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유행을 재난으로 간주하는 것의 위험성
'바이러스 유행=안전 문제=재난'?
방역이 시작됨과 동시에 한국 사회에는 새로운 공식(公式일수도 있고 共識일수도 있음) 하나가 성립했다. 이는 바로 방역과 이에 따른 일련의 조치가 '(모두의) 안전'을 위한다는 것이었다. 건강이라 표현하면 될 것을 굳이 안전이라고 표현한 것에 (당시의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건강과 안전은 다른 영역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안전은 나를 둘러싼 물리적 환경에 의해 위해가 가해질 때 저해되지만 건강은 질병이나 부상으로 저해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부상의 경우 절대적으로 외상(外傷)을 의미하고, 이는 외부 대상에 의한 충격으로 발생하는 것이기에 안전과 건강은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다. 하지만 질병은 건강의 문제로서 분명 안전의 문제와는 다르고, 질병으로 인해 건강이 저해되는 것을 두고 '그 사람은 안전하지 않다'고 표현하지는 않으며, 애초에 그럴 수도 없거니와 그래서도 안 된다. 상황과 용례가 분명 구분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누군가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은 누군가가 건강하지 않다는 것과 1:1로 대응되지 않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부모에게 학대를 당해 온 아동이 있다면, 이로 인해 안전하지 않은 건 당연한 것이고, 학대의 과정에서 영양이 원활히 공급되지 않았을 것이기에 건강하지 않을 수 있다고 추측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그러나 위에 언급했듯 이는 물리적 상황에 의해 안전과 건강이 동시에 침해되는 경우지 질병 때문에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문제는 이 시기 한국인이 바이러스 감염(과 이로 인해 유발된 증상)을 자꾸 '안전'과 연결시켰다는 것이고, 이는 정부와 전문가 집단, 그리고 온 사회가 나서서 함께 만들어 낸 기이한 공통 인식이었다.
이러한 인식은 근본적으로 바이러스 유행을 '재난'으로 간주하여 대처했기 때문에 형성되었는데, 재난이란 (기본적으로) 인간의 의지 및 의도와는 무관하게 자연적으로 발생한 현상으로 인간이 해를 입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런 점으로 볼 때 바이러스 대유행은 무의도성에 해당하므로 재난의 범주에 든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재난 상황에서 국가는 이를 대처하기 위해 절대 다수의 국민의 행동이나 사고 방식을 통제하지 않으며, 재난을 입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도 막을 수 없는 '자연재해'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으므로 그 어떤 비난도 받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이 '재난'을 대하는 전 세계 각국과 한국의 태도는 사뭇 달랐다.
재난 시에 유념해야 하는 것은, 이런 상황에서는 국가의 역할이 제한적이란 사실이다. 다만 그 제한적인 상황에서 재해를 막기 위해 평소에 얼마나 대비를 해 왔는지(물이 들어차면 반드시 위험해질 만한 곳에 배수 시설을 설치하는 것과 같은 행정 조치 등), 재해 발생 후 현장 복구 및 이재민 수용·관리 조치가 얼마나 원활하게 이뤄지는지가 중요하다. 이를 잘못할 경우 사회적으로 비판이나 비난을 받는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나, 국가가 자연 그 자체거나 신적 존재도 아니고, 재난 자체를 막거나 재난 발생을 통제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국가가 재난 발생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비난하는 것에는 문제의 소지가 있다. 결국 이것도 사람이 하는 것인데, 국민적 요구에 따라 재난 상황을 통제하러 누군가가 현장에 나갔다가 목숨을 잃으면 이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고, 그 과정에서 사망했으니 어쩔 수 없다며 묵과할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비인간적 처사며 야만이다. (이는 범죄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범인 제압을 주저하거나 아예 현장에서 빠져나오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오히려 인위적인 이유로 재난이 발생할 경우가 무엇보다 위험하다. 건축물이 붕괴하면 그야말로 '재앙'이다. 그 일대가 초토화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본 논리'에 의해 지대와 지가가 높은 곳에 입지한 건물이 계속해서 남아 있는 경우가 적잖다. 이러다가 만약 건물이 붕괴하면 이래도 국가 탓을 할 것인가? 불특정 다수의 선택에 의해 계속해서 유예되어 온 잠재적 재난이 발생한 것을 두고도 국가의 탓을 할 수는 없다. 개인의 재산권을 함부로 침해할 수 없기에 생긴 결과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 시국'에 국가는 인신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제한했다. 아마 제일 만만해서 그랬을 것이다.)
