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남미 여행기-1
작년, 두바이를 경유해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한국에서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까지는 9시간 정도 걸린다. 경유지인 두바이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3시였다. 비행기 안에서 잠을 자며 왔지만, 시차 때문인지 여전히 졸음이 쏟아졌다. 무거운 눈꺼풀을 붙잡으며 구글 지도를 눌렀다. 경유 시간이 짧아 공항 밖으로 나갈 수 없었는데 왜 지도를 켰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마 잠에 취한 채 으레 하던 대로 지도를 본 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익숙한 화면 속에서 지도에 떠 있는 내 현재 위치를 보았다. 그 순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내가 그동안 가보지 않았던 전혀 다른 대륙에 와있구나!
새로운 대륙에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굉장히 흥분되었다. 새로운 나라를 가는 것보다 더 두근거렸다. 잠시 거쳐가는 곳일 뿐인데도 이런 마음이 드는 게 그럴 일인가 싶었지만 미지의 세상에 한발 가까워졌다는 생각에 더 두근거리는 거 같았다. 내 심장은 '새로운 대륙'에 반응하는구나. 그렇다면 나의 다음 여행지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대륙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 이후로 새로운 여행지가 눈길을 끌었다. 바로 남아메리카 대륙, 남미였다.
남아메리카 대륙에 있는 나라들을 가기 위해선 여러 번의 경유와 긴 비행시간이 필요하다. 시간도 돈도 많이 필요하다. 내가 여행할 수 있는 기간은 20일 정도였다. 장장 20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서 여행하기에는 많이 짧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새로운 대륙이 주는 그 두근거림 때문이었다. 나는 젊을 때만 할 수 있는 걸 하는 것이 내 청춘이라는 시간을 가치 있게 쓰는 거라고 생각했고, 그 마음으로 부지런히 여행을 다녔다. 남미야말로 가는 여정에서부터 고생스러움이 훨씬 예상되니 젊을 때 더 가봐야 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기회가 있을지도 알 수가 없었다. 마음이 내킬 때, 이거 저거 따지지 말고 한번 가보자. 그렇게 나의 남미 여행기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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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를 여행하기로 마음을 먹고 나서 첫 번째로 준비한 것은 스페인어 공부였다. 남아메리카에 위치한 나라들은 브라질을 제외하고는 모두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남미를 여행할 때는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요즘은 번역 어플이 잘 되어있지만 매 순간마다 핸드폰을 들이밀며 소통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특히 나는 혼자 여행할 예정이어서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더더욱 언어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고민을 들은 친구가 스페인어 선생님을 소개해주었고, 그렇게 6개월 동안 기초 스페인어를 배웠다. 한번 시작한 배움은 여행을 다녀온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언어에는 참 재능이 없지만 계속해보자는 마음이다. 다음 글들에서 다루겠지만 어설프게 배운 스페인어는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두 번째로 준비한 것은 예방 접종이었다. 아프리카와 중남미 지역에는 황열병 같은 바이러스성 질병이 발생하는 국가들이 있고, 해당 국가를 가기 전에 이를 대비한 예방 접종이 필요하다. 아래 질병관리청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입국 시 황열 예방접종 증명서를 요구하는 국가와 황열병 위험국가로 정해져 있어 예방접종을 권고하는 국가들이 목록화되어있다. 또한, 예방 접종을 맞을 수 있는 병원들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예방 접종은 최소 출국 10일 전에 접종해야 한다고 한다.
☞ 질병관리청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황열병이나 콜레라 예방 접종을 맞을 수 있는 병원들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https://nqs.kdca.go.kr/nqs/vaccination.do?gubun=org
예방 접종이 가능한 병원에 미리 연락하여 백신 접종이 가능한지 문의를 한 후에 방문하는 것이 좋다. 나의 경우에도 우리 동네에서 접종이 가능한 병원들 중 한 곳에서는 백신이 없어서 당장은 접종이 어렵다는 답을 받았었다.
<황열병 예방 접종 방법>
1. 질병관리청 홈페이지에서 예방 접종을 맞을 수 있는 병원을 확인하고, 유선으로 문의 후 병원 예약하기.
2. 전자수입인지 발급받기
3. 발급받은 전자수입인지 가지고 예약한 병원 방문하기
예방 접종이 가능한 병원을 예약한 뒤, 전자수입인지를 발급받기 위해 우체국을 찾았다. 백신의 비용을 수입인지로 납부하는 시스템이라 전자수입인지가 꼭 필요하다. 우체국 및 은행에서 전자수입인지를 구입할 수 있고, 비용은 37,440원이다.
