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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Oct 05. 2022

바뀌지 않으면 미래도 없다.

방역에게서 나를 놓아주려 한다.

지난 글의 말미에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 2차관이 KBS 측과 10월 2일에 진행했던 면담 내용을 잠깐 언급한 바 있다. 내용인즉 '내년 3월 이후에는 마스크 의무화를 해제할 수 있다'는 것으로(해당 링크에 접속하면 인터뷰 영상을 볼 수 있음), 그전까진 의료계 인사인 정기석 교수의 입을 통해 관련 내용이 전해졌다면 이번에는 정부 관료가 사실상 처음으로 본 내용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여기서 유의미하다는 것은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이는 방역 당국에서 '내년 3월 이전까지는 마스크 의무화 조치를 전면 해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못을 박은 셈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지난 8월 '만 5세 입학' 발언에 대해 어마어마한 항의가 있었고, 이로 인해 정책 도입이 철회됨과 함께 관련자인 박순애 당시 교육부 장관이 사임했던 것과는 달리 이기일 차관의 발언에 대한 국민적 저항은 다소 덜한 것으로 판단된다.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화 조치 해제'에 대한 부정 여론은 있을지언정 그것이 조직적으로 표출되고 있지는 않으며, 이로써 방역 당국과 전문가들의 '내년 3월' 발언은 현실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매우 절망스러운 상황이다.


올해 2월, 나는 '현 상황에서 방역 유지는 무의미하며, 그러므로 정부의 방침은 잘못됐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물론 그전에도 문제 의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방역 조치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이에 반함으로써 수반될 공적 제재에 대한 두려움과 '방역 지침 준수는 시민 의무'라는 관념이 혼재되어 있었을 때라(순진하게 정부에서 하라는 대로 하면 사태가 끝날 것이라 생각한 탓이다) 그다지 불만을 표출하거나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위와 같은 판단을 내린 이래 약 7개월간 관련된 내용으로 글을 써 왔다. 유감스럽게도 바뀌는 것은 없었고, 바뀌어 봤자 옛 봉건 시대의 조정에서 신민에게 시혜(施惠, 은혜를 베풂)하는 수준이었다. 마치 "우리(정부)가 이렇게 해 주니 너희(국민)는 고마워해야 해."라 말하며 생색 내는 느낌이었달까? 백신 패스 시행이 철회된 것은 반가운 일이었으나 애초에 접종률이 90%에 근접한 나라에서 이런 불필요한 정책을 왜 도입했는지 심히 의문이고,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화 조치가 해제되긴 했으나 그마저도 단계적이었던데다 사람들은 이미 마스크 착용을 완전히 학습하여 도무지 벗을 생각을 않았고, 실내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현대 사회의 특성상 벗다 썼다를 반복하기도 번거롭기 때문에 이 또한 거의 무의미한 조치다. 전 세계 각국에서는 마스크 의무화 조치를 일괄적(전면적)으로, 일시에 해제한 것을 고려하면 한국 방역 당국의 조치는 상당히 비합리적이었으나 이에 의문을 제기하는 여론은 조성되지 않았고, 언론은 그저 정부에서 발표하는 것만 받아적었을 뿐 위의 '단계적 완화'에 대해 그 어떤 비판도 제기하지 않았다.


2년 10개월째 매일 파악된 감염자 수치를 계수하는 것도 모자라 마스크 없이는 일상 생활의 핵심 중 핵심인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이기일 차관의 확언은 타오르는 불에 소화물질을 뿌리기는커녕 되레 계속해서 땔감을 집어넣는 격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더는 달라지지 않는다고. 추의 의미인 '않다'가 아니다. 단정의 '않다'다. 방역 정책을 좌우하는 이들의 발언과 생각 및 현 상황에 대한 국민적 반응을 고려할 때, 결국 한국의 방역은 내년 초까지 이어져 기어코 만 3년을 달성할 것이란 판단밖에는 안 된다. 그리하여 더는 관련된 글을 쓰지 않기로 결단을 내렸다. 이젠 정말 의미가 없다.


