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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Mar 02. 2023

대한민국 헌법 제37조 2항의 문제

'조항'과 그 '해석'의 문제

대한민국 헌법 제2장은 '국민의 권리와 의무' 부문으로서, 제10조부터 37조까지는 '국민의 권리'에 대한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제31, 32조는 각각 교육과 노동의 권리/의무에 대한 내용이다). 그 뒤를 이어 납세와 국방의 의무 조항인 제38, 39조가 명시됨을 끝으로 제2장은 마무리된다.


일반적으로 서로 다른 대상이 병렬관계일 경우, 먼저 표기된 대상이 대개 뒤에 위치한 대상보다 선다. 예를 들어, 한국은 중국과의 관계를 일러 한국-중국(한중)관계라 표현(표기)하지 '중국-한국(중한) 관계'라고는 쓰지 않으며, 한국의 좌우에 위치한 두 국가에 있어서도 상황에 따라 '한중일' 또는 '한일중'이란 표현을 달리 사용한다(경향상 한중일이란 표현이 더 많이 쓰인다). 한국이 앞에 나와 있는 것이 한국인에게는 당연하겠지만, 이는 한국인에게 한국이 자국(自國)이기 때문에 '한(韓)' 자가 먼저 나온 것일 뿐, 중국인과 일본인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용법이다.

만약 세 나라 사이에 미국이 껴서 총 네 개의 나라를 언급해야 할 경우, 동맹 관계인 한국-미국, 미국-일본의 관계를 고려하되 미국의 외교/국제적 지위를 더 높게 평가하여 '한미일'이라 표기하고, 중국은 맨 마지막에 위치하는 것이 관례다. 이는 곧 어떤 국가가 앞과 뒤에 있느냐에 따라 자국과 외교적으로 얼마나 긴밀한지, 상대적으로 덜 그러한지를 보여주는 예시인 것이다.


이 말인즉, 헌법 제2장의 명칭인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서 권리가 의무에 앞서 있다는 것은 바로 권리가 의무보다 더 중시되는 가치란 뜻이다. 이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규정한 헌법 1조 1항과, 대한민국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1조 2항에 따른 결과로서, 봉건 시대에는 모두가 군주의 신하로서 이른바 '신민(臣民)'에 해당했으며, 이에 따라 인간에게 부여된 의무는 항상 권리보다 앞섰고, 권리는 사실 권리라기보단 지배 계급(계층)의 시혜(施惠, 은혜를 베풂)라 해야 적합했다. 신민에게는 감히 스스로의 권리를 주장할 권리가 없었기 때문으로, 크게 상하거나 심지어는 죽을 각오로 자신의 억울함을 상위 계급에게 읍소해야만 그나마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니 주권이 민중 개개인에게 있고, (국가)권력은 그들에게서 비롯된다는 민주(民主)와, 권력이 개인에게 집중되지 않고 여러 사람에게 고루 분산되어 있다는 의미의 공화(共和)를 표방하는 '민국(民國) 대한'에서는 군주정이 종식되고 새로운 형태의 정치 체제가 수립되었음을 드러내는 표지(標誌)로서 국민의 권리를 의무의 앞에 두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입법자들이 단지 심심해서, 또는 별 의미 없이 그런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함으로써 새로운 나라가 수립되었다는 정치적 의미를 부여한 것이라 하겠다.


'의무'란 그 자체로 강제성을 띠기 때문에 사람들이 부정적 반응(반감)을 일으키기가 쉽다. 원치 않는 행동을 강요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모든 권위체는 의무에 대한 각종 근거와 그럴듯한 가치를 내세워 이를 정당화한다. 그러나 이런 작업은 별 의미가 없다. 결국 의무는 의무일 뿐으로, '의무'라서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헌법 제2장에는 이 의무에 관한 조항이 매우 부분적으로 삽입되어 있고, 대부분이 권리에 관한 조항이다. 이는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권리가 의무에 앞서는 것이 전제정과 반대되는 새로운 체제인 '민주공화정'에 있어서는 필수적인 사항이어서도 그렇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권리가 태생적으로 의무보다 취약하다는 점 때문이다.

