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경환 Jun 01. 2024

오늘 독서

오늘 독서로는 <시집 <말똥구리> 서문>, 이것 하나로 충분하다.



옛날에 황희(黃喜) 정승이 공무를 마치고 돌아오자 그 딸이 맞이하며 묻기를,

“아버님께서 이〔蝨〕를 아십니까? 이는 어디서 생기는 것입니까? 옷에서 생기지요?”

하니,

“그렇단다.”

하므로 딸이 웃으며,

“내가 확실히 이겼다.”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며느리가 묻기를,

“이는 살에서 생기는 게 아닙니까?”

하니,

“그렇고 말고.”

하므로 며느리가 웃으며,

“아버님이 나를 옳다 하시네요.”

하였다. 이를 보던 부인이 화가 나서 말하기를,

“누가 대감더러 슬기롭다고 하겠소. 송사(訟事)하는 마당에 두 쪽을 다 옳다 하시니.”

하니, 정승이 빙그레 웃으며,

“딸아이와 며느리 둘 다 이리 오너라. 무릇 이라는 벌레는 살이 아니면 생기지 않고, 옷이 아니면 붙어 있지 못한다. 그래서 두 말이 다 옳은 것이니라. 그러나 장롱 속에 있는 옷에도 이가 있고, 너희들이 옷을 벗고 있다 해도 오히려 가려울 때가 있을 것이다. 땀 기운이 무럭무럭 나고 옷에 먹인 풀 기운이 푹푹 찌는 가운데 떨어져 있지도 않고 붙어 있지도 않은, 옷과 살의 중간에서 이가 생기느니라.”

하였다.


백호(白湖) 임제(林悌)가 말을 타려고 하자 종놈이 나서며 말하기를,

“나으리께서 취하셨군요. 한쪽에는 가죽신을 신고, 다른 한쪽에는 짚신을 신으셨으니.”

하니, 백호가 꾸짖으며

“길 오른쪽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보고 가죽신을 신었다 할 것이고, 길 왼쪽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보고 짚신을 신었다 할 것이니, 내가 뭘 걱정하겠느냐.”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논할 것 같으면, 천하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것으로 발만 한 것이 없는데도 보는 방향이 다르면 그 사람이 가죽신을 신었는지 짚신을 신었는지 분간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참되고 올바른 식견은 진실로 옳다고 여기는 것과 그르다고 여기는 것의 중간에 있다. 예를 들어 땀에서 이가 생기는 것은 지극히 은미하여 살피기 어렵기는 하지만, 옷과 살 사이에 본디 그 공간이 있는 것이다. 떨어져 있지도 않고 붙어 있지도 않으며, 오른쪽도 아니고 왼쪽도 아니라 할 것이니, 누가 그 ‘중간〔中〕’을 알 수가 있겠는가.

작가의 이전글 박대정심(博大精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