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만 같던 1박 2일

총 1000킬로미터의 장정

by 칠봉

제가 군대생활을 할 때만 해도 '나중에 나의 아들은 이렇게 비합리적인 생활을 하지 않는 세상이 되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원하지 않게 가족과 떨어져 낯선 환경에서 군복무를 하는 비합리적인 상황과 당시만 해도 군대 내에 팽배해 있던 비 인간적인 행태들이 너무나도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군대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고, 심지어 다시 군대에 입대해야 한다는 악몽도 아직까지 꾸고 있습니다.


그렇게 싫어하는 군대에 제 사랑하는 아들이 복무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저 먼 사천에서요.


얼마 전 꿈만 같던 아들의 휴가로 인해 한동안 너무나도 행복한 시간을 보냈었습니다. 아들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숙면을 취했고, 같이 식사하는 모든 끼니가 흐뭇했습니다. 아들과의 대화는 너무나도 제 마음을 평화롭게 해 주었고, 무더위도 아들과 함께하니 전혀 느껴지지 않았었습니다. 짧은 아들의 휴가는 제게는 힐링 그 자체였습니다.


그 아들을 만나러 출발하기 전 며칠 전부터 우리 부부는 이런저런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 준비가 저희 부부를 다시금 설레게 했습니다. 아들 외박 전날 밤 아들로부터 "내일 봐요~~~!"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고선 부랴부랴 출발 준비를 서둘러 사천으로 출발했습니다. 금요일이라서 차량 통행이 좀 한가한 밤늦게 아들이 군복무 중인 사천으로 출발했습니다. 들뜨는 마음에 신나는 음악도 틀고, 그 머나먼 길을 휴게실 한번 들르지 않고 단숨에 달려갔습니다. 도착하는 새벽 2시가 좀 안되었습니다.

지난번 아들 외박 때 발견한 부대 바로 옆에 있는 모텔로 향했습니다. 아들이 나오는 시간까지 피곤한 부부의 몸을 뉘이고 좀 쉬려고 모텔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짐을 풀고 침대에 몸을 뉘었지만 장시간의 운전으로 흥분한 저의 뇌는 조금 있으면 아들을 볼 수 있다는 설렘과 어우러져 도저히 잠을 청할 수 없었습니다. 옆의 아내는 출발 전 짐을 이것저것 챙기고, 운전하는 남편을 지켜보며 혹시나 졸지는 않을지, 운전이 위험하지는 않을지 내내 신경을 쓰다가 피곤해서인지 이내 잠에 빠져 들더군.

어느 누가 잠들었을 모르는 이 모텔, 퀴퀴한 담배 냄새, 습기로 인해 곰팡이 냄새인지 모를 불쾌한 냄새 등등에 불편하기는 했지만, 아들 부대 옆에서 쉴 수 있는 곳은 그나마 이곳뿐이었습니다.

불편한 자리에서 뒤척이다가 잠깐 잠이 들었습니다. "삐삐 삑! 삐삐 삑!" 제 몸의 알람시계가 울렸습니다.

굳이 핸드폰의 알람을 맞춰놓고 잠이 든 것도 아니었지만, 몸 안의 시계가 울리며 일어날 시간이 되었음을 알려 주었습니다. 아내도 부스럭부스럭 잠에서 깨어나더군요. 역시 아들만 한 각성제는 없나 봅니다. 몸이 알아서 저절로 깨어나게 합니다.

아들의 외박 첫날의 일정을 안전하게 진행하기 위해 서둘러 잠에서 깨어나기 위해 바로 샤워실로 향합니다.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면서 제 머릿속에 넣어둔 오늘의 일정을 하나씩 복기합니다. "서둘러요. 우리 아들 나오기 전에 가 있어야지요." 아내가 재촉합니다. "마누라는 안 씻어?" "전 세수만 하면 돼요." 아내가 퉁명하게 대답했습니다. 아내도 내심은 잘 안 했지만, 아들을 만나는 설렘이 온 가슴에 가득한 모양입니다.


준비를 마치고 서둘러 모텔을 나섭니다. 퇴실이 아니라 외출로 맞추고 나섭니다. 왜냐하면 아들을 데리고 다시 들어와서 아들이 몸을 씻고, 군복에서 집에서 챙겨 온 사복으로 갈아입히기 위해서입니다.


