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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May 27. 2024

다시 번역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에서는 '농(櫳)' 자를 "난간"이라 풀이하고, 그 용례로 '벽농(碧櫳)'을 들면서 김극시의 다음 시구를 인용하고 있다.  “처마 끝 산마루의 달이 붉는 석가래를 지나갈 때, 베갯머리 시내에 비친 구름이 푸른 나무 그림자 사이로 양치질하네[簷端嶺月流朱栱, 枕上溪雲漱碧櫳)”[金克己, 『金居士集』]


런데 저 번역이 아무래도 거슬린다.


우선 “석가래”라는 말은 없다. “서까래”라고 해야 한다. 다음 도대체 저 말이 무슨 뜻인가? 아무리 시적 허용이 용인된다 해도 말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베갯머리 시내에 비친 구름이 푸른 나무 그림자 사이로 양치질하네”를 나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수(漱)”는 물론 “양치질하다”의 뜻을 가진 말이다. “수석침류(漱石枕流)”라는 말이 있다.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 삼는다”는 뜻이다. 남에게 지기 싫어서 억지 고집을 부리는 상황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우선 표제어인 “벽농(碧櫳)”을 “푸른나무 그림자”라고 해석할 근거는 없어 보인다. 연행록의 하나인 『계산기정(薊山紀程)』에 “앞 사람들 올라왔던 자리라, 시들이 푸른 창틀에 가득하구나(前輩登臨蹟, 詩篇滿碧櫳)”라는 시구가 보인다. 윤증(尹拯)도 “두 쪽 창문 활짝 열고 기둥에 기댔더니, 하늘에는 붉은 구름 산은 해를 머금었네(雙排碧櫳倚樓柱, 絳雲在霄山含日)”라는 시구를 남겼다. 이로 보면, “벽농”은 요즘 말로 무엇이 적절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창틀이나 창문 같은 것으로 보면 큰 문제가 없지 않을까 한다.


다음 “계운(溪雲)”이다. 보통 “시냇구름”이라고들 옮기지만, 다음 장유(張維)의 시구 “산 그림자 마루 밖에 드리워지고, 시냇가 운무 방에까지 들어오네(嶽影當軒外, 溪雲入戶中)”에서 보듯이, 시냇가에서 피어오르는 안개 같은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枕上溪雲漱碧櫳”에서 “수(漱)”는 양치질한다는 뜻이 아니라 흘러닥친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 그러면 이 구절은 대개 ‘창문을 타고 안개가 머리맡까지 흘러 넘어오네’ 정도로 풀어야 하지 않을까?


요컨대 “처마 끝 산마루의 달이 붉는 석가래를 지나갈 때, 베갯머리 시내에 비친 구름이 푸른 나무 그림자 사이로 양치질하네”는 “처마 끝 산마루 걸린 달이 서까래를 지나자, 밤안개는 창을 타고 배갯머리로 흘러드네”로 하면 더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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