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 확진자가 날로 경신되고 있다. 2020년 2월 5일에는 그다지 유의미하지도, 위협적이지도 않았던 확진자 수(당시 누적 18명)는 1년 뒤인 2021년 2월 5일(이하 오전 0시 기준)에는 하루에만 370명을 기록했으며, 그마저도 2020년 11월부터 시작된 대유행으로 일일 1천 명 이상의 확진자가 발생한 뒤였다. 그렇게 또 1년이 지난 2022년 2월 5일 현재, 전일(前日)확진자는 36,362명으로 작년 오늘에 비하면 약 100배 가량 증가했다. 아마 6일이 되면 누적 확진자 수는 1백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백신 접종이 2021년 2월 말에 의료진과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처음 진행된 이래 기본 접종이었던 2차 접종률은 2022년 2월 5일 기준 85.9%로 44,092,874명이 이에 해당한다. 맞을 사람은 다 맞은 것인데, '부스터 샷', 즉 추가 접종이 시행되면서 54.5%에 해당하는 27,952,416명이 3차로 백신을 맞았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SARS-CoV-2란 명칭을 갖고 있는데, 이는 곧 급성 호흡기 증후군의 원인인 '사스 바이러스'의 변종이다. 다만 기존의 치료제와 백신으로는 통제할 수 없어 전 세계는 2020년부터 2021년을 거의 공황 상태로 보냈다. 미지의 바이러스는 적게는 수백 명, 많게는 수십 만 명을 단 하루에 감염시킬 정도로 빠르게 퍼져나갔지만이를 막을 길은 보이지 않았다. 극적으로 개발된 여러 제약사의 백신이 감염자 수를 줄여주길 기대했으나 기대는 곧 물거품처럼 흩어졌고, 오미크론 변이가 우세종이 되며 각국에서 역대 최다 확진자가 매일 나오는 형국이다.
여기까지는 조금만 검색하면, 관심을 갖고 있다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정부나 언론 차원에서 다뤄지는 '코로나 바이러스 현황' 자체는 거시적 관점을 기반으로 한다. 지역 사회 감염자는 얼마이며, 그 총수(總數)는 얼마인지 매일 발표하고 보도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거시적 관점 하에서의 개인은 단지 감염되었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나뉘어 방역 체계의 한 부분으로 간주되는데, 달리 말하면 거시적 관점으로는 개인이 이른바 '코로나 바이러스 시국'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를 파악할 수 없으며, 애초에 거시적 관점은 그런 것을 파악하기 위한 관점이 아니다. 그렇다면 '미시적 관점'이야말로 코로나 시기를 살아가는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 것인데, 현재로서는 확진자 개개인에게 어떤 증상이 나타나는지, 그들이 일상 생활에서 겪는 불편함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데에 활용되고 있으며, 사실상 방역 체계가 지속되는 상황상 미시적 관점은 거시적 관점, 즉 '방역(체계)'을 뒷받침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즉 미시적 관점은 현재로서는 '치료 대상'인 개인을 대하는 관점의 역할밖에는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그리하여 '코로나 시기'에 방역만큼이나 그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심리(적) 방역'은 사실상 개인에게 전적으로 전가됐다.감염자 치료는 전담했지만 정작 방역으로 조성된 공포 및 혼란스런 분위기로 인한 각종 마음의 병, 스트레스 등의 정신적 문제는 알아서 다루도록 완전히 떠넘긴 셈이다.
방역은 필연적으로 '방역 대상'을 선정한다. 명목상으로는 '전 국민'이 방역 대상이지만 엄연히 말해 검사를 통해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들이야말로 주요 방역 대상이다. 확진자와 접촉하지 않은 이들은, 누군가는 이런 표현에 동의하지 않겠지만,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해도 무방하다. 다만 국가가 그들에게 취한 조치가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마스크 착용 의무화 행정명령. 당장은 적극적 방역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미감염자('잠재적 감염자')에게도마스크를 쓸 것을 국가 차원에서 요구했다. 물론 기(旣)감염자 및 격리 해제자도 명령 이행 대상에 포함되지만 국가는 감염자 치료에의 여력을 확보하고자 (불필요해 보이는) 모든 이들에게 마스크 착용을 강제했다.