아들을 만나가 부대 앞으로 이동합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립니다. 아들을 입대시키기 위해 가던 날도 추적추적 비가 뿌렸었습니다. 아들이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잠깐의 면회를 갔을 때도, 아들이 자대 배치를 받아서 처음으로 사천을 내려갔을 때도 역시나 비가 왔었습니다. 심지어 아들이 휴가를 나오는 날은 태풍이 몰려오고 있어서 간신히 마지막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들 부대 앞으로 이동하는 때에도 역시나 비가 왔습니다. 군대에 아들을 보낸 우리 부부의 마음을 하늘이 대신해 주는지 비가 제법 많이 내렸습니다.

한동안 외박이 없었던 탓인지 꽤 많은 자가용이 저희 뒤로 부대 앞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더니 각각의 차에서 엄마로 보이는 아주머니들이 우산을 들고 굳게 닫혀 있는 부대 앞 철문에 서있기 시작했습니다.

"흠 나도 안 나설 수 없네!"라더니 아내가 우산을 들고 부대 철문 앞에 그 아주머니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후드득후드득 빗줄기가 더 굵어졌습니다. 아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우산을 쓰고 아주머니 대열에서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잠시 후 철컹하고 부대 앞 철문이 열리더니 아들이 나왔습니다. 멋쩍은 웃음 머금고 아내와 함께 제가 대기하고 있던 차 쪽으로 걸어왔습니다. "충성!" 아들의 경례소리에 코끝이 시렸습니다. "그래, 아들 고생 많았다 어서 타 비 맞는다." 이윽고 아들과 아내를 태우고 다시 모텔로 향했습니다. 운전대에 힘이 들어갑니다. 이미 장기간의 운전으로 지쳤던 몸은 다시금 새로운 기운으로 가득 차 버렸습니다. 아들과 함께한다는 긍정적인 에너지로 말이지요.

모텔로 들어가서 아들이 군복을 벗는 동안 아내는 매의 눈으로 아들이 어디 다치거나 상처 난 데는 없는지 살펴봅니다. "여기 왜 이래?" "아~~! 장화를 많이 신어서 쓸렸어요." "여긴?" "아 좀 다쳤어요." "에이~, 조심하지." "예. 헤헤헤."

아들이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사복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얼마 전 아들의 휴가 때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들, 서두르자. 배고프지 어서 아침 먹으러 가자."

"그래 아들, TV에서 이영자가 맛있다고 했던 백반집이야. 맛있데."

"아 그래요?"

아들은 벌써부터 핸드폰에 머리를 박고 대답하기 시작했습니다.


서둘러 모텔에서 나섰습니다. 목적지는 여수의 백반집, 사실 아들의 부대는 사천과 남해, 여수의 중간에 있습니다. 지난번 첫 번째 외박땐 사천과 삼천포 쪽에서 묵었고, 이번에는 숙소는 남해의 독일마을로 잡았고, 아침과 아들이 좋아하는 고기를 구입할 곳은 여수였습니다.

이동하는 길에 정말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 내렸습니다. 거의 바가지로 쏟아붓는 듯이 비가 내렸습니다. 그래도 아들이 뒤에 타고 있고 아내가 옆에 있기에 불안하거나 두렵지 않았습니다. 가족이 보내주는 긍정적인 에너지 '우리 아빠는 운전을 잘해. 비가 이렇게 내려도 안전해, 우린 아빠를 믿어.'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제게로 전달되었습니다.

폭우를 뚫고 여수의 백반집에 도착했습니다. 식사를 주문했더니 여러 가지 반찬과 제가 좋아하는 전어구이가 세 마리나 나왔습니다. "우와, 전어 맛있겠다." "아빠, 이게 전어예요?" "응. 너도 몇 번 먹어봤는데..." "네, 기억이 잘 안 나요."

"난 전어 별로예요. 가시가 너무 많아서..." 아내가 대화를 거듭니다.

"흠 나 오는 계 탔네. 하하하." 결국에는 그 세 마리의 전어를 거의 제게 혼자 다 먹었습니다. 식사 후 시장에서 장을 봤습니다. 맛있어 보이는 된장이 있길래 한 바가지 구입하고, 콩자반도 구입하고, 푸줏간으로 이동했습니다.