브런치 활동을 시작하면서 우연히 접했던 경북대 의대 소속 이덕희 교수님의 글 덕분에 나는 한국의 방역 체계가 매우 비합리적이며, 애초에 그 목적 자체가 잘못 설정되었으므로 즉각 시행을 중단해야 한다는 생각을 더욱 굳힐 수 있었다. 소수의 전문가라는 이들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체제 자체도 문제거니와 그런 행태가 장기화되니 모든 국민의 의식 구조가 이에 맞게 변화했다는 것이야말로 실로 심각한 문제인데, 이덕희 교수님은 바이러스 유입 초기부터 코로나 바이러스의 특성을 들어 방역의 무의미함을 지적하심과 더불어 이러한 문제(집단 차원의 의식 구조 고착화)를 꾸준히 제기해 오셨다. 또한 현직 의사이신 서주현 선생님의 저서 <코로나 19, 걸리면 진짜 안 돼?>를 읽으면서도 크게 공감했다. 한국의 방역 체계는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최전선에 있는 의료진을 혹사를 넘어 착취함으로써 유지됨을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바이러스 감염을 이유로 환자를 받아야 할 의사가 진료를 거부하고 병원 측에서 환자 수용을 거부하는 비상식적이고 말도 안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는 것만 봐도 한국인이 그토록 치켜세웠던 'K방역'이 얼마나 잔인하고 냉혹한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소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백신과 마스크의 효능을 절대적으로 신뢰한 나머지 스스로를 방역 지옥에 몰아넣어 끝내 헤어나오지 못하는 상황에 빠지고야 말았다. 문제는 이런 상황 자체를 문제시하지 않는 이들이 아직도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이들이 바로 위에 언급한 정부 관료(보건복지부, 질병관리청 등)와 방역 정책 수립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의대 교수들이다.


개신교 계열 사이비 및 각종 신흥 종교 연구 전문가에 의하면 한번 이러한 종교에 깊게 발을 들이민 사람은 그 교리나 종교 체계가 잘못되었음을 자각해도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고 한다. 이유인즉, 그들이 그 종교에서 나오게 되면, 그 시간 동안 본인이 쏟아부었던 모든 것이 부정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토록 진리라고 외쳤던 종교가 사실은 교주 한 사람의 욕망에 의해 구축된 허구임을 인정하기에는, 그들이 바쳤던 열정과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으며, 가족 및 지인과 충돌했던 것을 도무지 만회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그들은 스스로의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을 만회하기에는 이미 너무 많이 왔기에 그런 결정을 내린 셈이다.

왜 뜬금없이 종교 얘기냐고? 현 방역 당국의 행태는 사이비 종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이들과 똑 닮아 있기 때문이다. K방역은 실패했다. 그러므로 진작 폐기돼야 했다. 하지만 당국은 그러지 않았다. 사실은 그럴 수 없었다고 봐야 한다. 일단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권한이 저들에게 있거니와 실패를 공인하는 순간 전 국민적으로 어마어마한 비난이 쏟아질 것이므로, 이에 대해 책임을 지기 어렵겠다 판단했기에 궁여지책으로 '방역 유지'라는 최악수를 택한 것이다. 관련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하며 각종 지식을 축적해 온 전문가들이 잘못된 판단을 내렸을 때, 그리고 그에 따른 결과가 광범위하게 적용될 때 사회는 파국으로 향하게 된다. 이번 '코로나 시국'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저들은 자신들의 잘못과 죄를 뉘우칠 생각이 없다. 그러니 뻔뻔하게 공영방송에 나와서 마스크도 쓰지 않고 웃는 얼굴로 '내년 3월' 발언을 하지 않았겠는가?


한편, 정부 정책은 사람들에게 완장을 채워주는 것과 다름이 없어서, 식당 및 카페 직원이나 사장은 모든 객이 마스크 없이 왁자지껄 떠들고 있음에도 주문하는 이에게 마스크 착용을 종용해 왔으며(요즘은 그런 면이 크게 줄었지만, 프랜차이즈 카페, 특히 대형 업계의 경우엔 아직도 그러하다), 버스 기사는 마스크를 제대로 쓰지 않았거나 아예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탑승을 거부해 왔다. 그들은 버스라는 작은 공간, 식당과 카페라는 자신의 영역에서 최고 권위자이자 '왕'으로 활동해 온 것이다. 이쯤 되면 그런 짓도 그만할 때라고 생각하는데, 아직까지도 완장질을 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도대체 어쩌다 저렇게 됐는지 불쌍할 정도다. 권위에 매우 반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정작 권위에 순응적인 한국인의 모습, 그리하여 이를 힘입어 타인에게 무언가를 강요하는 모습은 상당히 역겹고 거북하다. 도대체 언제까지 정부가 개인의 삶의 방식을 규정하도록 두려는지, 그들의 '시민적 의무'와 '공동체 의식'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정부와 WHO에서 공식적으로 사태 종식을 선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매일 감염자가 몇 만 명씩이나 나온다는 이유로 마스크가 필수인 삶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 이들을 볼 때마다 분통이 터진다. 규칙을 위한 규칙을 붙잡는 이들에게 무슨 생각이 필요하랴? 그저 하라는 대로 하면 그만인 것을.


