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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환 Jul 05. 2024

오후의 잡상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은 어렸을 적 뭔가 대단한 말인 듯하여 여러 번 읽었었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근심과 고통에 관한 구절이었다.


處世不求無難, 世無難則驕奢必起.

是故大聖化人, 以患難爲解脫.


우리말로 멋지게 옮긴 예가 많지만, 직역을 하면 이렇다. “세상 살면서 근심과 고통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에 근심과 고통이 없으면 뻐기고 잘난 체하려는 마음이 반드시 일어난다. 그래서 성인이 사람들에게 가르치기를, ‘근심과 고통으로 해탈을 삼으라.’고 했다.”


내 생각에, “난(難)”을 ‘어려움이나 곤란함’으로 풀지 않고 ‘근심과 고통’으로 푼 것은, 대개 그것들이 서로 뜻이 통할 뿐 아니라, 그래야 저 말의 뜻이 좀 더 구체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예기》의 “임난무구면(臨難毋苟免)”을 “근심과 고통이 다가오면 그것을 구차하게 피하려 하지 말라.”고 풀이하면 좀 더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교사(驕奢)”도 ‘뻐기고 잘난 체하는 마음’으로 풀었다.


이렇게 주절거리다 보니 우스운 생각이 든다. ‘나는 매일매일을 근심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데도 왜 뻐기고 잘난 체하려는 마음이 있는가?’ 이래서 나는 “근심과 고통으로 해탈을 삼”지 못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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