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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Feb 10. 2023

타율성의 내면화

의식 저변에 깊게 스며든 자기통제

2월 10일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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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가 지난 시각, 외출을 위해 옷을 입고 가방을 챙겼다. 이대로 그냥 나가면 좋겠건만, 내 손목엔 늘 그렇듯 마스크 한 장이 걸려 있었다. 대체 왜 이걸 가지고 다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매번 생각은 하지만, 정작 한 번도 두고 나간 적은 없다. 내 소신껏 살리라는 단호한 다짐은 버스 기사가 탑승을 거부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에 번번이 가로막히고, 그렇게 나는 스스로의 얼굴을 가린 채 버스를 탈 준비를 했으며, 버스에 올랐다.


마음으로는 '버스는 고위험시설이 아니며, <당신네>가(또는 '그들') 그토록 위험하다 떠드는 곳에서는 정작 마스크를 쓰지 않는데 이게 무슨 의미냐?'라는 의문을 항상 품고 있으나, 정작 나는 국가와 사회에서 정한 지침을 충실히 따르는 훌륭한 시민이다. 그토록 문제시하는 '규범 준수에 치중하는 사회'에서, 나는 내가 바람직하지 않다 여기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괜히 심통이 나서 버스에 타자 마자 마스크를 코 아래까지 내렸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부질없는 항거다.


다섯 정류장 정도 왔을까? 청소년으로 보이는, 얼굴을 드러낸 이가 버스를 타러 걸어왔고, 아무렇지 않게 버스에 올랐다. 하늘색 마스크로 자신의 얼굴을 가린 기사는 그의 탑승을 막지 않았다. 승객은 단말기에 카드를 찍고 앞쪽 의자에 앉았다.

누군가는 그를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국가의 지침에 순응하지 않는 불량 시민'이라 비난하겠지만, 나는 그를 두고 그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에게 마스크 착용을 종용하지 않은 버스 기사에게 내심 고마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는 왜 저 사람처럼 내 의지대로 행동하지 못하나' 싶은 생각에 씁쓸할 뿐이었다.

그는 네다섯 정류장을 가서 내렸다.


버스에서 내려 목적지인 영화관까지 가는 동안, 마스크는 내 얼굴에 있지 않았다. 6천 원짜리 카라멜 팝콘을 사서 신나게 집어먹었고, 그렇게 영화가 끝날 때까지 나는 거리낌 없이 숨을 쉬어댔다.

상영이 끝나고 집에 오는 버스를 타러 가기 전, 마트에 들러 식료품을 샀다. 객에게 맨얼굴을 내보이는 마트 직원들을 보며 '그래,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의 모습이지' 하고 생각했지만, 정작 내 마스크는 손목이 아닌 턱에 걸쳐져 있었다. '어차피 써야 하니 이렇게 하는 게 편하지'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 직원이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말하지 않는 게 어디냐' 싶어 그냥 넘어갔다. 불과 1월 말까지만 하더라도 상부의 지침에 충실했던 다른 지점 직원이 누군가에게 그리 말하는 것을 들었고, 불쾌했기에, 맘에 쏙 들진 않지만 어쨌든 달라진 상황을 긍정하며 그곳을 빠져나와 1km는 족히 떨어진 정류장으로 향했다.


서울에 다녀온 동생과 합류하여 10분 넘게 기다려 버스를 탔다. 모두가 하얀 마스크로 제 얼굴을 덮은 채 차에 올랐다. 그러다 대여섯 정류장 정도 갔을 때, 한 노년 여성과, 그 일행으로 보이는, 마스크 걸이를 목에 건 채 쓰지 않은 다른 노년 여성이 버스에 올랐다. 같은 노선의 버스였지만 차 번호와 기사는 달랐다. 하지만 그 기사 또한 마스크 착용을 종용하지 않았고, 그렇게 평온함은 이어졌다. 사람들이 일행과 담소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오긴 했지만, 그것이 사람 사는 모습임을 생각하면 싫을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좋았다. 비록 서로의 얼굴을 덮은 마스크를 사이에 두고 오가는 말이라지만, 누군가와 대화할 여유는 있구나 싶어서였다.


며칠 전에도 시내에 나갔다 왔다. 길진 않지만 대학 생활을 같이 했던 후배가 친척 댁에 있다며 같이 밥을 먹자길래 나간 것이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후배와 인사를 나눈 뒤 헌혈을 하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사람이 많아 잠시 서 있었는데, 서너 정류장 정도 지나 뒷문 앞에 앉은 이가 내리길래 자리로 향하던 찰나, 그 사람 얼굴에 마스크가 없는 것을 보았다.

…약간 놀랐다. 그가 젊은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경향상, 그리고 통계적으로 여성일수록 바이러스(감염)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에 그러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인식과 다른 상황을 잠깐 맞닥뜨렸다고 그게 그렇게 놀라웠던 것이다. 자리에 앉은 나는 생각했다. '저 사람 대단하다.'