전부터 예언하다시피 언급해 왔지만 한국인은 정부에서 마스크 의무화 조치를 전면 중단하고 확진자 계수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하는 순간 (그때까지도 불안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이들을 제외하고) '우리가 바이러스를 이겼다'며 좋아할 것이므로 현실 직시에 대해서는 일절 기대하지 않는다. 당연히 방역의 문제를 인식하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후에 자기 자신의 손과 발을 묶었던 일련의 조치가 어떤 파도를 불러일으킬지 깨닫는다면 부디 반성이란 것을 하길 바랄 뿐이다. 마치 기독교의 주요 인물인 바울(바오로) '나는 죄인 중에 괴수(=수괴, 우두머리)'라고 했던 것처럼, '코로나 시국'에 스스로가 얼마나 괴물과 같았고, 얼마나 잔인하 매몰찬 사람이었는지를, 이 사회가 얼마나 광기에 휩싸였었는지를 깨닫고 뉘우치길 바란다. 그런 반성이 없다면 한국엔 정말 답이 없다. 안 그래도 정점을 찍고 바닥을 향해 내려가는 판에,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면서 오히려 본인이 똑똑한 사람인 것처럼 콧대를 높이고 고개를 빳빳하게 든다면 이 나라는 그저 악화일로로 치달을 것이다.


한때 열렬히 방역을 옹호하여 감염자를 서슴없이 가해자로 규정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을 무슨 도덕적으로 타락한 존재인 것처럼 비난했으며 '잠재적 감염원'이란 낙인까지 찍었던 이로서 참회하는 마음으로 수십 편의 글을 써 왔다. 혹여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유사한 일이 한 번이라도 다시 일어난다면, 다시는 지난 1-2년 전과 같은 모습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함부로 국가가 개인의 일상에 간섭하지 못하도록 강력히 목소리를 낼 것이고, 감히 '시민적 의무' 운운하며 타인에게 특정 행동과 생각을 강요하려 드는 이들에게 순순히 나의 손과 발을 내밀지 않을 것이다. 내 목숨이 중요한 만큼 타인의 일상도 중요하며, 타인의 계획과 꿈도 지켜주어야 한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신의 생계와 꿈을 국가와 사회에 빼앗기고 사지로 내몰렸던가? 전 세계를 통틀어 1-2차 대전 이후 이렇게 집단이 강조되었던 때는 없었다. 아무리 인간이 공동체 없이는 존속할 수 없다지만, 그 공동체를 이루는 존재야말로 개인임을 생각한다면 이런 폭거는 자행돼서는 안 됐다. 공동체 우선 논리는 매우 높은 비율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해 왔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장기간 방역이라는 이런 미친 짓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이제 반(反)방역 전사를 사직(?)하고 원래 목표였던 일상과 생각을 풀어내는 일에 전념하려 한다. 계속 이런 글을 쓰는 건 내게도 그리 긍정적이지 않으므로 언젠가는 그쳐야 할 일이었고, 지금이 적기인 듯하다. 물론 특정 주제로 글을 쓰다가 방역이나 마스크 착용에 관한 내용이 언급될 수는 있겠지만 직접적으로 이런 글을 쓰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방역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렇기에 당하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솔직히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라 두렵고 조심스런 마음이 없지 않으나, 누가 나한테 뭐라 하든 말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꾸준히 실천하려 한다. 마스크로부터 자유로워진 삶, 누리기 쉽지는 않겠지만 이를 위해 한 걸음이라도 계속 떼어야겠다. 마스크 착용을 종용하는 이가, 방역 당국이, 한국 사회가 내 삶을 책임지고 내 자유를 보장해 주지 않기에, 나는 국가와 사회에 앞서 나 자신을 마스크로부터 놓아주려 한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그리하시기를, 그리하여 이 불합리한 상황을 이겨내 나가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앞으로 위기 상황이라고 여겨지는 때마다 국가가 주도적으로 개인의 삶을 통제하고, 이에 사회가 적극적으로 동조한다면 개인의 자유와 주권은 계속해서 침해당할 것이며. 그렇게 결국 '집단'만이 남게 될 것이다. 범지구적으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는 현 시대에 이를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됨을 역설한다. 나의 자유와 권리는 내가 지켜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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