"아들 어떤 고기 먹을래?" "오겹살이요. 껍질 붙어 있는 걸로요." "소는?" "소고기는 별로예요." "먹고 싶으면 언제든 말해 아빠가 다시 사 올 테니깐." "네, 알았어요."

"사장님, 오겹살 맛있는 걸로 2킬로그램 주세요." "네네. 감사합니다."

시장에서 이것저것 사고, 다시 독일마을로 이동하며 아내가 여수에서 유명하다는 빵집에서 아이스크림과 빵을 몇 개 구입했습니다. 차 안에서 이동하며 서로의 입에 아이스크림을 밀어 넣고, 유쾌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며 이동했습니다. 차 안에 행복의 향기가 그득했습니다. 웃음소리와 한층 흥분하여 두 톤은 높아진 아내의 밝은 목소리, 귀찮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대답하는 낮고 굵은 아들의 목소리 아마도 제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소리입니다. 가족의 소리, 가족이 행복해하는 소리, 반목하지 않는 소리, 이런 소리 때문에 제가 살아가나 봅니다.

보통 펜션의 입실 시간은 오후 3시입니다. 그런데 비가 이렇게 많이 내리는 데 그때까지 시간을 보낼 곳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마누라, 펜션에 전화 함 해봐. 굳이 돌아다닐 게 아니라, 입실할 수 있으면 들어가서 아들 편히 쉬게 하자." "오호 입실할 수 있으면 좋죠. 엄마 전화 해 보세요." "응응 잠깐만."

비가 오는 날이니 일찍 입실해도 된다고 합니다. 우리 가족은 영락없는 집돌이 집순이들입니다.

"야호!" "우와 잘됐다!"

서둘러 독일마을의 숙소로 차를 몰았습니다. 가는 길에 경치가 좋은 곳이 여러 곳 있었지만, 폭우로 인해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들, 마누라 다음에 가을에 다시 올 거니깐. 그때 보자. 그때는 비 안 올 거야."

독일마을로 도착하여 숙소를 찾았습니다. 독일 마을의 제일 높은 산꼭대기에 있는 숙소였습니다.

"우와, 여기는 초보자나 여성 운전자는 올라갈 때 겁 좀 나겠다."

"우와, 경사가 장난이 아니네요. 아빠."

"예약할 때 올라가는 길이 좀 힘들다고 했어요. 그래도 가장 높은 곳이니깐 경치는 좋을 거예요."


"사장님, 저희 도착했는데 어디세요?"

"네, 이쪽에 있습니다."

아내가 펜션 사장님과 잠깐 대화를 하더니, "한 삼십쯤 더 걸린대요. 청소와 정비를 아직 끝내지 못했데요."

"그래? 그럼 아래에서 빵 사가지고 오자." "그래요."

지난번 방문 때 맛있었던 빵집들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 빵집에서 이것저것 빵들을 쓸어 담았습니다.

"지난번에 사갔던 밥빵들 맛있었어. 쟁여두고 먹자." "네, 그래요."

푸짐하게 빵 쇼핑을 하고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아들 점심 뭐 먹고 싶어?" "아 점심 별생각 없어요. 빵 사가지고 온 거 먹죠. 뭐."

"그래? 그럼 빵으로 간단하게 점심 때우고, 저녁을 일찍 먹자. 고기 구워서."

"네 그래요."

"빵에 아빠가 내려온 커피 곁들여서 먹어." "네 좋죠. 하하하."

이내 펜션 안에도 행복하고 푸근한 평안이 가득합니다. 이게 아들 효과인가 봅니다.

"남편, 어서 좀 누워서 쉬어요. 내내 운전하느라 피곤했잖아요."

"응? 아니야 아들이 있으니깐 피곤한 게 사라졌어."라며 아들 옆에 누워 봅니다. 아들 냄새가 너무도 좋습니다. 온몸의 피로가 풀어지는 느낌입니다. 아들의 짧게 깎은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까슬까슬한 느낌이 좋습니다.

"아들! 고생이 많다."

