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by 진경환


며칠 있으면 한식이다. 나는 칭병하며 누워 있지만(사실은 혼자서도 자주 다니니 오늘은 좀 면제를 받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형제들은 모두 부모님 산소에 갔다. 이른바 묘제(墓祭)다.


지금은 묘제 풍습 정도만 남아있지만, 조선 시대 한식은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의 하나였다. 청춘들의 명절인 단오와 조상을 생각하는 한식은 각각 화이트(발렌타인)데이나 크리스마스에 밀려난 모양이다.(참고로 왕실에서는 동지를 더해 다섯 절향(節享)으로 삼는다.)


《경도잡지》에 따르면, 이 4대 명절 가운데 한식과 추석이 가장 성했고, 한식엔 “(묘제를 가느라) 사방의 교외에서는 사람들의 행렬이 길게 이어져 끊이지 않”았다.


“한식은 냉절(冷節) 혹은 숙식(熟食)으로 불렀는데, 이는 대개 자추(子推)가 불에 타 죽었기 때문에, 불에 태운 것을 마음 아파하고 가련히 여기는 유풍(遺風)이다.”(《동국세시기》)


그러나 육당에 따르면, 이 이야기는 “근거 없이 만들어낸 말”이다. “시속에서 이르기를 중국의 춘추(春秋) 시절에 진(晉) 나라의 조정에 가정 풍파가 있어 임금의 아들이 망명 도주할새, 개자추라는 충신이 이이를 따라서 18년 동안 각국으로 돌아다녔더니, 나중에 그이가 돌아와서 임금이 되었으나 잊어버리고 그 공을 갚지 아니하니, 자추가 원망하는 일 없이 그 어머니를 모시고 산중으로 들어가서 숨고 나오지 아니하였는데, 임금이 뒤에 정신을 차리고 자추를 찾다가 못하여, 산에 불을 질러서 자추가 그만 타 죽은 고로, 세상에서 그를 동정하여 그 타 죽은 날 불기[火氣]를 하지 않고 찬밥을 먹게 된 것이 한식이니라 함은 근거 없이 만들어 낸 말입니다.”(《조선상식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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