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발레리, 별로 떠오르는 게 없는 시인이지만, 간혹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구절 때문에 <해변의 묘지>는 기억이 난다. 정신을 가다듬고 전편을 읽어보지는 않았는데, 갑자기 읽고 싶어졌다. 옆에 책이 없어 인터넷을 뒤져보니 마침 그 일부가 김현의 번역으로 보인다. 저 얇고 낡은 시집이 책장 어딘가에서 먼지를 인 채 정적과 싸우고 있을 것이다. 조용히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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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육체여, 그 사고의 틀을 깨거라!
내 가슴이여, 바람의 탄생을 마시라!
바다에서 나온 신선함이
나에게 내 혼을 돌려준다 … 오 짜디짠 힘이여!
파도로 달려가 다시 생생하게 솟아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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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인다… 살려고 애써야 한다!
거대한 대기가 내 책을 폈다가 다시 접는다,
가루 같은 물결이 바위에서 솟아난다!
날아가거라, 정말 눈부신 책장들이여!
부숴라, 파도여! 희열하는 물로 부숴라
삼각 돛들이 모이를 쪼고 있던 이 지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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