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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문(賣文)

by 진경환


어느 글을 보니, <난랑비서(鸞郞碑序)>의 “國有玄妙之道, 曰風流.....實乃包含三敎, 接化群生”을 이렇게 번역하였다. “나라에 현묘한 도(道)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 한다. … 이는 삼교(유교 불교 도교)를 내포한 것으로 모든 생명과 접촉하면 이들을 감화시키고 신명나게 한다.” 대단히 유려한 번역인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접화군생(接化群生)”은 풍류가 기존의 유교와 불교와 도교의 장처를 (요즘 말로) ‘통섭’하여 뭇 생명을 교화한다는 의미다. 그것이 문맥상 맞는 풀이일 것이다. 그것을 “모든 생명과 접촉하면 이들을 감화시키고 신명나게 한다”라고 옮기면, 언뜻 풍성해 보이기는 한다. 문제는 “신명”이라는 단어이다. 엄격히 말하면, 이것은 원문에 없는 말이다. 아무리 의역이라지만 거기에도 일정한 한계가 있는 법이다.


더욱 큰 문제는 풍류를 신명과 등치시키면서, 그 신명의 정신이 판소리와 비빔밥, 한지, 부채의 문화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판소리는 서민 대중의 애환을 신명나게 담아내고, 쥘부채는 소리하는 사람의 신명을 돋울 뿐만 아닐라 그것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천변만화하는 우주의 이치를 보여주며, 비빔밥은 우리 민족 고유의 어울림 정신이 그 밑바탕에 깔려 원재료와는 다른 한 단계 높은 맛을 끌어냈으며, 한지는 흰색을 존중하는 우리 민족의 정신을 담아 부채와 조화를 이뤘다는 것이다.


대단히 심각한 비약이자 교묘한 속임수이다. 더구나 이 주장이 전주라고 하는 특정 지역의 문화를 선양하는 자리에 동원되었다는 점은 불온하기 짝이 없다. 한마디로 이런 작태는 매문(賣文), 곧 돈을 벌기 위해 실속 없는 글을 지어서 팔아먹는 너절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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