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무섭게 어질러대더라니
(제목: 어쩐지 무섭게 어질러 대더라니..)ㅡ유성펜과 연필
2011년에 그린그림. 이때만해도 나는 내가 ADHD 인줄 꿈에도 몰랐다.
나는 양심상, 남편을 위해 방바닥 만큼은 어지르지 않으려 늘상 안간힘을 썼지만, 테이블 위 만원사태를 견디다 못한 잡동사니들이 이따금씩 바닥으로 툭툭 밀려 떨어지고는 했다.
한번은 내가 일하는 동안 테이블 아래 발치에서 기분좋게 낮잠을 자던 강아지의 머리위로 딸기쨈 뚜껑이 떨어진적이 있었다. 바로 옆에 있던 쨈병이 떨어졌더라면 어쩔뻔 했나 싶어 지금도 좌악 소름이 끼친다.
그 이후로 우리집 강아지는 웬만해서는 난리난 테이블 밑에서 잠을 청하지 않는다.
다시 생각해봐도 아찔한 대목이다.
어쩐지 무섭게 어질러대더라니
그렇다. 눈치 챘겠지만 나의 일상이라는 것은 미친 또라이 같은 일면이 다분히 있다. 솔직히 까놓고 얘기하는 거다. 그런 나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긴 뒤죽박죽 풍경화를 보라. 이게 당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까지 한 엉망진창 방구석 풍경화를 내가 죽어라 그려대는 이유는 뭘까.
이것은 내 머릿속을 우주 쓰레기처럼 둥둥 떠다니는 셀수없이 많은 사물, 사건, 생각, 감정들을 ‘붙잡아 내리는’ 과정이다. 보이지 않고 잡히지도 않으면서 내 머릿속을 꽉꽉 채우고 들어차, 한점 바람길도 내어주지 않는 생각들. 이 죽일놈의 넘쳐나는 생각들을 가시적인 형태, 즉 글과 그림으로 붙잡아 내리는, 일종의 ‘내려받기’ 과정이다.
왜 나는 이 모든것을 움켜잡지 못해 안달인지 그게 늘 의문이었다. 왜 나는 이런식으로 편치않은 심사를 찰지게 드러내는걸까. 내 눈앞의 시시콜콜한 광경들이나 생각들을 자연스럽게 흘려보내지 못하고 모조리 붙들어 앉히고 싶어하는 이유를 당췌 알수가 없다. 의미를 두는건가? 그 모든것에? 욕심도 참 어지간하다.
내게 있어 글과 그림이란, 손에 잡히지 않는 이 모든것들을 소유할수 있게끔 해주는 ‘슬기로운’ 적립수단이 되어 주었다. 수두룩 빽빽한 머릿속 파편들을 욕심껏 하나하나 글과 그림으로 옮겨놓고 나면, 나는 딱 그만큼의 불안이 덜어 내어지는것을 느끼곤 한다. 숨통이 좀 트인다고나 할까. 머리와 마음속에 여백이 생겨나고 비로소 통풍이 되는듯한 느낌을 얻는 것이다. 뭔가 뿌듯한 기분.
나의 이 ‘내려받기’는 아주 어렸을때부터 야무지게 해오던 짓거리들인데, 어찌나 절박했던지, 습관이나 취미활동이라기 보다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더 가까웠다. 머리통이 터져 나가는 느낌이란 과히 즐거운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밀한 생각들을 속수무책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이내 미칠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와함께 목을 죄어오는 불안. 불안. 불안. 내게는 뭔가 문제가 있음이 분명했다. 어릴적 부터의 느낌이었다. 다시말해, 나에게 이 ‘내려받기’와 ‘붙들어 앉히기’는 생존이자 호흡이다. 내가 범(汎)불안장애와 성인ADHD 진단을 받은것도 그런 연유에서 과히 생뚱맞은 일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자고로 불안이란, '미지'의 것들에 의해 촉발되는 법. 시야가 안개로 가로막혀 있으면 티끌만한 장애물이라도 공포의 괴수로 둔갑하기 마련이다. 이놈의 안개가 원흉인 것이다. 그 안개 입자를 한놈씩 붙잡아 내리며 글과 그림으로 가시화시키다보면 조금씩 시야가 확보되기 시작한다. 불안이라는 괴물도 덩달아 위력을 잃어간다. 이것이 나만의 '불안을 거덜내는 방법'이다.
허공에다 대고 제아무리 휘적거려봐야 이것들은 손에 잡히지 않는다. 내 머릿속의 뿌연 안개입자가 글이되고 그림이 되는 순간, 그제서야 안개는 명확히 물질화되어 하나씩 하나씩 내 수중으로 들어왔다. 글과 그림은 그것들을 내 손안에 움켜쥐기 위한 과정이다. 확실한 내것으로 만드는 나만의 방법이다. 하등 쓰잘데기 없이 둥둥 떠다니던 우주쓰레기가 내삶의 '자원'으로 환골탈태하는 순간이다. 이거야 말로 대박이다.
근데 이게 저장강박이랑 뭐가 다른걸까. 갑자기, '세상에 이런일이' 같은데서 봤던 어마무시한 비주얼의 쓰레기집이 생각나는건 왜일까.
가끔은 미친듯이 내려받는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번득이는 아이디어를 득템하기도 한다. 그런 아이디어들은 대부분 말그대로 ‘반짝’하거나 ‘번뜩’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떠올랐을때 잽싸게 노트에 옮겨놓지 않으면 십중팔구 날아가 버린다. 공중분해. 증발. 사라져 버린채 두번 다시 생각나지 않는다. '환장'이란 이럴때 쓰라고 있는 말인걸까?
그렇게 몇일을 이불킥을 하며 잠못이루는 밤을 몇차례 보내고나니, 나는 어느새 노트와 필기구를 노상 지니고 다니지 않으면 못견디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런 습관들도 알고보면 성향이라기보다는 생존본능에 더 가까울듯. 사실, 내려받기와 관련한 모든 습관들이 그러하다. 과밀한 머릿속을 조금이라도 비워냄으로써 맘편하게 숨좀쉬며 살아보고자 하는 필사의 생존본능이다.
하나님은 왜 내게 이토록 강한 불안과 우울과 ADHD를 주셨을까? 이 근본적인 질문이 언젠가는 답을 찾게 되리라는 확신은 있다. 하지만 이것들이 현재의 나에게 고통을 주는한은 사도 바울처럼 현숙한 자세로 자신의 '가시'를 받아들일 자신이 솔직히 없다. 이 장애들로 인해 창의력 뿜뿜하는 엄청난 발명품을 얻게되는 따위의 막강한 반사이익 정도는 얻어야 겨우 위로가 되지 않을까. 에디슨의 전구나 일론 머스크 '끕'의 결과물들 말이다. 나는 아직도 이토록 세속적인데 나를 향한 신의 섭리는 언제쯤 나에게 성숙한 깨달음을 가져다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