"헤헤헤 뭐 그렇죠." 아들은 대꾸는 하는데 시선은 핸드폰에 박혀 있습니다. 이건 어쩔 수 없다 봅니다.


아들과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스르륵 잠시 정신을 놓았습니다. 피곤한 나머지 잠깐 기절하듯이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아들도 아내도 차례로 잠깐의 꿀잠에 빠졌습니다.

온 방안이 포근한 쉼이 그득합니다.


얼마 후 잠에서 깬 뒤. "울 아들 고기 구워줘야지~~!" "잠깐만요. 천천히 준비 좀 하고요." "서둘러 군인은 배고프면 큰일 나! 어서 준비 서둘러!" 아내와 제가 티격태격하는 것을 보고 아들이 키득거립니다. 아들 눈에는 우리 부부의 이런 모습이 하나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라고 생각하겠지요.

"에이 비가 안 오면 야외 바비큐로 숯불에 구우면 맛있었을 텐데요."

"걱정하지 마! 내가 맛있게 구워줄게."

좁은 펜션 주방에서 집에서 준비해 온 버너에 고기를 굽습니다. 비가 와서 습한 데다가 고기 연기에 금세 펜션의 주방은 연기로 그득합니다. 그나마 중문이 있어서 연기가 아들이 있는 거실이나 침실 쪽으로는 들어가지 않아 다행이었습니다. 온몸은 땀과 고기 연기로 범벅되었고, 그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아내는 제 곁에서 연신 부채질을 해주었습니다.

맛있게 구워진 아들에게 가져다주고 저는 다시 남은 고기를 굽습니다. "아들 아빠 기다리지 말고 얼른 먼저 먹어." "그래도 아빠랑 같이 먹어야죠." "아니야 먼저 먹고 있어, 아빠 이거마저 굽고 들어갈게." "네. 아빠."

아들입으로 커다란 고기 한 점이 들어갑니다. 오물오물 먹는 아들의 입모양이 너무도 사랑스럽습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이런 말을 했나 봅니다. "자식 입에 들어가는 모습이 제일 이쁘다고. 안 먹어도 배부르다고."

전 영락없는 아들 바보입니다.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은 고기를 마저 굽고, 집에서 준비해 온 시원한 맥주로 건배를 합니다. "우리 가족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지." "행복하자" "행복하자. 하하하."

아들의 외박 첫날이 아쉬움을 뒤로하고 깊어만 갑니다.


밤이 깊어갈수록 감기는 눈꺼풀을 부릅뜨며 아들과 함께 합니다. 그러나 점점 의식은 꿈속으로 빠져듭니다.

그렇게 아들 외박 첫날밤이 깊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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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아직 어슴푸레한 아침 공기가 상쾌했습니다.

조용히 아내와 아들이 자고 있는 침대로 향했습니다. 다정스럽게 서로 마주 보며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아들의 표정은 평온했습니다. 아마도 오래간만에 단잠을 자서 그런 것인지 세상 편안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내의 표정은 약간은 찌푸린 얼굴이었습니다. '아니 아들 옆에서 자는데 저런 표정을 하고 있어'라고 생각했지만 아마도 전날의 피곤함에 이곳저곳 몸이 아픈 모양이었습니다. '그래 마누라도 전날 고생이 많았지. 두 남정네 돌보느라 바쁜 하루였지.'

노트북을 열고 유튜브를 열었습니다. 노트북 소리에 이내 아내가 잠에서 깨어 "조용히 해요. 아들 깨요."

아무 소리도 못하고 이내 노트북을 닫습니다. 창밖을 보니 비가 그쳤습니다. 주섬주섬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산책을 나섭니다. 이곳저곳 둘러보다가 저 밑에 보이는 바닷가까지 걸어갑니다. 매일 하는 산책이지만 오늘은 어쩐지 다리에 힘이 더 들어갑니다. 상쾌함도 더 합니다. 그렇지만 간밤의 비로 습기가 많아 눅눅하고 덥기까지 합니다. 온몸에 땀이 샘솟습니다. 터벅터벅 걷어가는 길에 독일 마을 곳곳에서 간밤에 구웠던 고기 냄새가 그득합니다.

