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로 인해 행복했다.
어릴 적에 무척 강아지를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알레르기가 심했던 아버지는 저희 집에서 개를 키우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옆집 개나 외갓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를 볼 때면 하루종일 강아지와 놀고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산책하던 중 개천 다리 밑에서 무언가를 심하게 때리는 어른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매달려 있던 것은 커다란 누렁이 개였습니다. 한참을 때린 다음 석유를 사용하는 토치로 개의 털을 그슬렸습니다. 그런 행위를 하는 어른들은 마냥 밝은 모습으로 잠시뒤 맛볼 고기의 맛을 상상이라도 하는 듯 즐거워 보였습니다. "아 사람들이 저 귀여운 개를 저렇게 해서 먹을 생각을 하다니..." 하며 털이 타면서 발생한 노린내를 뒤로 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외갓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외갓집에서 키우는 개의 이름은 무조건 메리였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키우는 개다 바뀌었습니다. 외숙부께서는 제가 개들과 노는 모습을 보면서 "이 녀석아 개한테 정 붙이지 말아라"라고만 하셨습니다. 그때는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이해가 잘 안 되었지만, 나중에 해마다 키우는 개를 식용으로..
즉 저희 외숙부님도 언젠가 개천변에서 봤던 그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 시대를 살아왔던 저에게 지금의 반려동물을 키우는 문화가 낯설었습니다. 아버지를 닮아 저도 고양이털 알레르기가 있고, 제 아들도 고양이털 알레르기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은 선 듯 결정하기 어려웠습니다.
친하게 지내는 어릴 적 친구가 근처에 살고 있습니다. 그 집에서는 뭉치라는 반려견과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15년 전부터 함께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가끔 그 집에 놀러 가면 제일 먼저 뭉치가 저희를 반겼고, 그 친구집에 머무르는 내내 저의 곁으로 다가와 엉덩이 만져달라고 엉덩이를 내밀고, 머리를 쓰다듬어달라고 머리를 내미는 사교성 많고 똑똑한 반려견이었습니다. 더구나 친구 내외는 "우리 뭉치는 우리 집 막내예요. 김뭉치." 그리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가지 말라고 짖어대고 낑낑대며 저희에게 매달리는 그런 반려견이었습니다.
이런 반려견을 어찌 안 이뻐할 수 있겠습니까. 친구집에 방문할 때면 친구에게 뭔가를 가져갈 생각을 하지 않고 뭉치가 좋아하는 음식 그중 최애라고 할 수 있는 순댓집에서 판매하는 모둠 순대 중 끼워주는 삶은 간을 잔뜩 사다가 뭉치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야 너는 내 입은 안 보이고 뭉치 입만 보이냐? 내 건 왜 안 사 와!"라며 친구 녀석이 너스레를 떨기도 했습니다.
그런 친구 녀석의 막내 같았던 뭉치가 올초부터는 몸이 많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봄에는 신장 하나를 떼어내는 대 수술도 있었습니다. 슬퍼하고 있을 친구 내외를 위로하기 위해 병원으로 간 저희 부부에게 "우린 뭉치 없으면 못 살아요. 비용이 얼마든 상관없이 우리랑 오래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해요. 이렇게 빨리 우리 뭉치 못 보내요."라며 친구 아내는 눈물을 보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후로 친구 녀석과의 만남에서 주요 관심사는 뭉치의 건강이었고, 부수적으로 뭉치로 인해 발생하는 병원비, 수술비, 약값 등으로 이야기가 넘어갔습니다. "야 우린 가난한 회사원이라서 그렇게 까지는 못한다. 아무튼 뭉치는 좋은 부모 만나서 잘 치료받고 있구나. 그나마 뭉치는 행복한 거다." "야 너도 닥쳐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될 거야." "글쎄다 난 경험해보지 않아서 잘 몰라, 너의 슬픔이 온전하게 이해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리 뭉치가 너희가 생각하는 것처럼 오랫동안 함께하길 바란다." 이런 이야기로 마무리되곤 했습니다.
그런 뭉치가 며칠 전 무지개다리를 건너갔습니다. 예상되었던 이별이지만 친구내외는 큰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더욱이 친구 녀석도 강인한 척했지만, 마음은 여린 녀석이라서 큰 충격으로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며칠간 친구에게 말 걸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래 뭉치는 이제 아픔 없는 곳으로 가서 행복하게 지낼 거야, 너희를 생각하며. 큰 슬픔 빨리 이겨내기 바란다." 정도의 말밖에 해주지 못했습니다.
그 녀석을 오늘 저녁, 어릴 적 친구들 모임에서 보게 됩니다. 오랜동안 친하게 지내는 친구 7명이 저희 집 근처의 맛있는 오마카세집에 모여 저녁식사를 하기로 한 달 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행사입니다. 친구 녀석은 이 모임에서 마실 저희가 태어난 해의 와인을 어렵게 준비하여 오마카세집에서 일차를 하고 이차로 저희 집으로 이동하여 와인 마실 때 개봉하기로 계획하고 있었는데 뭉치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것이었습니다.
오늘 모임에서 아마도 뭉치를 기리는 건배사 하나쯤은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친구 모두에게 뭉치와의 조그만 추억 하나쯤은 있었을 테니까요.
저는 이렇게 말하려고 합니다. "안녕 뭉치야, 아픔 없는 곳에서 행복하게 지내라 고마웠고 너로 인해 행복했다. 안녕 뭉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