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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Sep 08. 2022

질병관리청에 전화했다.

이것밖에 할 수 없지만, 이거라도 해야 한다.

가는 길, 버스 탑승까지 시간이 남아 변 테크노마트 하늘정원으로 향했다. 이 근방에서 한강을 내려다볼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장소라 동서울터미널을 이용할 때면 열에 아홉은 들른다.


돌로 된 의자에 앉고 나서 '1339'를 눌렀다. 근 2-3년간 한국인에게 매우 익숙한 질병관리청 콜센터 번호다. 상담사는 차분하게 응대했고, 나 또한 그들이 수고하는 것을 알기에 나의 의견을 조목조목 전했을 뿐 감정을 싣는 누를 범치는 않았다.


내용인즉 이렇다.

1) 현재 전 세계적으로 마스크 의무화 조치를 유지하는 곳은 한, 중, 일, 대만 4개국 정도에 불과하고,
2) 코로나 바이러스의 치명률은 진작 독감 수준으로 하향된 상태며,
3) 전 국민의 90% 정도가 백신을 접종하였을 뿐만 아니라 2400만 명이나 되는 인원이 감염자로 공식 집계된 상황에서 더 이상 지속할 이유가 없는 마스크 의무화 명령을 왜 아직까지 지속하는지 모르겠다.

내부적으로 해당 지침을 폐기하는 것에 대해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가?

이상이다.


상담사는 해당 내용을 건의할 수는 있으나 콜센터의 특성상 피드백이 즉각적으로 오지는 않으므로 답변은 어렵다 말했다. 당연히 안다. 기대도 안 한다. 질병청의 높으신 나으리들께서 콜센터에 일일이 상황이 이러하니 문의자에게 이렇게 전달하면 된다고 친절히 일러줄 리가 없지. 그런 그들이 마스크로는 더 이상 바이러스 확산을 막지 못함을 깨달았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망각하거나 외면하는 것은, 마스크 착용 강제는 의학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라는 점이다. 왜냐? 방역 자체가 정치적 행위여서다. 방역은 단순히 역병, 즉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게 아니다. 막기 위해 사회 곳곳에 정부가 손길을 뻗고, 그 과정에서 모든 사람, 모든 이해관계 당사자에게 제약을 가한다. 이게 방역이다. 그런데 이걸 순수하게 과학행위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유감스럽지만 생각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 없다. 방역은 그 목적과는 달리 필연적으로 정치와 연결된다.


그러므로 문재인 정부의 방역이 정치방역이라 비판하는 것은 이에 숨겨진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을 제외하고 보면 타당한 처사다. 방역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다만 이를 안다면 굳이 방역 앞에다 '정치'란 말을 붙일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현 정부의 방침을 두고 '과학방역' 운운하는 사람들은 " 어리석 멍청해요" 하떠벌리는 것과 다름없다. 위에 언급했듯 방역은 순전히 과학의 영역에만 해당되는 게 아닌데 도대체 존재하지도 실현되지도 못하는 과학방역 타령은 왜 하는 것인지?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의 방역은 과학방역이라고? 나 원 참.


그래서 나는 정부가 바뀌고 질병청장이 교체돼도 달라질 게 없다고 생각했고, 안타깝게도 예상은 적중했다. 고작 '실외' 마스크 의무 착용 해제란다. 실내에서는 써야 하는데 굳이 벗고 쓰고를 반복할 사람이 애초에 얼마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걸까? 이런 기상천외한 발상을 한 것도 웃기고, 겨우 실외 마스크 해제에 좋아라 한 것도 웃다.


질본인지 질병청인지, 누가 본부장 또는 청장인지보다 중요한 건 '질병을 어떻게 관리할 것이냐'고, 또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말 그대로 본 부의 역할은 질병을 관리하는 것이지 통제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대 다수의 한국인을 포함한 전 세계 수많은 이들은 바이러스의 감염과 확산을 통제할 수 있을 거란 근본적으로 허황된 환상에 빠져 있었고, 질병청은 이 다수의 기대와 바람에 열과 성을 다해 부응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질병 관리라는 역할을 망각한 채 질병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런다고 바이러스가 '어이쿠 무서워라' 하며 잡혀줄 리 만무했지만.


진짜 질병을 관리할 생각이었다면 본인의 필요나 절대적 상황에 의해 병원을 찾거나 병원에 이송된 사람들이 치료를 원활히 받도록, 또는 병상 부족으로 이곳저곳 떠도는 일이 없도록 하는 정도로도 충분했다. 감염되기만 했는데도 가둬서 못 나오게 하는 건 너무나 비인간적이고 비합리적인 처사다. 근데 그렇게 했다는 건 결국 '관리'란 단어의 의미를 몰랐다고밖엔 말할 수 없다.


백신도 감염 확산 저지를 목적으로 하고, 마스크도 동일하기에 둘 다 할 이유는 없다. 하나만 하면 된다. 마스크 착용을 강제한 건 뾰족한 수가 없었기 때문인데 고대했던 백신이 개발되어 특정 사회의 다수가 접종하면 마스크를 억지로 씌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과학자 내지 의사라는 이들은 입으로는 과학을 언급했으나 실상 '정치적 조치'를 취할 것을 주문했다. 마스크 착용에 대해선 말할 것도 없고, 백신도 사실상 강제하도록 했다. 그들은 스스로의 발언(주장)에 따른 모순을 인지하고나 있을까?


결론은 어차피 자연감염이다. 많이 감염되어야 끝이 나는 일이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많이 감염됐다. 그럼 통제를 전면 해제하고 유행 이전으로 돌아가려고 애써야지 왜 아직도 통제 일변도인가? 이건 정책 결정층의 아집으로 인한 결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런 식(통제를 거듭하는 방역)으로 해야만 한다고 굳게 믿었기에 바뀐 상황과 달라진 현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교차감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백신 & 마스크 만능론을 못 놓는 것이지.


난 나의 지식의 총량이 그리 많지는 않음을, 그리하여 알아가야 할 것이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많이 아는 것이 반드시 현명한 결정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도 안다. 이름하여 '똑똑한 바보'가 존재함을 안다. 내가 보기에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이 '나 홀로 마스크'를 찍고 있는 건 똑똑한 바보들이 정책을 좌우하는 위치에 있어서 그렇다. 정작 그들은 자신이 많이 안다는 이유로, 학위가 있는 전문가라는 명목하에 고집을 버리지 않는다. 그 아집으로 꽉 찬 태도가 마스크 한 장에 철저히 의존해야만 '정상 시민', '모범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게 했음을 부정한다. 그리고 이를 긍정하는 이들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스크는 바이러스 예방에 있어 제일 수단이고, 백신은 과학기술의 집약체로서 확실히 그 효능이 검증되었으므로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선전을 한다.


그러는 그들에게 묻는다.

그래서 아직까지 우리가 이러고 삽니까?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언제까지 국가 역할론 운운하며 통제로 점철된 현실을 가리려는 건지 원.

이런 삶이 그리도 좋나?


마스크 없는 삶, 그리고 그런 세상.

이 나라와 그 구성원에게는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그래서 뭐가 달라질 일은 당분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는 질병관리청에 전화를 걸었다.

이거라도 해야 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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