바닷가는 나름 상쾌했습니다. 해변은 몽돌로 이루어졌었습니다. 구름과 해가 어우러져 멋진 풍경이었습니다. 자고 있는 아내와 아들에게 보여줄 심산으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해변도 산책하고 해변 근처의 방풍림도 산책하고 다시 산꼭대기에 있는 숙소로 발길을 옮깁니다. 다시금 다리에 힘이 들어갑니다. 아들과 아내가 자고 있는 그 숙소로 가뿐 숨을 몰아쉬며 열심히 걸어갑니다. 어느새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들었습니다.

숙소로 돌아와서 땀에 젖은 몸을 깨끗이 씻어내고, 집에서 준비해 온 커피를 핸드밀에 넣고 사각사각 갈아냅니다. 커피콩이 부서지면서 온 방안을 커피 향으로 물들입니다. 사각사각 커피 갈리는 소리가 유독 정겹습니다. '이 커피를 맛있게 내려서 아내와 아들에게 줘야지.' 속으로 되뇌며, 경건한 의식처럼 커피를 갈고 물을 끓여 커피를 내립니다. 정성껏 정성껏.

내려진 커피에서 풍겨 나오는 향이 정말 좋습니다. 부스럭부스럭 커피 향에 아들도 눈을 뜹니다. "아들 일어나서 커피 한잔해." "네 좋지요."

원래 아들은 커피를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후임으로 온 친구가 입대 전 바리스타로 일했다고 합니다. 그 영향에서인지 커피를 제법 마시더군요. "아빠 향 좋은 데요." "하하하 아빠가 커피 좀 내리지. 하하하." 커피와 어제사온 빵을 곁들여 간단히 아침을 해결합니다.

"아들 오늘 스케줄은 어떻게 할까?" "그냥 숙소에서 쉬어요." "그래, 그럼 어제 고기 좀 남았는데 아점으로 구워줄까?" "네 좋지요. 헤헤헤."

우리 가족은 집돌이 집순이입니다. 별로 맛도 없는 외식음식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희 집은 저도, 아내도, 그리고 아들도 요리를 잘하는 편입니다. 특히나 아들은 입대 전 요리를 공부했고, 앞으로도 요리 쪽으로 진로를 정했습니다. 그래서 군대에서도 조리병으로 복무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새벽에 일어나 밤늦게까지 취사를 하다 보니 그저 쉼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점심 먹고 저녁은 나가서 사 먹고 귀대할래? 아니면 저녁도 여기서 해 먹고 쉬다가 들어갈래?"

"쉬다가 들어갈래요."

"그래라 네가 편한 데로 해. 맘 바뀌면 말해. 언제든 변경할 수 있으니까."

"네." 그러나 맘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번의 외박여행에는 숙소를 이틀을 잡았습니다. 지난번 1박만 잡았더니, 퇴실 후 귀대할 때까지 여기저기 다니는 것이 영 불편한 게 아니었습니다. 맘 편이 쉴 수도 없었고요. 그래서 아예 이틀을 잡아서 귀대하는 시간까지 숙소에서 최대한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대 시간이 다가오자 아들은 조금 불안해하고 착잡해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아내와 저는 아들 눈치 보며 최대한 조용히 아들 곁에 있었습니다.


"저 여기 쇼핑하러 갈 건데." 아내가 식사를 마치고 말했습니다. 식사 때 역시 고기를 굽다 보니 온몸은 고기연기로 덮여 있어서 샤워를 하려고 했던 저는 "나도 같이 가자. 어차피 샤워하려고 했는데. 다녀오면 땀 좀 날 테니 같이 다녀와서 씻지 뭐."라고 하며 아내를 따라나섰습니다.


이미 아침에 산책을 한터라서 아내에게 구석구석 독일마을 설명하면서 걸어갔습니다. "마누라 아침에 여기를 지날 때 형형 색깔의 나비들이 한꺼번에 날아올랐는데 너무 멋있더라." "에이 사진 찍어오죠." "응 너무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서 그럴 시간이 없었어." 라며 산책로의 숲길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여기저기 선물센터, 공방을 둘러보며 지나가던 중 플리마켓을 연 주민집을 지났습니다. "물건을 좀 보고 갈게요." "네 둘러보세요." 서툰 한국말로 주민이 이야기했습니다. 아마도 독일마을 1세대의 자손인 듯싶었습니다. 물건 중 맘에 드는 와인오프너와 너츠클랙 커를 들고 주인여자분과 협상을 했습니다.

