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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May 11. 2024

특질고(特質考)


'특질'은 다른 것과는 구별되는 성질이나 기질을 말한다. 오영수에 따르면, 특질은 원래가 특성(特性)과도 통하고 기질과도 상통하지만 딴 데서 흔히 볼 수 없는, 그렇다고 해서 어떤 모양이나 틀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요, 또 오관(五官)으로 느낄 수도 없는 감성적, 심정적, 습관 이런 것들이 버릇화되어 버린 생활화 현상의 앙금 같은 것이다.


오영수는 1979년 <문학사상> 신년호에 '특질고'라는 글을 써서 크게 곤욕을 치렀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은 전라도 사람의 특질이다. "표리부동(表裏不同) 신의(信義)가 없다. 입속것을 옮겨 줄 듯 사귀다가도 헤어질 때는 배신(背信)을 한다. 그런 만큼 간사(奸邪)하고 자기 위주요, 아리(我利)다."라는 구절이 문제된 것이다.


오늘 전라도 출신 후배와 이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는 대체로 저 주장을 부인하지는 않는 듯하면서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점을 힘주어 강조했다. 한마디로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객지에 나가 살려고 아등바등하다 보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 결과 그런 평가를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도 그의 말에 수긍을 하면서도 한켠으로는 흔쾌히 납득하기는 어려웠다. 그 논리라면 상대적으로 가진 것에 여유가 있는 전라도 사람들의 경우는 어떤가? 그들이 가진 것 없는 사람들 하고는 다르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더구나 다른 지역, 예컨대 경상도 사람으로서 가진 것 없이 서울로 올라와 세파에 시달리면서 살아가는 경우는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내가 보기에, 고향에 대한 후배의 '충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가 내세운 전제나 논지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뿐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반론을 불러올 우려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논지보다는 이런 식의 접근이 어떨까 생각했다. 사람에게 지역적으로 타고나는 일종의 본성 같은 것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인지, 지역적 환경과 개인적 성격의 관련을 과하게 강조해도 좋은지, 어떤 경향성에 불과한 것을 일반화하고 있는 건 아닌지, 성격은 순전히 개인적인 기질인지 아니면 집단적으로 만들어진 결과인지, 오영수의 주장 같은 것은 근거없는 사회적 편견이 작동을 한 결과인지, 아니면 정치꾼들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 조작해낸 소위 '지역감정'의 소산인지 등등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따져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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