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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Nov 28. 2022

일본 사회가 개인주의적이란 착각

일본의 개인주의, 자세히 들여다 보면 개인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한국인이 흔히 일본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으로는, 일본인의 시민 의식이 매우 높다는 것과, 일본 사회가 상당히 개인주의적이라는 것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단면만 봤기에 발생한 오류이자 착각이다.


일본의 시민 의식은 일본의 개인주의와 직결되어 있는데, 이를 살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본 사회는 개인주의적'이란 오해를 먼저 풀어야 한다.


일본 사회가 개인적이다, 얼핏 보면 맞는 말이다. 일본인은 자신의 삶의 틀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지 않고, 서로의 영역에 개입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이런 면이 개인주의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개인주의의 이면엔 자율성이 아닌 강요된 타율성이 숨겨져 있음을 많은 이들이 인지하지 못한다. 강요된 타율성이란, 일본인의 개인주의는 나를 드러내는 형태, 즉 '개성의 표출'이 아닌 나를 숨기는 형태, 즉 개성의 억제로 실현된다는 의미다.


일본인이 매우 자주 쓰는 표현으로 '폐를 끼치다(迷惑を掛ける)'가 있다. 이 '메-와쿠(迷惑)'란 것이 바로 일본 개인주의의 핵심인데, 서구적 의미의 개인주의(이는 일반적, 보편적으로 인식하는 개인주의를 말한다)의 경우 기본적으로 나의 영역 바깥의 일에 굳이 신경을 쓰지 않는 문화적, 심리적 분위기가 이를 뒷받침하기 때문에 상호독립성이 철저히 개인의 삶을 지탱하고 있지만, 일본의 경우는 이와 달라서 상호독립성이 아닌 상호관계(또는 연결)성이 개인주의의 기반이다. 이는 일본과 서구의 개인주의를 근본적으로 가르는 요인으로, 딱히 타인과의 관계나 교류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서구 사람들과는 달리(다른 사람에게 쉽게 다가가고, 상호 작용 또한 원활하다는 의미다.) 일본인은 거의 일거수일투족을 신경 쓰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타인과의 관계나 교류에 있어 극도의 조심성을 보인다. 그래서 시도때도 없이 '폐를 끼친다'거나 '폐 끼치지 말라'는 말을 쓰는 것이다. 그리하여 다른 이가 호의를 보이더라도 굳이 '스미마센'이란 말을 쓰는데, 이는 '나로 인해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함으로써 수고함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동시에 표출하려는 일본의 문화적 요소가 작용한 것'이란 분석을 본 기억이 난다. 더불어 그 글에는 '자신의 책임감을 덜려는 의도'가 어느 정도는 내포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해석 덧붙어 있었다.

(왜 이렇게 일본인이 타인과의 관계에 극도로 방어적(달리 표현할 말이 없어 이렇게 형용했다)인지에 대해서는 역사적 상황에 따라 형성된 문화 요인이 크게 작용하겠지만,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겠다.)


그렇다면 서구는 어떠한가? 서구식 개인주의는 일본처럼 저런 식으로 개인의 삶을 규제(통제)하는 방식이 아니기에 남이 뭘 하건 말건 상관하지 않으며, '그런가 보다', '그럴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그러든지 말든지'가 아예 무의식중에 있기 때문에 애써 그렇게 생각할 필요나 이유조차 없다. 그게 그들에게는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에게도 나름대로의 사회-문화적인 제한선은 있다. 하지만 서양의 이러한 '제한선'은 동양에 비하면 훨씬 낮은 수준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개인의 선택'으로 간주하여 그냥 두는 편이다. 여기에서 일본의 제한선이 서구의 제한선과 다른 것은, 일본인은 애초에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정한(정해진) 테두리 밖의 행위는 좀처럼 하지 않는다는 점으로, 테두리란 것에 그다지 구애받지 않는 서구식 사고와는 달리 일본식 사고는 철저히 틀 안에 갇혀 있기 때문에 이를 벗어나는 이는 그때부터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다만 한국인이 보기에는 뭔가 '이상한' 듯한 문화가 일본에선 상당히 성행하는데, 오타쿠 문화와 AV 문화가 바로 그것이다. 그렇게 반듯하고 깍듯해 보이는 일본인 중에 왜 이른바 '오덕(오타쿠를 한국적으로 표현한 말)'이 그리도 많으며, 조신할 것 같은 그들이 어째서 그리도 강렬하고 자극적인 성인 비디오에 탐닉하는지 일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실은 매우 간단한 문제다. AV와 애니메이션 오타쿠는 일본 사회가 허용한 틀 안의 문화인 것이다. 그리도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일본인에게 일본 사회는 '사적 영역'에 한해서는 무제한의 자유를 허용한다. 이것이 다름아닌 일본 개인주의의 실체다. 일본 사회는 결코 개인의 삶에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야말로 사회적으로 정해진 '룰(rule)'이어서 그렇다. 공적 영역에 있어서는 사회적으로 규정된 바를 철저히 준수해야 하지만, 사적 영역에 있어선 그 어떤 간섭도 받지 않는 삶, 그것이 바로 일본 개인주의의 본모습이자 '일본 개인주의'란 이름으로 정해진 일본 사회의 규칙인 셈이다.


이와 관련하여 내가 좋아하는(?) 마스크를 다른 예시로 들겠다.

