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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Feb 28. 2023

내가 어릴 땐

'옛날 사람'의 변천

1910년대생이 그리 먼 존재가 아니었다.

1910년생이신 아빠의 외할머니께서 버젓이 살아계셨기 때문이다.

'유관순 열사보다 여덟 해 늦게 태어나셨다',

어렸을 적 내게 와닿은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비록 구순이 넘은 노령이셨지만,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서 할머니께선 나름대로 당신 할 일을 하셨다.


1940년대생이신 할머니, 내게 '할머니'셨지 노인은 아니셨다.

기껏해야 50대 후반에서 막 60대 초반이 되셨으니까.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남녀 기대 수명은 70대 후반을 넘어 80대에 근접한 상태였으니, 5-60대가 노인으로 여겨지기에는 꽤나 일렀다.

당시에 그런 분들이 주변에 많이 계셔서 그랬는지,

그때의 내게 '노인'이란 개념이 크게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저 나이가 든 사람 정도?

물론 그때만 해도 환갑(회갑) 잔치는 심심찮게 열렸다.


그렇게 막 노인에 근접해가시던 우리 할머니께선,

2004년, 당시 여성 기대 수명인 81세에 한참 못 미치는 만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다.




10년 정도가 흘렀다.

2010년대 초, 외증조할머니가 백수(百壽)를 넘겨 돌아가셨다.

그때쯤 1910년대생은 대부분 고인(古人)이자 고인(故人)이 된 상태였는데, 할머니께서 유독 오래 사셨.

반면,

그때도 1940년대생은 그리 많은 나이가 아니었다.

이제 막 70대에 접어들었거나, 아직 60대 중후반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기준으로 1950년대생은 아직 중년이었다.


(친)할머니의 시계는 만 61세에 멈춰 있었다.




약 10년이 더 흘러 2023년이 됐다.

생존한 1910년대생은 기네스북 등재 대상이다.

1920년대생도 거의 떠나고 없다.

작년에 영국 여왕이었던 엘리자베스 2세가, 중국 주석이었던 장택민(장쩌민)이 만 96세로 서거했으며,

그들보다 한 살 어린 1927년생의 국민 MC 송해가 또한 작년에 별세했다.

90대 후반이 1920년대생이란 사실은,

나로 하여금 세월이 꽤나 흘렀음을 일깨워주었다.


꽤나 정정하다고 생각했던 이모할아버지는

이제 90대 초반의 연세로, 경증 치매 증상을 보이시고

돌아가신 할머니보다 열 살 많으신 이모할머니는, 날로 당신 어머니의 모습을 닮아가신다.




이로부터 10년이 더 지나면,

1920년대생은 완전히 족적을 감출 것이고,

1930년대생도 거의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현재 연예계의 최고령자인 배우 이순재가 1935년생으로,

10년 뒤에 생존해 있으면 무려 만 97-8세다(!).

실로 어마어마한 나이다.

일제강점기를 기억하는 이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잠깐동안 '조선인'으로 살았던 1940년대생이 80대 후반의 고령이 되어 있겠지.


한편,

무엇을 하고 있을진 모르겠으나,

그때 나는 비로소 30대 중반을 넘어선다.

영원할 것 같았던 20대를 지나, '기성세대'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은, 드디어 '노인 세대'에 근접해지시게 된다.

영원히 30대 초반이셨을 것만 같았던 부모님께서 60대가 되신다니,

시간이 흐르긴 흐르는구나 싶어 놀랍기만 할 것이다.

이제 6.25 전쟁을 기억하는 세대는 소수만이 살아 있을 것이고,

전후 한국을 기억하는 이들이 대거 노인이 되어 있겠지.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40년대,

2050년대,

2060년대가 되면

나 또한 비로소 누군가에게 '할아버지'라고 불릴 나이가 된다.

이제 막 태어난 2023년생이 30대 후반이 되는 시점,

그들이 한창 직장 생활에 찌들어 있을 때,

대학 생활을 그리워하며 일로부터의 자유를 노래할 때,

그때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한창 'MZ'로 불리며, 무슨 외계에서 온 존재 취급을 받던 우리 세대가

2040-50년대에 태어난 이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또, 그런 그들이 생각 1990년대생의 모습은?


궁금하다.

그러나 알 수 없다.

만약 내가 그때까지 살아있다면, 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 대가로 세월의 씁쓸함을 매일 곱씹게 되겠지.

글쎄,

날로 달라지는 세상을 대하며 격세지감을 느낄지,

'그놈의' MZ 특유의 적응력을 보이며, 스마트한 노인이 되어 있을지는

가 봐야 아는 일이다.


확실한 건,

시간은 흐른다 사실이다.

만고불변의 진리 앞에, 자유로울 이 누구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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