명목상 방역 대상인 모든 국민은 처음에는 바이러스 감염에의 우려로마스크를 하나둘씩 착용했지만, 대규모 집단감염 사태가 터지자 공포감에 휩싸여 너도나도 마스크를 찾았으며, 행정명령까지 발효되자 누구 하나 가릴 것 없이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단지 미세먼지가 매우 많은 날 호흡기를 보호하기 위해 선택적으로 착용했던 마스크는 국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방역 작업을 실시하면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감염을 염려하는 소수를 제외한 그 어떤 이도 자발적으로, 기꺼이 마스크를 쓰지는 않았으리라 본다. 안 쓰면 제재가 가해지니까. 이처럼 국가가 헌법에 명시되지 않은, 그만큼 매우 당연하면서도 세부적인 권리인 '자유로이 숨쉴 권리'를 제한한 것은 국체(國體)의 근간인 헌법과 자유주의 이념에 의거하면 위헌적 소지가 다분하지만, 다른 각도로 보면 '보상적 개념'에 따른 조치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게 무슨 말이냐면 '국가는 개인에게 마스크 착용을 강제한 대가로 방역 조치를 실시하여 빠른 시일 내에 바이러스 유행을 차단하겠다는 일종의 약속을 했다'고 볼 경우 그런 관점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이는 철저히 필요에 의한 약속이자 조치로,정부가 선한 개인의 집합체로서 국민 개개인의 건강을 지극히 염려하여"바이러스에 걸리면 여러 증상에 시달릴 수 있고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으니 소중한 우리 국민 여러분의 건강에 지장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고자 마스크 착용을 강제하오니(??) 따라주시길 부탁합니다." 하고 방역을 시작했다(=온정적 간섭) 보긴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좌우간, 어차피 모든 정부에서 바이러스 대유행을 맞이하여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두 가지가 전부다. 개인에게 알아서 하게 두거나 주도적으로 방역 조치를 취하는 것인데, 전자의 경우 현대 사회의 국가 개념과는 다소 대치되기 때문에 거의 택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공공 보건과 사회 안정을 위해 방역을 실시하는 대신 국민에게 협조를 요청하게 되는데, 그것이 '마스크 착용 강제'라는 초강수로 이어진 것이다. 허나 관점에 따라 협조가 아닌 협박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래서 많은 국가에서 '기본권(자유권) 침해'란 명목으로 시위를 벌이는 것을 우리는 과거에도 보았으며, 지금도 보고 있다. (이상하게 동양권에서는 이런 목소리가 집단 차원에서 나오지 않는데,유감스럽게도 이는 서양에서 동양을 일러 정부에 순종적인 문화권이라고 비난, 조롱하는 근거로 쓰였다.)
국가가 방역에 성공하여 조속히 바이러스 확산을 차단한다면 그것보다 다행스런 일도 없지만, 문제는 바이러스가 순순히 인간의 뜻을 따라주지 않을 때 발생한다. 1918년에 처음 발생한 일명 '스페인 독감' 대확산 이후 전 세계를 강타하여 이렇게 오랜 기간 괴롭힌 바이러스는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건이 처음으로, 2월 5일 기준 385,604,041명이 감염된데다 아직까지 감염될 사람이 훨씬 많이 남았단 점에서 각국의 방역 조치는 완전히 실패했다. 확산을 차단하려 이동을 금지하고 도시를 봉쇄할 경우 확진자는 줄어들(었)지만 경제는 마비되(었으)며, 경제적 문제뿐만 아니라 개인별 심리적 문제가 발생하여 심하면 자살자가 생겨나기도 한다(했다)는 점에서 그다지 효과적인 방책이 아니다. 방역이 3단계로 나뉘던 시절, 우리나라에서도 아예 봉쇄를 해 버리자는 의견이 제기되긴 했으나 이는 국가 산업 근간이 마비되는 결과를 초래하기에 정부에서는 어떻게든 그 단계로는 올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고, 그렇게 나온 게 '.5' 단계였다. 결과적으로는 이도 저도 아닌 방역이 이뤄져 끝내긴 했지만 말이다. 권위주의 국가에서는 실제로 도시를 통째로 봉쇄했으며, 권위주의 국가가 아니라 할지라도 이동 및 영업 (시간) 제한은 심심찮게 가해졌다.
