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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탈리즘

by 진경환


글 좀 읽었다는 사람에게 ‘이게 무슨 말인 줄 아느냐’고 물으면 오히려 실례가 될 정도로 널리 쓰이는 말이다. 그런데 그 의미를 정말 잘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예전의 어느 인터뷰를 읽으니, 문화재와 전통문화를 이끄는 어느 조직의 장이 이런 말을 하고 있다. “국수주의적 시각으로 우리 것이 더 아름답다는 생각을 가지고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다름을 찾으려 하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문화를 충분히 이해하고 문화재의 진면목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지극히 지당한 ‘말씀’이어서 식상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나마나한 이런 뻔한 말은 가능한 한 삼가는 것이 좋겠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남을 통해서 나의 정체성을 찾자는 얘기지, 남을 통해서 나의 우월성을 찾자는 것은 아닙니다.” 단적으로 말해 보자. 바로 이런 사고방식과 발언이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이다. “나의 정체성”이라는 게 있고, 그것이 의미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왜 하필 “남을 통해서” 찾으려 하는가.


‘나’ 스스로는 소위 정체성을 이해할 수 없고, ‘남’ 특히 서양의 눈을 통할 때 비로소 그것이 조명을 받고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는 것, 그것이 오리엔탈리즘의 핵심이다. ‘나’와 ‘우리’는 ‘남’의 시각으로 해석될 때만 주체로 설 수 있다는 것이다. 동양에 대한 서양의 지배는 그렇게 시작된다.


예를 들어 이런 글을 보자. “우리의 보자기에는 몬드리안이 있고 폴 클레도 있다.....현대에 이르러 더욱 높이 평가되고 있는 조각보의 구성미는 서구의 몬드리안이나 클레 등의 회화작품들과도 간혹 비교되기도 하는데, 이들의 작품들이 색의 질서와 조화 등을 충분히 고려하여 제작된 데 비해 백여 년 앞서 제작된 우리나라 조각보의 색채 구성은 보다 자유롭고 순수하다고 할 수 있다.” 어느 유명한 한국미술사가의 발언이다. 우리 조각보의 의미나 가치는 몬드리안이나 클레라고 하는 기준 혹은 근거 없이는 설명될 수 없다.


오리엔탈리즘의 폐해를 안다고 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저런 말을 서슴지 않고 해대는 것, 그건 저 “국수주의”보다 훨씬 더 나쁘다. 위 조직의 장이 이런 것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은 아닐지 모른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훨씬 더 커진다. 문화재와 전통문화를 업으로 삼고 이끄는 이가 오리엔탈리즘을 가볍게 넘겨 버리는 것, 그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언젠가 누군가 ‘학령인구를 왜 학년인구라고 말하지 않느냐’고 얘기했다고, ‘참으로 한심하다’고 혀를 차는 이를 보았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그건 위의 사례에 비추어 볼 때 오히려 애교에 가깝다. 맨날 서구(선진) 사례나 뒤지고 에세이, 혹은 아이디어 개발서 따위나 보지 말고, 제발 공부 좀 제대로 하자! 그리고 나서 입을 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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