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코로나 시국'에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험성은 정부와 언론, 그리고 학계와 여론이란 '완전한 사각형'에 의해 지나치게 부풀려졌다고 보고 있고, 이 사태를 안전 문제와 연관 짓거나 재난으로 간주하는 것에 강한 문제 의식을 갖고 있지만(←이와 관련하여 일전에 썼던 글 링크를 걸어 놓았다), 현실적으로 바이러스 유행과 방역을 통해 개인과 사회의 의식 구조에 '안전 의식'은 완전히 녹아들었으며, 이번 이태원 사태를 통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번 사태로 '국가가 대중의 안전을 위해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더욱 거세졌다. 여론이 이렇게 한 번 형성되면 되돌리기 쉽지 않고, 국가는 이를 무시할 수도 없다. 언론에서 계속해서 국가 책임론이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명확한 개최(주관)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 개개인의 자발성에 의한 행사에 대해서도 국가가 개입할 여지가 매우 높아 보인다.
이번 일은 분명 참사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 일은 재난이라기보단 '대규모 사고'에 가까우며, 그런 관점에서 이번 사태를 '국가가 개입하지 않아 발생한 재난'으로 간주하려는 시각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과연 국가가 개입했더라면 이번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안타깝지만 그랬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태가 발생한 요인으로 '국가 책임 유기론'을 꼽는 것은 합리적이지도 본질적이지 않다. 그러나 나의 이런 견해와는 별개로(또는 반대로) 여론과 언론의 시각은 완전히 '그런 유형의 재난'으로 보는 쪽으로 기울어 있다. 이는 사회적으로 파장이 상당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에 그 발생 원인으로 '구조적 문제'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완전히 일반화됐기 때문인데, 이런 상황이나 분위기에서는 사건을 다른 시각으로 대하기가 어려워지며, 궁극적으로는 이성적 또는 본질적 논의 또한 어려워진다.
재난이나 대규모 사고가 발생하면 국가의 역할론 및 책임론은 일시적으로 급증하기 마련이나, 이런 일이 여러 차례 발생하면 중장기적으로 국가의 역할이 확대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국가가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안전'을 대가로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를 내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이번 코로나 사태가 딱 그랬고, 이태원 사태에 대한 반응도 마찬가지다.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은 합당한 역할이다. 그러나 그런 명목으로 자꾸 민간 영역에 개입하면 할수록 자율성은 사라지고 강제성과 통제 기반 조치가 늘 것이다. 그리고 이 사태가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다른 시각을 고려할 때, 이를 단지 '국가 역할(책임)론'으로만 몰고 가서는 안 된다고 본다.
일련의 사건으로 아마 앞으로 정부 역할의 확대(=정부 개입)에 신중론을 펴거나 이에 따른 자유와 권리 축소 가능성을 언급하는 이들의 입지는 점점 좁아져 갈 듯하다. 안전 문제와 결부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런 얘기를 꺼내면 꺼낼수록 여론은 '사람 목숨(안전)이 달린 문제인데 어딜 그런 얘길 하느냐' 비난할 것이니 자유와 권리 침해를 우려하는 이들은 계속해서 위축될 것이 자명하다. 마치 이번 코로나 사태 때 방역이나 통제 조치에 이의를 제기했던 이들이 경험했던 것처럼 말이다. 사고란 가능성과 우발적 영역에 걸쳐 있는데, 이를 자꾸 가능성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오게 되면 우발적 성격은 당연히 과소평가되므로 개입과 간섭이 확대된다. 이를 마냥 긍정적으로 볼 것은 아니다.
자유와 권리는 자유주의 및 민주주의, 그리고 이를 보장하는 입헌주의적으로도 매우 중요할 뿐만 아니라 근대 이후의 사회를 떠받치는 핵심 중의 핵심 가치다. 그러나 모두가 경험했듯, 앞으로 (일단 한국 사회만을 놓고 보자면) 자유와 권리란 '생명'이란 다른 절대적 가치에 밀려 제 설 자리를 잃어가고 말 것이다. 이것이 나의 전망이다. 이것이 기우였으면 좋겠지만, 그저 기우로 남지만은 않을 것 같다.
10월 말에 발행했다 취소했던 글로, 한 달이 지나서야 비로소 다시 꺼내놓습니다.
그 이유는 굳이 밝히지 않겠습니다.
다만 어떤 사건에 있어 한 가지 해석과 관점만이 존재해야 한다는 의견은 단호히 거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