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투브에서 어느 명망가 평론가가 다산초당에 답사를 가서 해설한 내용을 듣게 되었다.
“(정약용이 스스로) 다산이라고 칭한 적은 없어요. 해방 후에 박석무 씨가 ‘다산초당’이라고 해 가지고 이름을 지었죠. ‘다산’, ‘차가 많은 산’. 다산이 자기 호를 지은 건 사암이라고 자기 호를 제일 많이 지었기 때문에 사암, ‘기다리는 바위’, 백년이 되도 기다린다.. 그래서 자기 책에는 사암이라고 써 있어요...'기다리는 바위', 굉장히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여러 가지 불명확하고 잘못된 이야기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사암’을 ‘기다리는 바위’라고 푼 것이다. ‘사암’은 ‘俟菴’이라 쓴다. '俟巖’이 아닌 것이다.
‘사암(俟菴)’에서 ‘사’는 『중용』의 “군자는 평이한 도리를 행하면서 천명을 기다린다(君子居易以俟命)”에서 뜻을 취한 것이다. ‘암’은 ‘암자’라는 말로, 다산이 젊은 시절 자신의 서재를 ‘여유당(與猶堂)’이라고 했을 때의 ‘당’과 비슷한 의미로 보면 될 것 같다.
참고로 ‘여유당’이라고 할 때의 그 ‘여유(與猶)’는 “겨울에 시내를 건너는 것처럼 신중하게 하고[여(與)], 사방에서 나를 엿보는 것을 두려워하듯 경계하라.[유(猶)]”라는 노자의 말에서 따온 것이다. 다산은 스스로 그토록 매사에 신중하고 잘못할까 두려워했는데, 그를 존숭하고 따른다면서 함부로 말을 내뱉어서야 어디 쓰겠는가.
그가 쓴 글이나 말들을 읽고 보면, 너무나도 잘못된 내용이 그야말로 넘쳐나는데 아무도 고쳐주려 하지 않는다. 평소에 그가 보인 '선행'(?)들과 평소의 '성실성(?)' 때문에 관용을 베푸는 것 같다. 그런데 선행과 글쓰기는 서로 다른 영역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