"이거 두 개 00에 주세요."

여주인장은 잠시 고민하더니 "네, 그러세요. 잘 사용하세요." "고맙습니다. 잘 사용할게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깔끔하게 거래를 마치고 다시 아내가 찾는 가게로 이동했습니다. 아내는 모빌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지난번에 독일마을을 방문했을 때 맘에 드는 걸 하나 구입했었는데 못내 마음 쓰였나 봅니다. 마음에 드는 모빌을 한 개만 구입하곤, "다음에 또 올게요." "아~~ 또 오세요?" "네 아들 때문에 몇 번 더 방문할 거 같네요." "네, 또 오세요."

아내가 구입한 모빌이 마음에 드는지 싱글벙글합니다. "올 때마다 한 개씩 구입하면 앞으로 4개는 더 생기겠네." "그렇게나 되나요?" "그럼 이제 앞으로 1년 남았잖아 분기에 한 번씩 오면 4번이야." "말년에도 와야겠죠?" "당연히 그때가 더 시간 안 갈 텐데. 더욱더 와야지."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며 발걸음을 옮깁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을 보더니 "우와 여기가 이렇게 경사진 곳이었어요?" "응 저쪽으로 돌아가면 경사가 좀 덜 가파른데 어떻게 할래?" "그냥 가죠 뭐." "그래 난 운동되고 좋지."

아내가 숨을 몰아쉬며 숙소로 돌아가는 길을 올라갑니다. 아내는 "헉 헉 헉" 가뿐 숨을 몰아쉬며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마누라 나 따라다니면서 둘레길도 걷고 산행도 하고 해서 그만한 거야." "말 시키지 말아요. 힘들어요."


점점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아들은 초조함이 표정에 드러났습니다. 저녁식사 때도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식사만 했습니다. 저희 부부는 최대한 아들을 자극하지 않고 눈치만 보았더랬죠.

숙소를 정리하고 아들의 부대로 이동을 합니다. 최대한 천천히 안전하게 차를 몹니다. 이대로 아들을 태우고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아들의 부대로 이동합니다. 그러면서 지금은 지난번 보다 훨씬 네 표정이 좋아진 거다. 지난번에는 너무 불안해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제 일 년 남았으니 조금만 더 힘내고 다치지 말고 아프지 말고 군대생활해라와 같은 뻔한 잔소리를 조금 늘어놓고 아들의 심기를 살핍니다.

어느덧 부대 앞에 도착했습니다. 아들과 깊은 포옹을 하고 "아들 건강해. 몸 조심하고." "네, 알겠습니다. 충성!" 짧은 이별을 뒤로하고 아들은 부대로 들어갔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또다시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마누라 출발하자 이별은 짧아야 해. 너 늦추면 눈물만 흐를 거야." 아내를 재촉하며 차를 다시 서울의 집으로 몰았습니다.


아들을 두고 오는 길은 만나러 올 때는 신나는 음악을 틀었었지만, 적막 그 자체였습니다. 엔진소리와 타이어소리, 지나치는 차량들의 소음만이 차 안에 그득했습니다. 그래도 지난번 외박 때보다는 좋아진 편이었지만, 그래도 아들을 부대에 두고 돌아오는 발길이 그다지 편치는 않았습니다.

아들과의 1박 2일이 꿈만 같았습니다. 정말 행복했습니다. 이 행복은 잠시 미뤄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또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살다가 살다가 또 이런 행복한 날이 다시 오겠지요.


저희 부부는 아들바보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기도 하지만, 너무 착하고 순진하고 성실한 저희 아들이 그 성실함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이용당하는 그래서 몸이 다치기까지 하는 그런 아들을 너무 좋아합니다.

그 좋아하는 아들과 1박 2일 동안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 행복한 기억을 마음에 담고 다음 외박을 기약해야겠습니다.


아들아 사랑한다. 지난 1박 2일 정말 네 덕분에 행복했다. 건강하고 다치지 말아라. 사랑한다. 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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