언제부터 마스크를 벗은 채 이곳저곳 다니는 것이 그리 대단/대담한 행동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그토록 못마땅하게 여기는 '정부'와 그 지침을 당당히 거스른 채 '착용 의무 시설'에 진입하는 이들을 보면 '다른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나 자신을 발견함과 함께 자괴감이 들어 쓰디쓴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나 또한 만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암묵적이면서도 명시적이었던 강제적 지침에 완전히 익숙해지고 말았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긴, 돌이켜 보면 2년 정도 되는 짧지 않은 시간을 나는 '이 사태를 끝내기 위해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정부의 지침을 적극 따라야 한다'라고 생각했더랬다. 지금 와서는 정말 터무니없고 말도 안 되는 발상임을 알지만, 타인을 배려한답시고 누군가에게 나의 사고를 강요하려 들었던 것도 그렇거니와, 과연 그 배려로 이 사태가 종식되었으며, 무엇보다도 이 사태가 그런 걸로 해결될 수 있느냐를 따지자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답이 도출되기 때문에, 불과 몇 년 전 내 모습이 더욱 후회되고 한스럽기까지 하다.

누군가는 '우리 모두가 이 사태의 피해자'라며 좋게 덮자는 식으로 말할지 모르나, 나 자신이 바이러스 유행에 보였던 과거의 태도는, 그저 '상황이 그랬으니 어쩌겠냐'라며 아무 문제 제기 없이 슬그머니 지나가기엔 너무나 공격적이었고 극단적이었으며 파괴적이기까지 했다. 방역 4년차, 이 사회가 감당하고 있는 각종 문제와 현 예상 범위 밖에 있는 미래의 여러 문제를 고려할 때, 절대 다수가 보였던 전체주의적 폭거와 집단주의적 광기는 그저 그렇게 넘길 수가 없는 너무나 위험하고 무서운 '사실'이 아니었던가. 그런데도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다면 이는 인간이 언제고 스스로와 타인에게 한없이 잔인해지는 존재임을 자인하는 꼴이 아닌가?


시간이 흘러, 정부의 당부와 사회·행정적 강제를 백날 따라 봤자 이 사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확신하에, 이런 대처는 잘못됐다고, 그러므로 하루빨리 개개인이 나서서 스스로 일상을 회복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수많은 글을 써 왔지만, 외부로 통하는 단 두 대의 버스를 타기 위해 늘 마스크를 챙기는 나의 모습은 나의 가치관에 정면으로 반한다. 한국인의 보신주의적 심리와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태도, 권위에 순응적인 면모를 그리도 날선 태도로 비판해 왔음에도, 마치 그 모든 비판의 방향이 나를 향하는 듯한, 그리하여 그 모든 것이 실제로는 자아 비판과 다름없음을 확인할 때마다 그 어떤 음료 없이 고구마를 네다섯 개는 욱여넣은 듯한 느낌이 든다.

'왜 나는 내가 그리도 비판하는 모습을 벗어나지 못할까?'

정답은 하나뿐이다. 내 의식 기저에 '마스크' 석 자가 완전히 각인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집단 논리에 순응하지 않으면 언제고 타인의 비판과 비난을 받을지 모르며, 사회 활동 또한 원활히 하지 못할 것이란 두려움이 자동적으로 발동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국가가 정한 대로, 사람들의 인식이 향하는 대로 나 자신의 사고와 행동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자발적 획일화'이며, '타율성의 내면화(내재화)'가 아닌가?


그러나, 나는 분명 이것에 문제가 있고,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명확한 인식을 갖고 있음에도 이대로 행동하지 못한다. 하라는 대로 하는 삶이란, 다른 이의 것이 아닌 곧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일도 외출을 한다. 친구 녀석과 만나기로 해서다. 집과 시내를 이어주는 두 개 중 하나의 노선을 이용하여 도시로 향할 것이다. 아마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동안 내 손목엔 내내 마스크가 걸려 있을 테고, 버스를 탈 땐 마치 이것이 '여권'이나 '통행증'인 양, 기사에게 마스크로 덮힌 내 얼굴을 보일 것이다.


난 그렇게, 내가 그토록 혐오해 온, 또한 극복해야 한다고 부르짖어 온 이런 모습을 누차 답습할 것이며, 2-3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크게 다르지 않음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나는 마스크가 없으면 당장이라도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큰 고통에 빠지거나 심지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듯 버스에서 내 얼굴을 덮은 채 속히 이 답답한 공간에서 내려 부조리한 상황을 벗어나기를 바랄 것이다.


몇 개월 뒤, 끝내 정부에서 '2단계 실내 마스크 의무화 조치'를 해제 바로 그날,

나는 아마 언제 그랬냐는 듯 마스크 없이 당당히 바깥 세계로 향할 것이다.

다만, 지금 내 모습으로 미뤄 보건대, 그것이 진정 의식 밑바닥에서부터 나를 끊임없이 붙잡아 온 이 자기 통제의 완전하고도 완벽한 종결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이번과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는 언제고 모두에게 동일한 행동을 취하기를 요구할 테니까 말이다.

내가 이를 단호히 거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전적인 확신은, 유감스럽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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