위의 서술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재난이란 무엇인가?'다. 재난은 결과적으로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한순간에 일어나기 때문에 실제로 닥치면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 결과를 최소화하는 작업을 제외하고는 '사후 처리'가 유일하며, 재난 발생 자체를 두고는 왈가왈부할 수 없다. 그것이 재난의 속성이며, 재난을 대하는 사람들이 지녀야 할 합당한 태도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 상황에서 이러한 현실과 속성은 완전히 무시당했다. 의도적이지 않은 바이러스 확산을 두고 사람들은 '가해자'를 설정하여 개인 및 사회 차원의 비난이란 이중적 집단 폭행을 가했고,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은 국가에 의해 '바이러스 유포자'로 법정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는 국가건 개인이건 간에 바이러스 유행이란 상황을 잘못 인식했기에 발생한 일이었다.
어떻게 보면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현대 사회에서 재난의 범주가 넓어진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으며, 실제로도 그런 것 같다. 그렇다면 오히려 금번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 사태를 마주한 국가와 개인은 더욱 재난을 대하는 합당한 태도와 자세를 갖추지 못한 것이다. 옮고 또 옮긴다는 이유만으로 재난 상황에 처한 모든 사람은 서로를 잠재적 감염원으로 간주하여 배척했고 외면했으며 비난했다. 다른 얘기를 예로 들자면, 근래에 태풍이 한반도에 근접하거나 상륙하자 열차 운행이 일시 중단됐는데, 이는 기차를 이용하는(또는 이용해야만 하는) 이들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긴 하지만 그마저도 태풍 때문이지 태풍으로 인해 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들 때문은 절대 아니었다. 그러니 탓을 해도 태풍 탓을 해야지 위험 지역에 있는 사람 탓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코로나 시국'하의 대처는 정반대였다. 바이러스 탓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바이러스 유포 국가를 비난하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를 탓하고, 바이러스에 감염된(감염될) 것으로 의심되는 이들을 탓하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으로, 이는 일반적 재난 논리와는 완전히 별개인 '특수 논리'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토록 이성을 강조하는 세상에서 이만큼이나 감정이 앞선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내가 그랬고, 거의 모두가 그랬다. 이런 불가항력적인 사태를 앞에 두고 누구를 탓할 수 있단 말인가? 또한 나를 포함한 절대 다수가 당시 중국공산당과 중국을 강하게 비난했지만, 그것이 일반적인 반응이었던 것과는 별개로 더는 '정상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돌이켜 보니 그것은 본질을 간파한 이의 행동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초기에 바이러스 발생을 보고한 몇몇 의사를 제재함으로써 충분히 대처할 수 있었을지도 모를 사태를 일파만파로 커지게 했다는 점을 비난할 수는 있겠으나, 그렇다고 '진원지'로서의 중국을 비난하는 것은 결국 '확진자(=감염 사실이 확인되어 공식 집계된 감염자)'를 비난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으며, 실제로 많은 이들이 낙인 찍기 광풍에 휘말렸다는 것만 봐도 더 말할 필요는 없다.
