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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Nov 13. 2022

개인이 공동체보다 중시되어야 하는 이유

적어도 동아시아, 그리고 한국에서만큼은.

집단은 늘 개인을 앞서며, 집단성은 항상 개별성을 압도한다. 집단 앞에 개인은 속수무책이다. 그 어떤 다른 목소리도 낼 수 없으며, 그 어떤 이유 있는 항변조차 철저히 무시당한다. 그가 혼자라는 이유로, 대중과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런데도 공동체를 개인보다 앞세워야 한다 주장하는 건, 개인은 늘 공동체의 존속과 안녕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건 영락없는 전체주의적 가치관이다. 아무리 그 이유가 그럴듯하더라도, 개인은 절대 공동체 이상의 가치를 지니지 못하며, 공동체적 가치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전체주의다.

난 그런 이유로 공동체주의와 이를 빙자한 집단주의, 반(反)개인주의에 반대하며, 개인의 자유를 한낱 인간의 이기심이자 방종 취급하는 시각을 절대 거부한다.


한국 사회는 반드시 이 집단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이 집단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래야 한다. 한국의 자유(주의)를 저해하는 가장 큰 요소이 집단주의, 분명 이 나라는 집단주의로 인해 크게 화를 입는 날을 맞이하고야 말 것이다. 아니, 이미 맞이하고 있다. 어느 하나 집단 논리를 앞세우지 않은 성장과 정책 었으며, 그 결과는 손도 쉽게 못 댈 정도로 어마어마한 부작용과 역효과로 돌아와 점점 더 많은 이들을 괴롭히고 있다.


집단주의는 필경 집단을 망가뜨다. 그러나 이것이 '민주'란 절차적 정당성으로 포장되는 순간 그 사회는 수가 인지하지 못한 채 파국으로 향한다.


*'공동체'와 '집단'은 호환되지만 그 의미는 다소 다릅니다. 공동체란 표현은 집단에 조금 더 긍정적인 가치를 부여한 말로서 서로 다른 개체가 한데 어우러지는 것을 이상적인 상태로 규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우러진다는 것은 결국 개별적 가치를 포기할 것을 요구하기에 개인의 자율성과 자유로운 의사 결정에 반할 소지가 다분합니다. 인간은 어울려 사는 존재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그것이 공동체의 대의를 실현코자 개인의 의지를 꺾는 식으로 이행돼서는 안 되며, '함께', '모두'란 말은 이상적으로는 아름다울지언정, 실제로는 유사 이래 인간으로 하여금 같은 뜻을 지닌 이는 모으고 그렇지 않은 이는 배척하며 심지어는 제거하기까지 하는 근거로 작용하였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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