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액 중 걸작으로 꼽는 평양 연광정(練光亭)의 ‘제일강산(第一江山)’의 유래에 대해서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은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연광정의 편액은 세상에서 주지번(朱之蕃)의 글씨라고 하는데, 본래 오운학(吳雲壑)이 북고산(北固山)에 새긴 ‘천하제일산(天下第一山)’을 본뜬 것이다. 그런데 중국 사신이 정자에 올라 두루 보고서 분수에 지나치다 하여 마침내 ‘천하(天下)’ 두 글자를 제거하고 ‘제일산(第一山)’ 세 글자만 남겨 두었다. 뒤에 상서 백하(尹白) 윤순(尹淳)이 ‘강(江)’ 자를 보충하여 ‘제일강산(第一江山)’ 네 자로 합하여 새겼다.”(『임하필기(林下筆記)』)
그러고 보니, <그림 1>에서 보듯이, ‘제일강산(第一江山)’에서 ‘강(江)’ 자가 나머지와 잘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이유원의 전언에 근거가 있음을 알겠다. 오운학은 남송 시대 오거(吳琚)를 말한다. 그런데 지금 볼 수 있는 연광정의 편액은 오거의 것이 아니라 미불(米芾, 1051~1107)의 것이 분명하다.
오거는 “미불의 글씨를 배운 자로 오직 오거가 매우 닮았다.”라고 한 동기창(董其昌, 1555~1636)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지금 남아 있는 오거의 ‘천하제일산(天下第一山)’의 글씨(<그림 2>)와 연광정의 ‘제일강산(第一江山)’의 글씨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를 금방 알 수 있다. 연광정의 ‘제일강산’은 오히려 미불의 ‘제일산(第一山)’(<그림 3>)과 거의 같다. 특히 ‘제(第)’ 자 하나만 보아도 분명히 알 수 있다.
요컨대, 연광정의 ‘제일강산’은 미불의 ‘제일산’ 석각 글씨 탁본을 집자한 것이 분명함 것이다. 참고로 현재 경포대의 편액 ‘제일강산(第一江山)’(<그림 4>)도 다름 아니라 미불의 글씨와 연광정의 편액을 모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