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낙서야말로 알맹이다.
(제목: 남들도 다 그런줄 알았어)ㅡ연필
낙서야말로 알맹이다.
언감생심, 감히 출판사에 투고를 할 시도조차 못하던 때, 나의 지인들에게 이 망하고도 남을 나의 글과 그림들을 선보인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용기도 가상했다). 그중, 낙서와 다를바없는 몇몇 그림들에 대해서는 제외하는게 더 낫겠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럴수가.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그 낙서들이 혹시라도 더 나은 평가를 받을까 하여 기대를 걸었기 때문이 아니다. 뜻하는 바 그 낙서들이야 말로 내가 진심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나의 그림에 작품성 따윈 없다. (나도 그정도 양심은 있다.) 그림의 가치를 논하기 이전에, 일단 나는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니다. 재차 강조하지만, 나는 모든상황을 그림으로 구현해 낼수 있을만한 그런 능력자가 못된다. 이게 얼마나 누추한 출발이었는지는 '생각 내려받기'가 본격화되던 시기의 내 그림들을 보면 대번에 알수 있다. 번거로운 일 만들지 말자. 실토하건데 이건 빼박 '낙서'다.
나의 낙서들은 오직 ‘생각 내려받기’의 결과물들이다. 와글와글 내 머릿속에서 우주쓰레기처럼 유영하고 있는 온갖 잡다한 이야기들과 벼라별 이미지들. 큰 탈이 나기 전에 조금이라도 머릿속에서 비워내기 위해 그대로 종이위에 잡아내린 결과물들이다. 차마 오픈하기 애매한 나의 검은 속내와, 시커먼 아우라가 스물스물 피어나는 나의 비양심까지도 남김없이 종이위에 잡아내렸다. 물론 아주 가끔은 제법 그럴싸한 그림이 나와주기도 하지만, 사실 그렇지 못한경우가 더 많을수 밖에 없다.
‘생각 내려받기’는 그림실력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림실력이 없다고 해서, 머리통이 터져나가게 생겼는데 비워내지도 않고 죽도록 내버려둘 셈인가. (물론 죽기야 하겠냐만.) 꾸준히 잡아내리다 보면 그림실력이 의도치않게 점점 좋아질수도 있다. 허나 그게 본질이 될수는 없다. 어림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원고들중 보기좋은 그림들보다는, 낙서처럼 휘갈긴 그림들이 오히려 더 알맹이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거다. 나와같이 생각이 많아도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는 시원하게 머릿속 바람길을 내어주고, 또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는 감정의 정화를 가져다 준다. 불안할때 관심을 우회시키기 딱이라고나 할까.
우울과 불안은, 사고하는 인간에게 있어 당연히 있을수 밖에 없는 감정이다. 인간인 이상, 존재감 쩌는 아니, 존재감 넘치는 이 감정들과 별거할 방도가 없다. 이 천박한 것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인생이 지속되는 동안 공존할 수 밖에 없다면 잘 구슬러가며 살수밖에. 얘네를 요령껏 잘 다독여야지, 안그럼 큰 탈 없이 살기는 글렀다고 보면 된다.
글이 됐건 그림이 됐건 상관이 없다. 명화든 낙서든 아무래도 좋다. 우리들의 윤택한 미래를 위해 감정일기나 걱정일기를 꾸준히 써볼것을 초강력 추천하고 싶다. 혹시 누가 알겠는가. 그 기록들이 쌓여 책으로 탄생될 날이 올른지.
(제목: 나는 쓰레기)
험한말이 튀어 나온들 뭐 어쩌겠어. 그게 진짜 내 마음인걸.
마음이 힘들때 이렇게 종이위에 밷아내고나면, 맘속에서 딱 그만큼의 여백이 생겨나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