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모든 게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기 마련이다. 서로 충돌하는 두 의견이나 입장이 모두 틀렸다는 입장을 취하는 양비론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양비론을 비판하려면 몇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시방 충돌하고 있는 두 의견이나 입장이 참이거나 참에 가까워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양쪽이 모두 거짓이거나 문제투성이라면 그것들은 비판의 대상이지 선택의 대상은 아닌 것이다. 거짓이거나 문제투성이인 것들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는 것은 폭력이다.
둘째, 둘이 모두 참이거나 참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둘의 차이가 미미하거나 둘이 거의 같은 수준과 맥락에 있다고 하면, 그 둘은 대립의 자리에 서서 배타적인 선택을 받을 자격이 없다. 애당초 선택지가 될 요건이 안 되기 때문이다.
셋째, 양비론을 취하지 말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요구는 제3의 존재를 무시한다는 점에서 폭압이기도 하다. 이때 제3의 존재도 역시 참이거나 참에 기까워야 한다. 만일 거짓이거나 문제투성이라면, 그건 제3의 존재가 될 자격이 없다. 그리고 제3의 존재는 꼭 제3의 선택지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선택을 포기하는 것도 포함된다.
넷째, 양비론 비판은 사실상 저 유구한 비판적 지지의 변종이거나 그것과 쌍생아라는 점을 분명히 그리고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양비론을 비판하는, 다시 말해 작은 차이를 본질적인 차이인 양 떠버리는 사람들을 궁색한 비판적 지지파라고 하면 언짢아 하는데, 그건 일종의 분열증에 가깝다. 비판적 지지야말로 기회주의자의 선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