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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Mar 02. 2023

'3.1절 일장기 게양 사건'에 대한 생각

'표현의 자유'

어제 3월 1일, 세종시 소재 모 아파트 창문에 일장기가 게양되어 관련된 보도가 이어진 바 있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한 추측성 기사가 쏟아졌고, 그가 일본인이라는 보도 또한 있었는데, 도시 특성상 공무원이 많은 세종시에 일본 출신 거주자가 무슨 일로 살고 있나 싶어 의아하긴 했다.


오늘 3월 2일 나온 기사에 의하면 그는 '한국인'이라고 한다. 해당 기사의 내용 일부를 발췌하여 게시한다.

2일 조선닷컴이 문제의 집 주인 A씨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봤다. 그는 “한국과 일본이 과거의 반목에서 벗어나 협력의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취지에서 일장기를 걸었다”며 “단지 깃발을 걸었다는 이유로 온·오프라인에서 제게 가해진 압박이야말로 불법적인 다수의 횡포”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이웃들은 A씨에 맞서 ‘1개월 태극기 게양’ 운동에 나섰다.
A씨는 이날 조선닷컴 통화에서 “나는 일본인 아니라 한국인”이라며 “그저 한국과 일본이 협력 관계로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지지하기 위해 일장기를 걸었다”고 했다. 삼일절을 폄하하거나 왜곡할 의도는 없었다는 게 A씨 주장이다. 그러면서 “한국이 싫다고 말한 적도 결코 없다. 계속해서 앞뒤 상황 다 잘린 왜곡된 보도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단독] 3·1절 일장기 집주인 “난 한국인, 우리집 초인종 테러가 위법”, 조선일보, 박선민 기자, 2023.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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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한다.

그의 발언으로만 보자면 '한국인 엿 먹어라'라는 의도가 아니라 '한일 양국의 우호'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이런 행동을 한 것 같다. 그 정도 각오라면 이런 비난은 당연히 예상했을 것이다. 삼일절이라는 공휴일의 의미와 3.1 만세 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모르지 않는 이상 말이다.


민족주의 경향을 갖고 있거나 민족주의자인 이의 관점에서는 이번 일이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천인공노할 일이다. 나 또한 그러한 생각을 이해하고, 어느 정도 공감한다. '어느 정도' 공감한다고 서술한 이유는, 날마다 민족주의적 견해와 감정을 버리기 위해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선조 국가이자 왕조였던 '조선'을 무너뜨렸으며, 나의 선조였던 '조선인'들을 괴롭혔고 고문했으며 죽이고 또 학살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차마 인간으로서는 하지 못할(하지만 슬프게도 인간이라서 할 수 있었던) 반인륜적 집단 성범죄를 주도했다. 예전의 나는 '혈통으로서의 민족' 관점에서 일제에 분노했고, 그들이 짓밟았던 것이 '나의 증조부모, 그리고 고조부모' 세대였다는 점에 화가 났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그들은 혈통적으로 '조선/한민족'이기 전에 한 인간이(었)다. 침략자 일제가 '조선 민족'을 잔혹하게 짓밟은 것에 화가 나기보단, 한 국가 집단이 다른 국가 집단의 주권을 박탈한 것도 모자라 망국의 유민들을 이등 시민 취급하고 그들의 정체성을 말살하려 들었으며, 그들 스스로가 원하는 방식의 삶을 유지하는 것을 철저하게 방해한데다 자신의 문화와 신념을 지키려던 이들을 조직적으로 색출 및 탄압함으로써 반인간적 행위를 일삼은 것에 분노한다. 일제강점기와 그 시기에 있었던 모든 일에 자꾸 '민족'과 '이민족 침략자'란 개념을 덧씌우면 그들이 인간으로서 당해야 했던 엄청난 억울함과, 저들이 인간으로서 저질렀던 잔혹무도한 일을 온전히, 있는 그대로 조명하기 어려워진단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이만큼이나 더 안타까운 것은, 세계 2차 대전 이후 국제관계가 급변함에 따라 강대국의 논리에 의해 강제로 국토가 반으로 갈렸고, (국제전 성격의) 참혹한 내전까지 발생한 상황에서 그 상처가 치유될 새도 없이 이념 구도에 따라 국제 사회가 반으로 갈리며 '조선인'으로서가 아닌 '한 명의 인간'으로서 사죄와 배상을 받았어야 할 이들이 국가 발전 논리로 인해 무시된 나머지 그 문제가 21세기 하고도 23년째인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리하여 아직까지도 대치 중인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간의 분쟁뿐만 아니라 각자 지지하고 신봉하는 정치 이념에 따라 옆나라 일본을 동맹국으로 대우할지, 적국으로 간주할지가 갈려 여전히 한국 사회 내의 치열하고도 심각한 갈등 요소로 남아 있다는 것이 개탄스럽다.


햔 일본 사회가 '세계 2차 대전'과 '조선 식민 침탈'을 대하는 관점은 한국 사회와 다소 다르다. 그러므로 그런 점은 한국인이 보기에는 매우 못마땅하고 미흡하며 부적절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단지 '한국의 보수주의 이념'을 지지한다는 이유가 아닌, 평화와 번영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일본은 무려 삼국 시대부터 교류해 온 이웃 국가로서 그 관계를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위치에 있기에, 멀게는 임진왜란, 가깝게는 일제 강점기라는 역사적 아픔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과의 우호를 다져야 하는 것은 불가피한 현실이기도 하다(*절대 일본 측의 한국을 향한 우호 증진 노력이 불필요하다 말하는 것이 아니니 오해 없길 바람).

