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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May 28. 2024

쁘띠부르주아

“마땅히 해야 할 것을 보고서도 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어서이다(見義不爲, 無勇也).” 공자의 말이다.


지식인이라면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대개는 ‘알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느냐 아니냐이다. 인식과 실천을 결합하려고 애쓰는 것이 참된 지식인의 존재의의일 것이다.


맑스는 「루이 보나빠르뜨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소시민, 곧 쁘띠부르주아를 “희망과 공포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존재”라고 규정한 바 있다.


그들은 일이 잘 되어 갈 때는 희망에 들떠서 다가올 미래를 가슴 벅차게 설계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게 돌아가면 그것이 몰고 올 공포를 두려워하면서 이른바 ‘정세분석’에 들어가 물러선다.


그런데 지식인의 대부분은 계급적으로 쁘띠부르주아에 가까울 터이니, 그런 사람들에게 인식과 실천의 결합을 요구하는 것은 애당초 무리일지도 모른다.


맑스는 이렇게 말했다. “(어려운 상황이 되면) 민주파 인사들은 패배에 직면해 자신은 아무런 오점도 없이 결백한 것처럼 그렇게 가장 불명예스러운 상황과 국면에서 슬쩍 빠져 나오는데”, 바로 그것이 그들 계급의 기본 속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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