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헌력(時憲曆)

by 진경환


어느 책에 시헌력에 대해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시헌력은 태양의 고도에 따라 24절기를 정하고 있지만, 태양력이 아닌 태음력이었다. 서양의 역법을 채택하기는 하지만, 동양의 고유 역법인 태음력도 포기할 수 없었다." 맞는 얘기지만 적절한지는 모르겠다. "태음력에 태양력의 원리를 적용하여 24절기의 시각과 하루의 시각을 정밀하게 계산하여 만든 역법"이라고 하는 게 더 나아 보인다. 참고로 1985년에 태양력을 공식적으로 채택했지만 여전히 시헌력을 함께 썼다.


각설. 《농가월령가》를 한역한 김형수(金逈洙)의 《농가십이월속시(農家十二月俗詩)》에 이런 시구가 보인다.


고래최정금시헌(古來最精今時憲)

이마두산멸이가(利瑪竇算蔑以加)


마침 번역본이 두 개 있어 보니, 하나는 "예부터 가장 좋은 것은 지금의 법이라, 마테오 리치의 계산법을 더 업신여기지", 다른 하나는 "예부터 좋은 법은 현행의 시책이니, 야소교의 역산법도 보탤 것 별로 없다"로 풀이했다.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 이 시에서 '이마두'는 마테오 리치의 음역, '이마두산'은 그레고리 역(曆), 앞 구절의 '시헌'은 마테오 리치의 호. 앞서 말했듯이, 시헌력은 태음력에 태양력의 원리를 적용하여 24절기와 하루의 시각을 정밀히 계산한 역법.


그렇다면 위 시구는 "예부터 가장 정밀한 건 지금 쓰는 시헌력, 마테오 리치의 계산은 더할 나위 없다네"라고 풀어야 할 것이다. 기존 번역은 전혀 반대로 해석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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