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첫 생일을 장례식장에서 보냈다.

2. 바다의 바다

by 주 원

하루에도 오락가락, 나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는 감정 때문에 한때는 잠깐 내가 우울증에 걸렸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정말 말 그대로 잠깐이었다. 우울증이라는 무겁고,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겪고 있을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그저 자질구레한 것들에 크게 아파하는 별것에 유난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내 힘듦을 쉽게 말할 수 없는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들을 털어놓았을 때, 혹여나 “모두가 다 그래. 너만 그런 거 아니야. 왜 그렇게 유난을 떨어.”라는 무서운 답변을 들을 것 같아서. 그 말을 들으면 진짜 내가 마음 놓고 힘들어하지도 못할 것 같아서. 뭐 그런 이유들 때문이었다고 말하면 설명이 되려나.


이런 궤변을 늘어놓는 내가 싫어지는 날들이 하루, 하루 늘어나고 있을 때였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학원에 가는 날이었고, 그렇게 하루 온종일을 진 빠지게 보내고 난 다음이었다.


재수학원에는 “빨간 날 자율등원”이 있다. 말 그대로 국가에서 지정해 놓은 휴일에는 학생 모두가 선택적으로 등원을 할지 말지, 등원한다면 어느 시간에 등원할지를 모두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웃겼던 것은, 재수생에게 빨간 날과 빨간 날이 아닌 날, 그 둘의 차이가 전혀 없었음에도 빨간 날이 되면 등원하는 사람들이 반도 채 되지 않았고, 왜인지 조금 들떠있는 것 같기도 했다.


사실… 나 또한 그랬으니까.(ㅎㅎ)


뭐 여하튼, 그날은 빨간 날이었고 나는 9-6시 공부를 결정했다. 며칠 전 딱 수능 디데이 100일이 깨졌기 때문이었을까. 갑자기 묘한 위기감과 급박한 감정이 들었다. 그렇게 6시까지의 공부를 마치고 학원 앞에서 엄마 차를 탔다. 아침에 엄마는 내게 “오늘 할아버지 보러 다녀올 거야. 시간 맞춰서 데리러 갈게.”라고 하셨다.


… 그렇다. 회피해 잠시 잊고 있었던 그 이름. 할아버지가 다시 물밀듯 밀려와 금세 내 목까지 적셨다. 숨을 고를 새도 없이 뒤이은 엄마의 말은 눈 깜짝할 새 나를 심해까지 잠기게 했다.


“할아버지가 또 건강이 갑자기 안 좋아지셔서 요양원에서 요양병원으로 가셨어. 여기서 더 안 좋아지면 호흡기를 달 수도 있다고 하시네.”


안다. 우리 엄마는 우리에게 지나고 나서 아무것도 몰랐음을 한탄하고 후회하지 않으려 우리에게 이야기해주고 계시다는 것을. 그런데 그날은 정말 엄마의 그 말이 원망스러웠다. 기어이 버티고 있었던 나의 이미 찌그러진 마음에 구멍을 뚫어버린 엄마의 그 말이 지독하게도 원망스러웠다.


재수생활을 시작하며 정말 힘들었다. 힘들었다는 말보다 10배는 더 힘들었다. 힘들다는 말로는 내 감정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말이 유일하게 내 감정을 그나마 발끝만큼이라도 대변할 수 있는 말이라 쓴다.


재수생의 힘듦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정체된 성적, 그로 인한 어려움을 이야기하겠지만, 나는 달랐다. 공부는 나름 재미있었다. 무언가를 살면서 이렇게 열심히 해본다는 사실이 나를 뿌듯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삶은 당연하듯 매번 순탄치 않다. 드라마의 주인공도 해피엔딩으로 가기까지 정말 별의별 일들을 다 겪지 않는가. 하물며 나는 이 지구에 지나가는 고작 엑스트라 1 정도일 텐데, 그럼에도 난 왜 이렇게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을 겪어야 하는가 싶었다.


그 뒤로 난 시시 때때로 떠오르는 공포감에 시달려야 했으며, 내게 깊숙하게 자리 잡은 우울을 하루하루 버티듯 이겨내야만 했다.

정말 무너져 내릴 만큼 슬펐지만, 난 쉽게 내 슬픔을 내색할 순 없었다. 나보다 훨씬 더 슬프고 아플 엄마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슬프면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난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눈물이라는 게 비단 겉으로 터져 나오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안에 머금고 있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안에서 아무리 힘껏 내뿜어도 겉으로 터져 나오지 않는 눈물도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슬프지 않은 것처럼 나에게 누구보다 담담하게 말했지만, 나는 그런 엄마를 볼 때마다 마치 바다에 빠져 하염없이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보는 기분이었다. 이미 한없이 거대한, 드넓은 바다에서 그 누가 하염없이 운다고 해도 불어나있는 바다의 양을 가늠할 수 있는 사람이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난 그 슬픔의 양을 가늠할 수 없다. 감히 엄마의 슬픔의 깊이를 알 길이 없다.


내게 온 세상, 바다 같은 우리 엄마를 대신해서 내가 아프고 싶었다.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일지라도 난 엄마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아파할 자신이 있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물과도 같아서, 내 삶에 차지하는 부피와 밀도에 따라 내 인생에 물 한 컵이 되어주는 사람도 있고, 1리터짜리 물이 되어주는 사람도 있으며, 헤아릴 수 없이 소중한 사람은 바다가 되어주기도 한다. 난 물 한 컵에도 부족한 작은 물웅덩이 같은 사람인데, 그런 날 품어주는 바다 같은 우리 엄마는 그냥 내 온 세상과도 같았다.


나의 바다가 엄마이듯, 엄마의 바다도 할아버지였을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그 바다는 작은 물 웅덩이에 불과한 내가 절대로 혼자 채울 수 없는 그런 유일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밀려오는 파도와도 같은 눈물을 매일매일 삼켜내며 지냈다. 고작 물 웅덩이에 불과한 나 때문에 나의 바다가 무너지는 걸 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작은 물 웅덩이가 물 한 컵이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