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사랑해
끔찍한 하루였다.
살면서 이토록 최악인 하루를 경험한 적이 있었나. 가장 행복한 하루를 맞이할 준비를 부산스럽지 않게 준비하고 있을 찰나, 할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날 나에게 날아온 고작, 그 문자 한 통이 나를 너무도 쉽게 무너트려버렸다.
곧바로 우리는 옷을 입어야 했다. 시간이 촉박하다는 것을 묵언으로도 알 수 있었지만, 처음 겪는 당황과 혼란, 두려움에 가족은 아무 말도 없이 옷장에서 옷을 꺼내 입었다. 그저 큰 한숨만을 반복해서 몰아쉬면서…
아, 어쩌면 할아버지와 마지막으로 작별하게 될지도 모르는 옷이라고 생각하니 내가 가진 옷 중에 가장 예쁜 옷을 꺼내 입어야 할까… 했지만 그 생각은 금세 집어넣어야 했다. 우선 빨리 할아버지에게 가야 했다. 그런 옷을 고를 시간조차 없었으나 우리는 직감이라도 한 듯 검은색 옷을 입고 각자의 방에서 나왔다. 그러지 않았으면, 바랐지만 혹여나 그건 모를 일이었다. 혹시나의 이별을 대비해야 했다. 칙칙하고 거무죽죽한 옷으로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혹시나… 혹시나 그를 떠나보내는 날이 오늘이라면, 당신의 마지막 길을 혼란스럽고 야단스럽지 않게 배웅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정말 이건 혹시 나를 대비해서였다,
아니, 정말 혹시.. 하는 나의 야단스러운 걱정이길 바랐다.
시간은 밤 1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술로 하루의 고단함을 달래는 사람들이었고, 그건 오늘도 예외는 없었다. 기분 좋게 술기운이 올라오던 그 순간 받았던 연락이었기에. 우리는 대리기사를 불러야 했다. 아빠는 옷을 차려입고는 대리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옷을 입고 대리를 부르고 대리기사가 도착했고, 드디어 할아버지에게 가는 순간까지, 2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차에는 적막이 가득 찼다. 나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지만, 마냥 어린애처럼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나보다 엄마가 더 슬플 터였다. 나에게는 할아버지이지만, 우리 엄마에게는 우리 아빠.. 였을 테니까. 그래도 눈물을 조절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예열시간도 없이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넘치는 눈물을 계속해서 몰래 닦아내야 했다. 고개를 되는 한 끝까지 창문 쪽으로 돌렸다.
그런 걱정은 접어 넣고 나는 새로운 걱정과 불안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제발 우리가 도착하기 전까지 그가 힘을 내주기를 바랐다. 제발 그 마지막을 우리가 지킬 수 있게 해달라고,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과 함께 간절함을 담아 빌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고요한 적막과 몰아치는 한숨이 불쾌하게 뒤섞이던 와중, 그 고요를 깨는 전화 벨소리가 우리들의 가슴을 철렁 이게 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이윽고 전화를 받아 든 엄마는 정말 짧은 통화를 마치고 터져 나오는 절규와 함께 울음을 터트렸다.
‘아… 결국’
아니길 바랐지만, 그는 우리와의 마지막 인사를 채 건네지 못하고 긴 여행을 떠난 것이다.
난 어릴 적부터 상상하는 것을 좋아했다. 겪어보지 않은 일이라도 상상으로 그 경험을 대신하면, 정말 그 감정이 생생하게 느껴질 만큼 난 상상력이 뛰어난 아이였다.
11살 때, 죽음에 대해 상상해 본 적이 있다. 내 인생의 마지막은 어떨까. 죽는 그 순간의 고통은 어떨까.
그 무시무시한 상상에 뒤이어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죽는 순간의 육체적 고통보다도, 내가 가보지 않은 곳을 떠나야 한다는 공포감이 더 클 것 같다고 말이다.
그래서 먼 미래의 내 마지막 순간에는 내 곁에서 그 두려운 마지막을 함께하며 손을 잡아주는 누군가가 있어주기를 바랐다.
누군가의 죽음, 나의 정말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마주하니 그때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는 죽음을 코앞에 둔, 그 마지막 순간에 어떤 생각을 했을까. 혹시 나처럼 두려운 마지막 순간에 우리와 함께하길 바란 건 아닐까. 우리가 당장이라도 저 앞 병실의 문을 열고 달려와주길 바란 건 아닐까. 나는 그랬을 것 같아서, 할아버지가 마주했을 쓸쓸한 마지막 모습이 떠오르며, 너무도 큰 죄책이 나를 덮쳐왔다.
그런 후회와 형태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슬픔이 뒤섞이던 그때, 병원에 도착했고 우리는 착잡한 마음으로 지난 새벽 갑작스레 향했던 그 병실의 위치를 여전히 기억한 채로 그 누구에게도 묻지 않은 채 일제히 그 병실로 달려갔다. 할아버지가 계신 병원에 갑작스레 온 게 오늘이 처음은 아니었다. 몇 주 전 위급하다는 연락에 새벽에 엄마와 택시를 타고 달려온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날 병실에서 할아버지와 나누었던 무언의 대화가 가슴속에 깊숙하게 박혀있다. 호흡기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할아버지를 보며, 우리는 당신의 눈을 쳐다보며 하염없이 울었다. 애써 웃음을 지어 보이기도 하면서, ‘내가 누군지 알겠어요?’를 일제히 반복했다. 할아버지는 벙긋거리며 입모양으로 우리의 이름을 하나씩 읊어주었다.
정확히 그날의 대화가 전부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린 그날 지키지 못할 약속들을 무수히 읊으며 내일을 약속했다. 그게 지키지 못할 약속일지라도 그 말을 들으면 할아버지의 기운이 갑자기 솟아나 거짓말처럼 그 병이 사라져 버릴지도 몰랐으니까. 그때 읊조렸던 무수한 약속들은 우리의 간절한 기도와 닮아있다. 난 살면서 그렇게 간절한 기도는 해본 적이 없다. 면회시간이 다 되었을 무렵 마지막에 우리는 서로 말을 맞춘 듯 사랑한다고 했다. 꼭 얼른 나아 다시 맛있는 장어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그때 할아버지의 호흡기 안의 작은 입에서 어떤 강렬한 말이 터져 나온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난 단박에 그의 말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말을, 나는 그때 바로 알아채고 가족들에게 전했다.
“할아버지가, 사랑한대.”
그 말을 난 아직도 어떤 정신으로 내뱉었는지 모르겠다. 그러곤 한참을 울었던 것 같다.
마지막 이별을 마주하고, 이젠 멎어버린 나의 강인한 할아버지는, 어쩌면 그때 우리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 건지도 모르겠다.
할아버지와 우리의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만남, 그날은 내 생일 전날이었다. 어른이 되고 맞이한 첫 생일을 앞두고 있던, 그냥 생일에 설레어하는 어린아이에게 다가온 절망적인 순간이었다. 깜짝 놀랄 만큼의 생일이길 바랐지만, 이런 식으로 이런 순간으로 내게 오길 바랐던 건 아니었다.
그날 새벽 할아버지의 마지막 말을 나만 알아차렸던 것에 이유가 있었던 걸까.
어쩌면 그때 할아버지는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난 할아버지를 아니까.
손녀의 생일 전날 떠나는 당신의 그 마음이 얼마나 무거웠을지를 잘 알아서.
아니 어쩌면 오랫동안 자기를 잊지 말아 달라는 그의 투정이었을까.
이젠 그 대답을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꾹 눌러 다시 가슴속에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