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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May 11. 2024

핑계


"엘리베이터가 멎었다. 그들은 층계참으로 내려섰다. 내가 문을 열어드릴까. 고맙습니다만 그건 나 혼자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눈이 먼 남자는 호주머니에서 열쇠 몇 개가 걸린 고리를 꺼내더니, 열쇠의 톱니 자국을 하나하나 더듬어보기 시작했다. 이건 것 같습니다."


해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유명한 소설에 나오는 이 짧은 단락에서 모르는 단어 하나와 교정을 잘못 본 문장이 하나 나온다.


그것도 그렇지만 갑자기 눈이 멀어 당혹스러운 이의 심정이 대화 속에 담겨 있지 않다. 그리고 "내가"와 "나", "그건"은 우리 일상어법에 어울리지 않는다.


언젠간 읽어야지 하면서도 선뜻 손이 가지 않던 소설을 집어들자마자 보이는 첫 문단이 저러니 이 책은 인연이 닿지 않는 모양이다. 일류 번역가의 문장에서 흠을 찾다 보면 소설에 빠져들 수 없으니, 차음부터 읽지 않는 게 나을 듯하다고 생각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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