이제 전자수입인지를 들고 예약한 병원으로 가면 된다. 예방 접종은 감염내과에서 진행한다. 의사 선생님과 면담을 통해 황열병뿐만 아니라 필요한 감염병 예방 주사들을 확인한다. 의사 선생님께서 출국 예정인 나라는 어디인지 묻고 하나하나 최신 정보를 조회하여 필요한 예방 주사를 확인하였고, 나의 경우에는 황열병과 A형 간염 주사가 필요하였다. 예방 주사를 맞고 고산병 약도 함께 처방받았다.
세 번째로 준비한 것은 휴대용 전기장판과 침낭 라이너였다. 남미는 남반구에 위치해 있어 한국과 계절이 반대다. 남미의 7, 8월은 겨울이다. 겨울 여행에 대한 대비가 필요했다. 이번 여행에는 시간 절약을 위해 비행기 이동이 많았다. 위탁수화물로 짐을 부치면 짐 분실이 될 수도 있고, 짐을 찾는 시간이 한세월일 거 같았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는 16인치 기내용 캐리어로만 짐을 꾸렸다. 그동안 겨울 여행을 갈 때는 붙이는 핫팩 정도만 챙겼었는데 기내로 캐리어를 들고 가려면 무게가 10kg을 넘지 않아야 했다. 핫팩을 대신해 부피를 적게 차지하고 너무 무겁지 않으며 고효율로 따뜻하게 해 줄 물건들이 필요했다.
고심 끝에 휴대용 전기장판과 침낭 라이너를 장만했다. 페루의 고산 지대는 일교차가 심해 밤에 꽤나 추웠는데 전기장판 덕분에 아주 따뜻하게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침낭 라이너는 낡은 숙소에 묵을 때를 대비한 예방책이었다. 예전에 동유럽을 여행할 때, 베드버그가 나올 거 같은 숙소에서 불안감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던 경험이 있었다. 내가 모기도 잘 물리고, 알레르기에 취약한 피부를 가져서 그렇다.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 침낭 라이너를 사서 썼는데 아주 좋았다. 조금 위생이 걱정되었던 숙소에서도 마음 편하게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이렇게 단출하게 짐을 꾸렸지만 기내용 캐리어가 위탁수화물로 넘어간 일도 있었다. 페루 쿠스코 공항에서 보안 검색을 마치고 탑승동 출국 게이트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항공사 직원이 다가와서 하는 말이 그룹 4와 5는 기내용 캐리어를 위탁수화물 칸으로 보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룹 5였다. 항공사 기준에 따르면 소형 가방과 핸드 캐리 가방 모두 들고 탑승이 가능하고, 무게는 12kg까지 가능했다. 내 가방의 무게는 10kg 정도였다. 나뿐만 아니라 그룹 4와 5에 속한 사람들의 기내용 캐리어 크기의 가방들은 모두 위탁 수화물로 갔다. 환승 시간이 짧아서 최종 목적지인 브라질 상파울루로 짐이 같이 잘 올지 불안해졌었다. 이러기 싫어서 일부러 다 맞춰서 온 건데!
이후에 상파울루에서 콜롬비아 메데인으로 갈 때에도, 페루 리마에서 멕시코시티와 몬테레이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도 출국 게이트 앞에서 기내용 캐리어를 위탁수화물로 가지고 갔다. 무게도 크기도 모두 항공사 기준을 넘지 않았어서 아직도 이유는 모르겠다. 같은 항공사인데도 어떨 때는 기내용 캐리어를 가지고 탈 수 있었다. 짐을 뺏길 때마다 언짢았지만 화내봤자 좋을 게 없으니 부디 짐이 잘 오기만을 바라며 비행기를 탔다. 다행히 매번 짐은 잘 왔다.
20일 동안 크고 작게 탔던 비행기는 총 13번이었다. 이 정도면 비행기 타는 게 질릴 법도 한데 아직은 비행기 타는 게 좋다. 살면서 나에게 특출 난 재능이 있다고 느낀 게 손에 꼽는데, 비행기 타는 거만큼은 타고났나 싶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그 어떤 여행지 보다 그동안 기른 체력을 갈아 넣으며 다녔던 거 같다.
여전히 빈틈 많았던, 혼자 떠난 남미 여행기! 이제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