 징글징글한 적군들과 그냥 동맹을 맺고 어떻게든 살길을 모색해 보는 편이 낫지 않을까? 꼴도 보기싫어 상종을 안 하고 싶으나, 이것들이 죽지도 않고 어쩔 도리가 없으니 일단은 이대로 같이 동행해볼 밖에.


약물치료를 시작하고 부터 싱크대 좀비는 차츰 멀어져 갔다. 나의 막연한 불안과 과도한 강박이 조금씩 진정되어 가면서, 그리 큰 부담없이 설거지에 착수?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설거지를 식후 곧바로 하지는 않으니 이따금 조금씩 밀리기도 하기만, 그전처럼 후덜덜한 상황까지 가지는 않는다. 하하하.


누군가 나와 비슷한 현실에 처해 있어서 스스로를 심상치 않아 하는 중이라면, 자책과 자기비하를 멈추고 상담을 한번 받아보시라 권하고 싶다. 나는 중증 불안장애와 ADHD 진단을 받고 상담과 약물치료를 시작했고, 한번도 경험해 본적 없는 호전을 맛보았다. 하나님은 나에게 왜 이런 장애를 주셨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뜻을 헤아릴 길이 없다. 내가 너무 잘못이 많아, 나를 골탕먹이기 위해서 그러시는건 아닐텐데 말이다. 나는 남들이 상상할수조차 없을 정도로 사소한 일에까지 극한 불안을 느낀다. 평상시 불안도가 높아, 약이 없으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으로 일상생활을 하게되는 것이다. 두 발이 땅에 닿아있지 않는 기분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한다는것은 고통 그 자체이다. 그래서 목숨처럼 하나님을 찾는다. 나는 하나님께 매어 달림으로써 안정감을 얻고자 한다. 내가 가진 장애의 장점을 굳이 찾자면 그런점이다. 나는 매일 하나님을 원망하지만 그러면서도 매순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구조속에 놓여있다. 감사를 드려야 할지 원망을 늘어놓아야 할지 대단히 헷갈리지만 어쨌든 그렇다. 매일 약을 먹고 있는 지금, 나는 확실히 하나님을 덜 찾는다. 솔직히 털어 놓자면 안 찾는다. 불안이 나를 지배할때 나의 성경책은 한시도 내 손을 떠나지 않지만, 의학의 힘을 빌어 편안한 일상을 되찾고 나면 나는 절대로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간만의 솔직한 고백이다. 절대로 찾지 않는다. 이러지 말아야지 자각은 있으나, 내 몸은 밖으로만 나돈다. 성경책 표지에 먼지가 하얗게 내려않도록, 나는 내 관심을 끄는 여러가지 일들에 파묻혀 해변에서 모래놀이를 하듯 말씀따윈 망각속에 파묻어 둬버린다.


신앙의 길에서의 이런 일련의 메카니즘을 깨달은 이후부터 나는 절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욕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뭘 몰랐던 시절에는 그들을 가리켜 감히 '꼴통들'이라 일컬으며 내가 할수 있는 온갖 비난을 퍼붓곤 했었는데, 이제 뭘 좀 알고보니 이스라엘 백성? 양반이 따로없다. 그들은 나에 비하면 몹시 모범적 인간유형에 속한다. 나는 등따시고 배부를때 숫제 하나님을 생각지도 않는다. 깡그리 잊어버리는 것이다.


한정없이 대책도없이 일을 미루고 또 미루다 보면, 언젠가는 꼭 사달이 나게 돼있다. 미루는것도 눈치껏 양심껏 해야지, 나처럼 '에라 모르겠다' 무대뽀로 가버리면 결국 그 사달이 나기 마련이다. 일단 상황이 그 지경에까지 이르고 나면, 자책은 수위를 넘나들며 내 정신을 갉아 잡수시기 시작한다. 그러니 부디 그사달까지 가지말고 제발 정신 좀 차리자. 눈치 챘겠지만 나한테 하는 얘기다.


'엇! 나도 대책없이 미루는거 좀 있는데...'싶다면 성인ADHD의 자가진단에 대해 한번 검색해 보는것도 나쁘지 않다. 돈이 드는것도 아닌데 뭐 어떤가. 당신이 나처럼 자기 자신을 혐오하느라 헛되이 인생을 낭비하지 않을수만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한 수확일테니.


작가의 이전글3.다시 일어설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