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詩評)

by 진경환


역관 조신(曺伸, 1454~1529)의 『소문쇄록(謏聞瑣錄)』을 보니, 고려 때 권근과 변계량에게서 배우고 서거정을 배출한 유방선(柳方善)의 시를 혹평한 글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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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수풀에 음탕한 놀이 하 나라 수가 가련하고 / 肉林淫戲憐商受

비단 장막 호화한 사치에 석숭을 연상하게 하네 / 錦帳豪奢想石崇

목야의 피 흔적은 아직 땅에 가득 차고 / 牧野血痕猶滿地

관중에 아방궁 타는 불꽃 아직도 하늘을 태운다 / 關中火熖尙燒空


〈홍도화(紅桃花)〉라는 시다. 이 시를 조신은 “어심불아(語甚不雅)”, 곧 시어가 대단히 단아하지 않다고 혹평을 했다. 아마 시 전체의 톤이 붉은 빛으로 범벅이 되어 있어 그런게 아닌가 한다. 제목인 홍도화부터 붉고, 고기도 붉으며, 석숭(石崇)의 비단 장막도 붉은 것이고, 주왕과 무왕이 싸웠던 목야도 온통 핏빛이며, 아방궁 불타는 것도 시뻘겋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이 시는 오히려 홍도화를 보고 붉은 기운을 집요하게 추적해간 방유선의 솜씨가 대단하다.


제목을 밝히지 않은 다음 시구도 마찬가지다.


“죽림에 사람의 말소리가 푸르고 / 꽃밭에 새 우는 소리가 붉다[竹林人語碧, 花嵨鳥聲紅]” 이 시도 조신은 “사의곡교(詞意曲巧), 불성문리(不成文理)”, 곧 시어의 뜻이 아주 교묘하지만 문리에 맞지 않는다고 혹평했다. 아마 사람의 소리가 푸르고, 새소리가 붉다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평가인 것 같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요즘 시에 비기면 비록 떨어지는 비유이기는 하지만, 소위 공감각적인 심상을 잘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평가에는 아마 시에 대한 조신 나름의 기준이나 잣대가 적용되었을 것이다. 『소문쇄록』을 뒤져보니 그는 시를 다음 일곱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평가하였다. 혼후(渾厚), 침통(沉痛), 공치(工緻), 호장(豪壯), 웅기(雄奇), 한적(閑適), 고담(枯淡)이 그것이다. 말하자면 조신은 소박하고 무게 있으며, 심각하고 엄중하며, 정교하고 치밀하며, 호기롭고 장쾌하며, 웅장하고 기이하며, 한가하고 편안하며, 속되지 않고 담담한 시를 좋아한 것이다. 그러니 유방선의 시는 눈 밖에 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평가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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