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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Sep 20. 2023

여자와 소인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다. “여자와 소인이야말로 돌보기 어렵다. 가까이하면 불손해지고, 멀리하면 원망한다.”(子曰, 唯女子與小人爲難養也. 近之則不孫, 遠之則怨.)


<논어>의 이 구절에 대해서는 여러 비판과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리링에게서 보듯이, 공자가 성차별을 했다는 것이다. 공자는 여자와 소인을 무시했는데, 이 사실은 변명할 필요가 없다.


내가 보기에, 논란이 될 만한 공자의 이 말을 합리화하고 미화하려는 노력은 대개 다음 두 가지로 나타나는 것 같다. 하나는, 이 말이 사실에 대한 묘사이지 가치판단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여자나 소인들은 그렇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은 “솔직히 말해서”이다. 그러나 여자와 소인에 대한 이러한 평가가 객관적 묘사라고 하는 주장이야말로 편견이다. 가치판단을 사실기술이라 우기는 사람과 토론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다른 하나는, 공자가 말한 여자와 소인의 뜻은 좀 다르다는 해석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여자”를 “汝子”라 보고 ‘이 사람, 너희 집 젊은이, 너의 아들, 너희 몇몇 학생’ 등으로 보고, “소인”을 ‘어린 아이[소해(小孩)]’로 풀이하는 따위다. 내 보기에 황당하기까지 한 불필요한 천착이다. 당시 여성 차별은 일반적인 인식이었다고 보아야 하고, 그런 점에서 리링의 말대로 변명할 필요 없겠다.


각설. 소인의 특성을 이처럼 간명하게 말한 것도 없을 것이다. 거리를 두지 않고 잘 지내려고 하면 곧장 머리 꼭대기까지 기어올라 함부로 나대고, 살짝 거리를 두면 자기를 무시하거나 배신했다고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내뱉는다. 그래서 소인과는 반드시 일정한 거리를 두고 관계를 맺어야 한다. 어쩌면 완전히 무시하거나 관계를 포기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주희는 “장엄함으로써 임하고 자애로써 기르면 이 두 가지 병폐가 없을 것”이라 했지만, 다산이 지적했듯이, “공자는 장엄함과 자애로써도 오히려 이 (불손과 원망) 두 가지 근심을 제거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에, ‘기르기 어렵다[난양(難養)]’”고 한 것이다. 소인과의 교재는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야말로 더불어 손잡고 가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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