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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변적/급진적 공산주의’

by 진경환


바디우, 지젝, 아감벤 등에 대해서는 귀동냥을 약간 했을 뿐 '본격적인' 독서를 한 적은 없다. 2014년 봄 <황해문화>에 실린 진태원의 글을 읽어보니, 대략 감을 좀 잡을 수는 있겠다.(어설픈 독후감을 적어본다.)


바디우 등은 푸코, 들뢰즈, 데리다 등 포스트주의 사상가들의 후배들로 ‘포스트-포스트 담론’의 대표자들이다. 이들은 ‘공산주의의 이념’을 정면에서 내세우는 급진적 이론가들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들 포스트-포스트주의자들의 급진적인 정치의식, 전복적이고 때로는 파괴적이기까지 한 주장에 대해 이 땅의 운동권 좌파나 맑스주의자를 자처하는 진보인사들은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들에 대해 강렬한 호기심을 갖거나 열광적인 환호(지젝, 바디우, 랑시에르가 내한했을 때 보인 반응을 상기할 것)를 보인 사람들은 따로 있다. 대체로 자유주의자들이면서, 현실정치에서는 대개 현재의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대단히 흥미롭지만 괴이한 일이다. 공산주의의 이념을 강조하는 가장 급진적인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는 이들이, 라클라우나 무페 같은 급진적 민주주의자까지 개량적이라고 비판하는 이들이, 어째서 선거철이 되면 민주당에 표를 던지려 하는가 모를 일이다.


그 의문의 일부는, 그 포스트-포스트주의자들이 사변적인 정치학에 몰두하고 있다는 데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그들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나 국가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을 제시하지 않으며, 그것에 맞설 수 있는 대안적인 운동이나 조직에 관한 구체적인 성찰도 보여주지 않는다. 항상 혁명과 봉기, 단절을 주장하고 자본주의의 종말을 외치며 메시아적 시간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사변적인 차원에서의 성찰이고 호소라는 점이다. 한 마디로 그들이 주장하는 공산주의는 ‘맑스주의 없는 공산주의’(네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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