다시 전근대 시대로 돌아가 보자. 당시의 법전은 대개 각종 의무와 이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에 부과되는 '형벌'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었다. 권리 의식이란 것을 가질 수 없었던 근대 이전의 사람들에게 의무는 오히려 당연한 것이었고, 이를 거스른다는 것은 '신' 또는 '하늘'이 부여한 절대 권력을 부정한다는 의미로 여겨졌기에 감히 허용되지 않았으며, 권위에 대한 도전은 곧 반역으로 연결되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인간에게 있어 의무란 그 무엇보다 지우기 쉬운 대상이라는 뜻이다. 힘으로 위압하면 강제로 따르는 존재가 인간이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는 전근대 시대의 종교와 지배 사상으로 합리화되었다. 사람들은 종교와 사상에 맞추어 살았기 때문에 이를 무시할 수가 없었고, 자신들의 사고와 행동을 규제하는 틀을 벗어날 수 없었던 '신민'들은 순전히 하라는 대로 살아가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드디어 '권리'라는 개념이 전면에 등장하고, 이것이 여러모로 구체화되면서 단순히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부르짖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이를 명문화하고, 이에 불변의 권위(=정당성)를 부여함으로써 전근대 시대에 의무가 절대적으로 개인을 짓눌렀던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게 형성되었다. 예전부터 법은 있어 왔지만, 이는 오랜 시간 인간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던 바, 이제는 법이 그런 목적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를 보장하고 이것이 실현되도록 하는 의도로 시행되도록 한 것이 근대 자유주의자들의 지대한 공헌이자 업적이었다.

그들은 권리가 의무보다 앞서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것이야말로 권리가 필연적으로 의무에 쉽게 영향을 받고 또 종속될 수 있음을 인식한 현실적 사고의 산물이다. 힘이 있는 자가 그렇지 못한 자를 사역(使役)하는 게 쉬울지, 그의 권리를 보장하여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쉬울지는 적어도 인간이라면 직관적으로 알 것이다. 당연히 남을 부리는 게 더 쉽고, 한편으로는 그리함으로써 자신의 힘을 느낄 수 있기에 쾌락과 희열에 휩싸이는 것이 인간이란 존재의 단면이 아닌가? 그런데 굳이 구구절절 권리 보장 조항을 법전에 추가하여 그가 이렇게나 자유롭고 고귀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를 지닌다 선포할 이유가 (전제專制) 권력자에게는 없다. 이것이 근대법 형성을 주도한 이들의 생각이었다. 권리는 그 자체로 중요하지만, 동시에 힘의 개입으로 얼마든, 그리고 무기한 침해되고 훼손될 위험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이를 절대적으로 보장하는 한편 명시할 수 있는 권리는 최대한 명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어떤 자유와 권리도 '법 조항이 아니라는 이유(법조문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볍게 넘겨지지 않도록 했다. 이것이 무려 20개조가 넘는 권리 조항이 헌법에 명시되어 있음에도, 구태여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라는, 헌법 37조 1항이란 확인 도장이 찍혀 있는 이유다.


그런데, 국방과 납세의 의무에 대한 조항 전, 헌법에서의 마지막 권리 보장 조항에 이러한 표현이 등장한다. 바로 37조 2항이다.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ㆍ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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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조 2항에 의하면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상기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경우 법률로 제한할 수 있다.

국가안전보장과 질서유지, 그리고 공공복리를 위해 모두의 자유와 권리가 전적으로 제한되는 상황은 내란이나 외환이 발생하는 경우가 아니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소 멀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러한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다. 사실상 현대 사회에서 국가안전보장 또는 질서유지가 필요한 상황은 특정 국가의 침공이나 천재지변으로 가시적으로 드러나면서도 심각한 물리적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아니면 거의 생기지 않는데, 다만 '공공복리'라는 측면은 위의 두 상황과 달라서, 특정 상황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상대적으로 쉽게 자유와 권리 제한의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


공공복리 증진이 '국가안전보장'이나 '사회질서유지'보다는 그 심각성이 덜하다 한들, 이런 이유로 자유와 권리가 제한된다고 해도 문제인 것은, 공공복리를 위해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가 침해된다는 것이며, 그러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오히려 이는 단기적으로는 효험이 있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어도 중장기적으로는 다수 구성원의 복리에 중대한 해악을 끼친다. 애초에 '민주공화정'을 유지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자유와 권리의 철저한 보장인데, 이를 합법적으로든 불법적으로든 제한하게 되면 당연히 이에 결함(결손)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행복한 삶과 안정적인 일상을 위해 '모두'의 자유가 '전적으로' 제한된다는 상황 자체가 행복한 삶과 안정적인 삶에 도움을 줄 리가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공공복리를 명목으로 자유를 제한한다는 것은 쉽게 수용되기 어려운 논리다. 이는 위에서 언급했듯 자유는 외부 대상의 작용(영향)에 취약하므로 한번 손을 댈 경우 결코 원상복구되지 않는다는 사실로 인함이다.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자유의 제한'이란 말만큼 앞뒤가 맞지 않는 말도 없듯, 나의 행복한 삶이 자유와 권리의 행사에서 비롯됨을 안다면 다수의 복리를 위해 이를 제한한다는 것은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여도 본질적으로는 이와 충돌하는 논리인 것이다.


