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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Nov 16. 2022

네 개의 격언으로 보는, 발전 없는 집단의 특징

공통점 : '우리에겐 문제가 없어. 너(너희)에게 있을 뿐.'

하나.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한국인이라면 거의 다 아는 속담이다. 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했을까? 이는 문제 유발 주체가 십중팔구 집단이 아닌 개인이라는 인식 때문에 나온 말로 볼 수 있다. 속담이란 시대를 거듭하며 세대의 공통 인식이 축적되어 나온 말이므로, 대대로 집단 논리로 개인을 찍어누르는 경향이 얼마나 강했으면 이런 말이 지금까지 전해져 사용되고 있을까 싶다.

무언가가 문제임을 지적하며 개선을 요구하는 사람에게 저 말을 하면 그 사람은 저절로 그곳을 떠나게 될 것이다. 더러워서 떠나는 것도 있겠지만, 떠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가 그 사람을 그곳에 더는 머물지 못하게 할 테니 말이다. 사람을 귀하게 보지 않는 집단일수록, 자정 능력을 상실한 곳일수록 저런 말을 쉽게 입에 담을 확률이 높다.


둘.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린다.'

지면에 있는 미꾸라지가 헤엄칠 때 하도 꼼지락대다 보니 흙탕물이 이는 것을 두고 나온 말로, 한문으로는 '일어탁수(一魚濁水)'라고 한다.

누군가를 저 미꾸라지로 규정하는 것은 다수 논리에 의거하는데, 이 다수 논리란 것이 반드시 옳다는 보장도 없는데다 그저 집단성을 띠고 있단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낙인 찍어 배척하고 심지어 축출하려는 근거로 작용할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더군다나 이 말에는 '저 사람만 없으면 우리 집단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란 전제가 담겨 있는데, 문제 있는 사람을 없애 문제가 해결됐으면 세상이 이 꼴이 안 되진 않았을까?

아, 아마 그리되기 전에 이 세상은 피바다가 됐을지도 모른다.


공교롭게도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와 일맥상통하는 속담인데, 중이나 미꾸라지나 한번 잘못 찍히면 골치 아프게 되는 게 이 나라의 보편적 현상인가 싶을 정도다.


셋.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르라.'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에서 시작했지만 점차 그 세를 넓혀 전 유럽을 지배하였으며 북아프리카 일부와 중동(서남아시아) 일대에까지 그 깃발을 꽂을 정도로 대제국을 이룩했다. 그러다 보니 기본적으로는 정복지의 풍습과 문화를 존중했지만, 법의 적용과 집행에 있어선 엄격했고 또 평등했다. 또한 영토가 넓은 만큼 외부와의 교류 또한 잦았고, 이런 문제로 인해 외국인에게까지 법률을 적용할 필요가 있었으므로 법의 적용 대상 또한 확대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격언이 생겨난 것인데, 이 말이 시대를 거듭하여 사용되면서 지도층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사회와 국가를 장악하려 들거나 외부 세계에 배타적인 대중이 자신들의 문화와 질서를 절대시하여 외집단의 합리적 요구마저 거부하고 묵살할 요량으로 이 말을 내세웠다. 특히 세계화로 인해 범국가적으로 어느 정도 공통된 인식이 확산되었는데, 유달리 자국의 문화 내지 체제를 이유로 '우리만의 것'을 고집하는 이들이 주로 이런 말을 많이 입에 담는다. 이런 집단은 상대적으로(또는 절대적으로) 독단적이거나 억압적일 확률이 높다. 그들에게 있어 '로마'는 유일무이해야 하고, 또 로마야말로 자신들일 테니 말이다.


넷. '악법도 법이다.'

소크라테스가 신성 모독죄로 사형 판결을 받은 후 그를 구출하기 위해 온 친구 및 제자들을 두고 했다는 말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 플라톤의 『대화』 편에는 이런 말이 나와 있지 않다고 한다. 이 말인즉 '악법도 법'이란 말은 날조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가 한 적도 없는 이 말이 왜 이렇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을까? 그 이유를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소크라테스'라는 인물의 후광을 입혀 이 말을 퍼트렸을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말은 법의 특성에서 기인한 측면도 있다. 법의 적용은 공평무사를 원칙으로 한다. 신분의 지위고하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평등하게 적용돼야 하는 것이 법이다. 그런 이유로 법의 제정에는 신중을 기해야 하며, 개정 또한 마찬가지다. 그리함으로써 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막는 것이다.

하지만 이 '안정성'이 보수성을 넘어 경직성으로 변질될 경우 시대의 보편 인식에 뒤떨어졌음에도 여전히 구시대적 가치가 적용된다거나 유력자의 권력 남용으로 적재적소에 집행되어야 할 법이 이상하게 적용되거나 불평등하게 집행될 수 있다. 이를 변호하는 구실 좋은 말이 바로 저 '악법도 법이다'다.


이 말은 '로마에 오면 로마 법을 따르라'라는 말과 상당 부분 연결된다. 만약 로마법이 악법이라면? 그런데 그 로마법의 적용을 받는 이들 중 다수가 이에 어떤 문제 의식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소수에 해당하는 이들과 외부자는 꼼짝없이 '로마법'이라는 이유로 그 악법을 지켜야 한다. 그것이 파멸적 결과를 불러올 것임을 외면하거나 아예 모르는 이들로 인해 그 사회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아무리 누군가가 그렇게 돼선 안 된다 외쳐 봤자다. 폭주하는 기관차를 그 누가 막을 수 있을까? 그 결과는 원했든 원치 않든 결국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모두가 감당해야 한다.


어느 집단/나라에나 문제를 개인 내지 소수의 탓으로 돌리거나 그들의 의견을 틀린 것 취급하는 경향은 있다. 하지만 폐쇄적인 집단/나라일수록 이런 논리가 더욱 쉽게 성립하며 횡행한다.

이 나라 사람들은 흔히 저 옆동네와 윗동네를 일러 폐쇄적이고 독단적이라며 비난하고 조롱하지만, 근 몇 년 간 보아 온 결과 이 나라 또한 만만치 않게 폐쇄적이고 독단적이다. 차이가 있다면, '저쪽'은 소수 또는 한 사람의 뜻에 의해 모든 것이 좌우된다면 '이쪽'은 다수의 뜻에 의해 모든 것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의사 결정 주체가 적고 많은 것은 중요치 않다. 다수건 소수건 판단을 그릇되게 하고, 또 그런 판단이 누적되면 반드시 그 사회는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 문제는 그 대가가 반드시 눈에 보이고 당장 드러나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도 모르고 '권위자(권위체)' 또는 '다수'가 동의한다는 이유로 별 고민 없이 밀어붙이다간 후일 어떤 결과를 맞이할지 모른다. 그게 좋은 결과일 수도, 나쁜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확률은 50 대 50이다. 모 아니면 도 식이라면, 집단 논리로 찍어누르는 해법은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 이는 적어도 '역사란 이름의 경험'으로 증명되어 오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다. 모두를 위한다는 선택이 매번 모두를 위한 결과를 가져다 주었는지를 생각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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