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곤강(尹崑崗, 1911~1949)은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시인이다. 1930년대 초기에는 카프(KAPF)파의 한 사람으로 시를 썼으나, 곧 암흑과 불안, 절망을 노래하는 퇴폐적 시풍을 띠었고, 풍자적인 시를 썼으며, 해방 후에는 전통적 정서에 대한 애착과 탐구로 기울어지기 시작하였다는 게 기존의 평가인 것 같다.
아지못게라 검붉은 흙덩이 속에
나는 어찌하여 한 가닥 붉은 띠처럼
기인 허울을 쓰고 태어났는가
나면서부터 나의 신세는 청맹과니
눈도 코도 없는 어둠의 나그네이니
나는 나의 지나간 날을 모르노라
닥쳐 올 앞날은 더욱 모르노라
다못 오늘만을 알고 믿을 뿐이노라
낮은 진구렁 개울 속에 선잠을 엮고
밤은 사람들이 버리는 더러운 쓰레기 속에
단 이슬을 빨아마시며 노래부르노니
오직 소리 없이 고요한 밤만이
나의 즐거운 세월이노라
집도 절도 없는 나는야
남들이 좋다는 햇볕이 싫어
어둠의 나라 땅 밑에 번듯이 누워
흙물 달게 빨고 마시다가
비오는 날이면 따 우에 기어나와
갈 곳도 없는 길을 헤매노니
어느 거친 발길에 채이고 밟혀
몸이 으스러지고 두 도막에 잘려도
붉은 피 흘리며 흘리며 나는야
아프고 저린 가슴을 뒤틀며 사노라
(삼팔선을 생각하며)
나는 김수영의 다음 시평이야말로 군더더기 없이 정곡을 찌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
곤강은 한국적 애수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쓴 시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의 <지렁이의 노래>는 새로운 한국의 애수 속에서 몸부림치는 가장 처절한 작품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일제 시대하에서의 여유 있는 애수에서 벗어나 시대와 더불어 보다더 급한 박자를 취하게 된 한국의 감성은 좌냐 우냐의 혼란 속에서 새로운 진통을 겪게 되었다. ”삼팔선을 생각하며“ 노래한 이 작품은 그 당시의 작품 중에서 가장 우수한 작품은 아니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그 당시의 방황하는 현실을 소재로 한 가장 뜨거운 열기를 토하는 기념할만한 작품의 하나라고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그 당시에 인기있던 작품들보다도 오히려 이상한 향수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러고보면 임화의 <네 거리의 순이>보다도 오장환의 <라스트 츄레인> 같은 것이 해방 후에 안목있는 시독자들에게 은근히 인기 있었다. 장환은 해방 후 인정을 받고 <병든 서울> 등의 자극적인 시를 썼고, 공강은 <지렁이의 노래> 같은 퇴폐적인 잔재 짙은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죽고 말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 당시에 굉장한 인기를 차지한 <병든 서울>도 이 <지렁이의 노래>나 마찬가지로 진정한 힘을 얻은 작품은 못되었다.
...
참고로 오장환의 <병든 서울>을 보인다. 2002년 김재용이 편한 <오장환 전집>(실천문학사)에 들어 있다.
병(病)든 서울
8월 15일 밤에 나는 병원에서 울었다.
너희들은 다 같은 기쁨에
내가 운 줄 알지만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일본 천황의 방송도,
기쁨에 넘치는 소문도,
내게는 곧이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저 병든 탕아(蕩兒)로
홀어머니 앞에서 죽는 것이 부끄럽고 원통하였다.
그러나 하루 아침 자고 깨니
이것은 너무나 가슴을 터치는 사실이었다.
기쁘다는 말,
에이 소용도 없는 말이다.
그저 울면서 두 주먹을 부르쥐고
나는 병원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어째서 날마다 뛰쳐나간 것이냐.
큰 거리에는,
네거리에는, 누가 있느냐.
싱싱한 사람, 굳건한 청년, 씩씩한 웃음이 있는 줄 알았다.
아, 저마다 손에 손에 깃발을 날리며
노래조차 없는 군중이 만세로 노래를 부르며
이것도 하루 아침의 가벼운 흥분이라면……
병든 서울아, 나는 보았다.
언제나 눈물 없이 지날 수 없는 너의 거리마다
오늘은 더욱 짐승보다 더러운 심사에
눈깔에 불을 켜들고 날뛰는 장사치와
나다니는 사람에게
호기 있이 먼지를 씌워 주는 무슨 본부, 무슨 본부,
무슨 당, 무슨 당의 자동차.
그렇다. 병든 서울아,
지난날에 네가, 이 잡놈 저 잡놈
모두 다 술취한 놈들과 밤늦도록 어깨동무를 하다시피
아 다정한 서울아
나도 밑천을 털고 보면 그런 놈 중의 하나이다.
나라 없는 원통함에
에이, 나라 없는 우리들 청춘의 반항은 이러한 것이었다.
반항이여! 반항이여! 이 얼마나 눈물나게 신명나는 일이냐
아름다운 서울, 사랑하는 그리고 정들은 나의 서울아
나는 조급히 병원 문에서 뛰어나온다
포장친 음식점, 다 썩은 구루마에 차려 놓은 술장수
사뭇 돼지 구융같이 늘어선
끝끝내 더러운 거릴지라도
아, 나의 뼈와 살은 이곳에서 굵어졌다.
병든 서울, 아름다운, 그리고 미칠 것 같은 나의 서울아
네 품에 아무리 춤추는 바보와 술취한 망종이 다시 끓어도
나는 또 보았다.
우리들 인민의 이름으로 씩씩한 새 나라를 세우려 힘쓰는 이들을……
그리고 나는 외친다.
우리 모든 인민의 이름으로
우리네 인민의 공통된 행복을 위하여
우리들은 얼마나 이것을 바라는 것이냐.
아, 인민의 힘으로 되는 새 나라
8월 15일, 9월 15일,
아니, 삼백예순 날
나는 죽기가 싫다고 몸부림치면서 울겠다.
너희들은 모두 다 내가
시골 구석에서 자식 땜에 아주 상해 버린 홀어머니만을 위하여 우는 줄 아느냐.
아니다, 아니다. 나는 보고 싶으다.
큰물이 지나간 서울의 하늘아
그때는 맑게 개인 하늘에
젊은이의 그리는 씩씩한 꿈들이 흰구름처럼 떠도는 것을……
아름다운 서울, 사모치는, 그리고, 자랑스런 나의 서울아,
나라 없이 자라난 서른 해
나는 고향까지 없었다.
그리고, 내가 길거리에서 자빠져 죽는 날,
그곳은 넓은 하늘과 푸른 솔밭이나 잔디 한 뼘도 없는
너의 가장 번화한 거리
종로의 뒷골목 썩은 냄새 나는 선술집 문턱으로 알았다.
그러나 나는 이처럼 살았다.
그리고 나의 반항은 잠시 끝났다.
아 그 동안 슬픔에 울기만 하여 이냥 질척거리는 내 눈
아 그 동안 독한 술과 끝없는 비굴과 절망에 문드러진 내 쓸개
내 눈깔을 뽑아 버리랴, 내 쓸개를 잡아 떼어 길거리에 팽개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