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이혼, 정확히는 합의이혼 문서가 전한다. 임문숙이라는 사람이 그의 처 김씨의 행실을 문제삼아 이혼을 하고자 만든 문서이다. 내용은 대개 이렇다.(시기는 癸卯年이라 했으니 1723~1843년일 듯)
"오른쪽 수표의 일을 말할 것 같으면, 본처 김씨 아내에 부족한 행실이 있어, (내가 그녀를) 영영 박대한다면 같이 사는 데 폐단이 있을 것이니, 영원히 상관하지 않는다는 뜻에서 이 수표를 작성하고 돈 200냥을 주기로 한다. 차후에 만일 여러 친족들이 이 문제로 다시 시비를 벌인다면, 이 문서로 관청에 고한다."(手標는 돈이나 물품 따위를 꾸거나 꾸어 줄 때 또는 맡길 때에 주고받는 증서)
김씨의 부족한 행실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여하튼 요즘 식으로 '귀책 배우자'에게 거액의 위자료를 주었다. 이혼을 '무상관(無相觀)', 곧 서로 보지 말자고 표현한 것도 흥미롭다.
내가 알기로 우리 나라에서 이혼을 기록한 첫 사례는 《삼국유사》에서 조신이 그의 아내와 헤어지기로 한 데서 처음 보인다. 그때 조신의 아내가 먼저 이혼을 제안하고 조신이 흔쾌히 받아들이는데, 둘이 나누는 대화가 '칼 같다.'
"조신은 아내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각자 아이들을 둘씩 데리고 헤어지기로 하였다. 떠나기 전에 아내가 말하였다. '저는 고향으로 갈 테니 당신은 남쪽으로 가십시오.'" 서로 일체 상관하지 말고 '찢어지자'는 것이다. 임문숙의 수결, 곧 싸인에서 그런 마음이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