일본 사회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 이래 단 한 번도 마스크 착용이 법적/행정적 차원의 의무로 지정된 적이 없다. 그런데 절대 다수의 일본인은 꼬박꼬박 마스크를 착용해 왔고, 오죽 그랬으면 열사병에 걸려 쓰러지는 지경까지 왔음에도 마스크 착용에 집착하다시피 해 왔다(관련 기사는 여기로). 심지어는 의무 규정이 없음에도 총리가 마스크 불착용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는데, '공동체의 안전'을 명목으로 마스크 착용을 강하게 강제해야 한다 외쳤던 한국인과는 달리 일본인은 암묵적인 규정이나 분위기로 인해 알아서 마스크를 죄다 쓰고 다녔음을 알 수 있다. 이게 일본식 개인주의의 한계다. 마스크 착용이 사회 차원의 룰이 되자 일본인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강제되지 않았음에도 그 룰을 따랐다. 그러다 보니 당국의 방침과는 달리 대중교통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승객을 강제로 하차시킨 버스 회사가 일시 운행 정지라는 행정 처분을 받기도 했다. 물론 동아시아 지역이 유독 바이러스에 민감히 반응해 왔다는 특성을 감안할 때 이에 대해 별다른 저항이나 거부감을 표시하는 이는 거의 없었으며, 오히려 버스 회사와 해당 승무원의 행위를 옹호하는 의견이 주를 이루었던 것으로 보인다.

좌우간 이러한 일례를 통해 일본 개인주의의 핵심 '하라는 대로 해. 그러면 너를 건드리지 않을게.'임을 도출해낼 수 있으며, 달리 말하면 일본 사회에서는 하라는 대로 하지 않는 이들에게 무형의 제재나 압박이 쉽게 가해을 알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일본의 시민 의식은 '일본의 개인주의'가 어떠한지 알면 쉽게 설명된다. 일본의 시민 의식은, 타인에 대한 영향력 행사(라고 간주되는 것)를 최대한으로 배제하려는 일본의 메-와쿠 의식과 더불어 공적 규제와 질서를 철저히 준수함으로써 보장되는 사적 영역의 자유를 의미하는 일본식 개인주의가 결합되어 탄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고로 일본의 시민 의식은 '시민'이란 존재의 역사적 의미를 고려하면 이와 다소 거리가 멀다. 시민(개념)은 분명 소수에 의해 탄생했지만, 그 개념이 전면화된 이상 사회에 의해 구성되는 존재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부여되는 존재기 때문자율과 자발을 제일로 친다. 그러나 일본에 있어 시민이란 자율과 자발의 틀은 지니고 있을지 몰라도 이는 필경 사회적 맥락에 의해 규정된 문화적 요소로 좌우되는 철저히 타율적인 개념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일본식 개인주의와 일본의 시민 의식은 한국인이 보기에는 매우 바람직하다. 왜냐, 한국은 일본과 함께 동양 문화권에 속해 있는데다 유감스럽게도 일본 식민지로 약 36년간 있었기 때문에 그 문화적 속성을 상당 부분 이식받았기 때문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일본인은 거의 늘 조용한 반면 한국인은 목소리를 내는 것에 그다지 거리낌이 없다는 것이다(그러나 한국인이 목소리를 내는 사안 또한 '대중적 관심도'나 '한국 사회의 문화'에 따라 어느 정도 제한되어 있다.).

한국 사회 또한 일본 사회만큼 경직되어 있다는 것을 많은 한국인은 간과하거나 부정하고 있다. 단적인 예시로 '레깅스 논쟁'을 들 수 있는데, 누군가가 자신의 몸매가 여실히 드러나는 류의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 생각하거나 말하는 것은 '타인이 나의 감정이나 시선을 고려하여 옷차림을 갖춰야 한다'는 철저히 한국적인 문화 요소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결코 개인주의적인 사고 방식이 아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레깅스를 입는 이들에 매우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일련의 과정을 거쳐 이는 전혀 자유(주의)나 개인주의와는 무관한 '한국적 사유'임을 확인하고 생각을 고쳤다.


이렇듯 일본인은 수많은 사회적 압력에 순응하고,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당연히 '메-와쿠 의식'에 의거하여 타인의 삶에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는 일본인의 성격상 아무 말도 꺼내지 않겠지만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에서 아웃사이더로 찍히게 된다. 그래서 일본인은 질서와 룰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그들이 안정적으로, 또는 '문제 없이' 삶을 영위하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과연 다를까? 한국인은 과연 문화적 맥락에서 자유로운가? 개인이 온전히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회일까? 여기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그 사람에겐 미안하지만 이는 무비판적으로 자신의 터전을 바라봐 온 결과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겠다. 그런 점에서 한국 사회는 일본 사회와 많이 닮아 있다. 애써 '왜색 논란'이니 '일본(어) 잔재'니 하며 일본을 벗어나려 애써 봤자 정작 중요한 의식의 탈피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물론 한국 사회와 일본 사회는 다르므로 상호간에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점이 있는 건 사실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회는 원하든 원치 않든 연결되어 있기에, 겉으로 드러나는 점이 아닌 이면에 감춰진 점을 직시하고 이를 개선하려 들지 않는 한, 한국인은 언젠가 일본 사회처럼 집단의 개인에 대한 무형의 고강도 압력에 굴복해야만 그곳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표현'언젠가'와 '될 것이다'라고 하긴 했지만, 한국은 사실 그 시작부터 '자유'와 '개인'보다 '사회'와 '집단'이 앞서 있는 나라였다. 그저 이에 문제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 '우리 나라는 참 살기 좋은 나라'라며 자랑을 해 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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