이런 이유로 나는 바이러스 유행을 재난으로 간주하는 시각을 거부한다. 이를 재난으로 간주할 거면 그 누구도 비난받지 않는 환경이 전제 및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특히 한국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함을 모두가 확인했다. 또한 재난 대처에 있어서 중요한 사전 예방 및 사후 처리도 아닌 상황 자체를 통제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자행되었고, 오히려 그 과정에서 상당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점만 보아도 바이러스 유행은 재난으로 간주돼선 안 된다. 국가는 어떻게 해도 바이러스 확산을 막을 수 없다. 자연 재해나 건축물 붕괴도 마찬가지다. 건축물이야 지속적인 점검을 통해 사전에 위험을 감지할 수 있으니 그렇다 쳐도, 자연 재해는 아무리 잘 대비해 봤자 그 이상의 수준으로 몰아치면 답이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후 처리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의 경우, 인간의 힘으로는 도무지 어떻게 할 수 없는 바이러스를 통제하겠다며 별의 별 수를 다 동원했고, 그 결과 한국은 방역의 늪에 허우적대며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관련 조치를 유지하는 나라로 기네스북에 등재해도 될 만한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보기엔 방역으로 막을 수 있었던 죽음보다 방역으로 인한 죽음이 더 많다. 생존을 위해 인간성을 포기하기를 요구한 것이 바로 방역이기 때문이다.
바이러스 사태 사후 처리? 이번 사태의 경우 사후 처리는 사실상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방역을 끝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로 인해 발생한 개인의 정신적 피해, 경제적 손실뿐만 아니라 감염 확산 우려를 이유로 진료를 거부당해 사망한 이들과 마스크 착용 장기 강제로 인한 사회 차원의 면역 저하, 아동의 인지 및 언어 발달 지연과 함께 미시적으로는 개인의 피부 문제까지 세면 수도 없는 사례를 과연 그 누가 책임지고 감당하려 할까? 없다.
이번 사태를 두고 그 어떤 반성도 없는 상황에서 언젠가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전 세계는 이번보다 더한 지옥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그때에 가서는 지금보다 더 심각한 방역 권위주의와 전체주의가 도래하여 개인의 삶을 일일이 통제할 수도 있다. 특히 한국은 바이러스 유행 대응 과정에서 모두가 보인 모습만 보더라도 이 문제에서 더욱 자유로울 수 없다. 지금까지도 소수의 관료와 전문가라는 이들의 말 몇 마디에 사회가 돌아가고 있지 않나? 이를 단지 '목숨을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처사'라고만 생각하면 곤란하다. 저들이 비합리적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는 법칙이라도 있나? 생각이 다른 이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므로 국민 인식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감염병 관련 법률이 현실적인 방향으로 개정되지 않는 한 사회적 거리 두기와 백신 패스, 마스크 착용 의무화 행정명령과 같은 조치는 늘 우리 곁에 도사리며 그 존재감을 뽐낼 기회를 엿보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이러스 유행을 재난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이유다. 재난 상황이라고 정부와 엘리트의 결정이 전적으로 정당성을 지닐 수는 없는데, 이번에는 그랬다. 심지어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는 식으로. 이에 따른 결과가 얼마나 심각한지 지금 당장은 선명히 드러나지 않을지라도, 머지 않아 서서히, 리트머스 종이를 적시는 시약처럼 드러날 것이란 점에서 전 세계 각국은 반드시 정신을 차려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도둑이 드는 것이 무서워 아예 문도 없애버리고 집 주위를 강철 담으로 두른 채 밖으로 나가지 않은 것이 코로나 사태를 대하는 국제 사회의 대처 방식이었다. 그런데 그게 인간다운 삶은 아니었다. 인간다운 삶이 생존과 충돌한다면 무엇을 택할지가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난 것인데, 만약 이번 사태가 재난이고, 이런 행태가 재난을 대처하는 자세라면 나는 절대, 더더욱 이를 재난으로 간주할 생각도, 재난 대처 방식으로 인정할 마음도 없다. 재난 대응은 인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인간을 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 말인즉,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재난'을 대처하는 방식은 결코 인간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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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 2차관이 KBS와의 인터뷰에서 (정기석 교수와 마찬가지로) '내년 3월 종식' 운운하며 마스크 의무화 해제 시점 또한 내년 3월 무렵이 될 것이라 발언했다.
이 정도면 정부 관료까지 대놓고 국민을 개와 돼지 취급하는 건데, 한국인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분명 그때까지 열심히 마스크를 쓰며 대중교통에 마스크 안 쓰고 타려는 이를 저지하고 또 신고하겠지. 안 봐도 비디오다. 이런 나라가, 이런 사람들이 다 있다. 실로 연구 대상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