이와 더불어 헌법 37조 2항의 또 다른 중대한 문제는,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경우에도 그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는 마지막 문장의 모호함으로 인해 한번 문제가 생기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단 자유와 권리를 관련 법률로 제한하고 보는 것이 사실상 과도한 자유 침해를 막기 위한 해당 조항이 되레 '독소 조항'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

'권력자가 불순한 목적을 갖고 있거나 상황을 오판하여 자유와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할 경우 해당 조항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할 중요한 단서(근거) 조항이 된다'는 해석은 형식적으로는 맞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어야 맞는다. 하지만 원론적으로 맞는 것과 현실적으로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일단 위 조항에 의거하여 관련 법률이 제정 및 시행되면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즉시 제한되며, 그 법률이 폐지되거나 개정되기 전까지는 최초로 법률에 명시된 수준으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제약을 받는데, 법률 재개정 과정에 일반적으로 드는 시간이 결코 짧지 않음을 고려하면 그것이 담고 있는 문제점이 언제 개선될지는 모르는 일이며, 아예 법률이 개정되지 않은 채 계속해서 발효되어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제한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피해나 각종 폐해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데다 궁극적으로 그러한 조치가 한 사회의 자유도나 권리 의식을 큰 폭으로 저하시킬 수 있음을 고려하면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는 단서 조항은 사실상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로 전락할 수 있음은 얼마든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제한되는 정도는, 순전히 법률에 근거하기보다는, 한 사회의 대중적 심리나 문화적 분위기에 따라 더 크게 좌우된다. 법률 제정자와 시행자는 특정 사회의 문화적 영향력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데, 어떤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보다 집단 차원의 이익을 중시하는 반면, 어떤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모든 이익의 기본이자 전제로 여기므로, 아무리 '민주공화정'을 헌법으로 보장하는 국가라 해도 그 사회 및 문화적 풍토가 어떠한가에 따라 실제로 상이한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앞의 사회에서는 자유와 권리 제한의 상한선이 높지만, 뒤의 사회는 그 상한선이 낮다. 그러므로 사회 분위기에 따라 개인이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행정-입법-사법적 조치가 적용되는 정도에도 차이가 있겠으나, 이러한 조치에 항의하는 태도도 격렬(활발)하거나 소극(미온)적인지가 명확히 드러나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자유와 권리 수호를 외치며 국가의 개입 최소화를 요구하거나 아예 개입하지 말라 요구하겠지만 집단의 이익을 중시하는 이들은 오히려 이러한 반응을 '이기(주의)적'이라 비난하 국가의 적극적 개입을 요구할 것이다. 그렇다면 저항이 강한 곳과 약한 곳에서 권력 기관이 어떠한 판단을 내릴지는 불 보듯 뻔하다.


자고로 '공동체'는 늘 개인 이상의 의미를 지녀 왔고, 그 안정화와 유지를 위해 개인이 봉사해야 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지만, 분명 시대는 바뀌었고, 개인이 존재해야 공동체가 있을 수 있다는 관념이 널리 퍼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관념이 새로운 체제와 정부를 수립한 것과, 그것이 실제로 유의미하게, 그리고 근원적 차원에서 개개인의 인식 기저에 자리잡고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이것이 체제의 토양이 되는 사회와 문화가 어떠한지가 '체제'보다 더 상위에 있는 이유인 것이다. 자유와 권리라는 씨앗이 심긴 토양이 척박하면 그것은 온전히 싹트기 어렵고, 토지가 비옥하면 당연히 무럭무럭 자라날 것인데, 결국 어떤 사회와 문화에서 (체제를 보장하는 역할을 하는) '헌법'이 시행되고 해석되느냐에 따라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다른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어떤 사회가 '개인'과 그 자유 및 권리를 절대시하지 않고 피상적으로만 인식할 경우, 자유와 권리의 내용을 본질적으로 침해할 수 없음을 규정한 2항의 뒷 문장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를 일거에 제한하는 근거로 작용하는 헌법 37조 2항 전체를 효과적이면서도 절대적으로 제어하는 완벽한 브레이크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며, 이는 아무리 그 사회에서 자유-민주(보수주의자들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님)를 압제자의 손에서 되찾은 경험이 있다 한들 크게 달라지지 않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법으로 보장된 자유와 권리의 제한,

그리고 그 정도를 좌우하는 사회·문화적 배경,

그것이야말로 자유와 권리의 가장 큰 잠재적 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 헌법 37조 2항은 취약성과 (자유와 권리에 대한) 위협성을 늘 지니고 있다.




최종수정 : 2023.03.02.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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