만약 저 사람이 그런 굳건한 신념으로 '삼일절'에 일장기를 게양한 것이라면, 나는 그의 행위를 인정하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 그러나, 그 대답은 표면적인 것일 뿐, 설령 '특정 시기마다 올라오는 한국인의 반일 감정'을 지적하거나 조롱할 목적으로 일장기를 게양했다 하더라도 그의 집 주소를 알아내어 사적 제재를 가한다거나, 초인종을 계속해서 누르는 식으로 개인(또는 그 가족)을 괴롭히는 것은 너무나 치졸하고 졸렬한 처사가 아닐 수 없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일장기를 삼일절에 내걸었다는 이유로 '신상 털이'와 사적 보복(?)을 당하고 있는 당사자. 그러나 다수의 감정에 반하는 행동의 대가라기엔, 대중에겐 그를 단죄할 자격이 없으며, 그가 그러한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그를 골탕먹이거나 괴롭힐 권리 또한 없다. 더군다나 경찰에 신고해서 일장기를 내리게 한다? 그건 합리적이지도 않으며 매우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처사다. 범법 행위도 아닌데 경찰이 무슨 권한으로 당사자를 잡아다가 일장기를 내리게 하나?


그러므로 그에게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대처로는, '아무것도 없다'가 있겠다. 


안 그래도 한국 사회는 그 문화적 요인으로 인해 '표현의 자유'를 서구나 영미권에서 갖고 있는 의미(관념)로 대할 수는 없는 근본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로 인해 표현의 자유를 자꾸 '맥락'이나 '감정'을 들어 무시하고 심지어 불필요한 것으로 여기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인다(정작 자신들이 필요한 경우엔 정반대로 행동한다). 그러나 자유는 그런 감정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대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자유를 감정으로 대하려면 '어딜 감히 나와 우리, 저들의 자유를 함부로 건드려?'라는 저항 의식을 갖는 쪽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올바르다.


모든 '혈통적 한국인'은 일제 치하에 있었던 조선인의 후손이다. 그러므로 과거의 역사와 그 평가, 그리고 역사를 대하는 감정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이는 한국과 조선(북한)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가 마찬가지라서 자국 및 자민족의 정서를 자극할 만한 요소로 역사를 재구성한다. 이것이야말로 '역사는 순수한 과거 이야기'라는 그럴듯한 말이 사실은 거짓임을 증명한다.

나 또한 일제가 저지른 반인륜적 범죄를 다룬 글이나 사진, 영상을 보면 화가 치밀어오른다. 한편으로는 '민족적 감정'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적 감정'으로 그리하게 된다. 그러나 전중(戰中)의 일본과 전후의 일본은 비록 원치 않더라도 다르게 봐야 한다. 당시 전중의 제국 일본에서도 전쟁에 반대하는 이들이 있었듯, 현재 전후 일본에도 일본의 소위 '보통국가화'에 반대하며 현행 '평화 헌법'을 지키려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조선인이 '친일 매국노'가 아니었듯, 모든 제국 일본인이 '자발적 카미카제'이자 전쟁광인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머리와 가슴으로 안다면, 나는 저 사람이 어떤 의도에서 일장기를 내걸었건 간에, 그것이 이 글을 보는 여러분으로 하여금 화가 나게 한다거나 한심스러워 혀를 끌끌 차게 하는 정도의 반응을 보이게 한다면, 그리하여 여러분에게 드러나며 또한 장기적인 물리·정신적 해악을 입힌 것이 아니라면, 그의 행동을 그 누구도 미처 막을 수 없었듯,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 정도로 생각하고 부드럽게 넘기기를 권한다.


불편하고 심지어 화가 나 저놈을 어떻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라도 누군가에게 해를 입힌 것이 아니라면 그냥 넘길 줄 아는 것,

표현의 자유란 그런 것이다.

그래서 보장하기가, 지켜주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는 그가 옳다고 여기는 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비록 그것이 한국인의 '민족 감정'을 부추겼다 하더라도

그것이 나와 여러분에게 무슨 회복 불가능한 피해로 작용한 것이 아니라면,

불편하고 불쾌하더라도, '뭐 어쩌겠냐' 하는 마음으로 넘기는 편이 여러모로 나을 것이다.


다른 기사 한 편의 내용 일부를 공유하며 글을 마친다.


실제로 국기법에는 외국기 게양을 제한하거나 처벌하는 조항이 없다. 세종경찰청 관계자는 “북한 인공기는 이적행위 등의 의도로 내건 게 분명하면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할 수 있지만, 다른 나라 국기 게양은 처벌 대상이 아니다”며 “표현의 자유에 관한 문제”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일장기 게양에 공권력까지 동원된 것은 지나친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각자 의견에 따라 비판은 할 수 있지만, 경찰이 나설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일부 누리꾼들은 “3.1절에 일장기 올린 게 잘한 일은 아니지만, 경찰 불러와서 철거하라는 건 너무하다”, “주민이 보기 불편해서 비판하는 것까지는 이해되지만 경찰까지 와서 말리는 건 공권력 낭비”라고 했다. 이번 일이 ‘인민재판’과 다를 바 없다며 불쾌감을 드러내는 의견도 있었다.

서울경제, <‘삼일절 일장기’ 집주인의 반박 “난 한국인…내가 죄졌느냐”>, 2023.03.02.


<+>

만약 그가 어디서 '욱일기'를 구해서 게양했다면 난 이런 글은 절대 안 썼을 것이다. 오히려 맹렬하게 비난하는 글을 올렸겠지.




최종수정 : 2023.03.02.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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