그렇다.
그 결과가 이 모양이다.
아마 이런 것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할 리는 없으나, 여론조사 기관에서 '정부의 방역 조치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느냐' 묻는다면 단언컨대 국민의 최소 60%가 '그렇지 않다'를 택할 것이다. 왜냐, 위에도 언급했듯 일종의 '사회계약론'적 관점에 따르면 정부는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대신 방역 조치를 통해 조속히 바이러스를 차단하겠다 약속한 것이고, 반대로 말하면 국민은 정부에게 자신의 자유를 내어준 대신 조속히 방역 조치를 취하여 바이러스를 차단하라 부탁한 셈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국민이 바란 건 이런 결과가 아니므로 계약 철회로 이어지는 게 다음 수순이 되어야 한다. 허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마스크 착용 의무화 행정명령은 2020년 11월 13일에 발령됐으나 이미 전국적으로 대중교통에서의 마스크 착용은 계도기간을 거쳐 6월(정확히 5월 26일)부터 본격 실시됐고, 공적 일상생활은 마스크 없이는 그 이전부터 할 수가 없게 됐으니 따지고 보면 신천지 집단감염 사태 이래 1년 10개월 정도 마스크를 달고 살아야 했던 것이다. 이렇게 정부는 기본권 제한이란 극단적 조치를 취해놓고서도 모두가 원하는 결과(성과)를 이뤄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는 얼마나 위협적일까?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의 치사율은 0.71%로독감의 0.1%에 비하면 제법 높은 수준이나, 국내 오미크론 감염자 9860명을 분석한 결과 오미크론의 치명률은 0.16%로 델타의 5분의 1 수준이라는중앙방역대책본부의 발표가 있었다 하니 이 정도면 독감을 아주 약간 상회하는 수준으로 약화됐다고 보는 게 맞는다.또한 질병의 특성상 고령층을 제외하면 치명률이 0%에 수렴하는 상황이라 모두에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보기에는 무리인 것 또한 사실이다.
http://ncov.mohw.go.kr/
일부 전문가는 이 정도 수준으로 위중증 비율 및 치사율이 유지되는 것은 백신의 효과 덕분이라 말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요소가 간과됐다. 백신은 분명 질병을 피하거나 질병에 걸려도 위중한 상황으로 진행되지 않게 할 목적으로 접종하는 것이므로, 그 백신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려면 결국 백신 접종자 전원이 적어도 한 번씩은 바이러스와 접촉해야 한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이게 미친 발상이라 할지 모르나, 이건 마치 강도를 피하기 위해 호신용 무기(총기든 둔기든 흉기든 간에)를 지니고 다녔지만, 정작 강도를 만난 적이 없어 쓸 일이 없는 상황과 다를 바가 없다. '이 무기가 나를 지켰다.'고 말하려면 적어도 그 무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상황에 처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면서 이 무기 덕분에 강도를 안 만났다고 말한다면 그야말로 어불성설인 것이다. 즉 마스크와 백신은 상충되는 방역 수단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며, 만약 바이러스가 마스크 착용조차 무력화한다면(실제로 오미크론 감염자와 미감염자가 50cm 내에서 대화할 경우 마스크 착용을 일정 비율로 무력화한다는 연구 결과가 보도됐다) 더더욱 의미가 없다고 봐야 한다. 방역 조치를 완화하거나 아예 해제해버린 국가의 경우 초기에는 통제가 잘 안 돼서 여러모로 골머리를 앓았으나, 그 덕에(?) 자연면역 보유자 비율이 높아졌고, 백신 접종률의 상승과 함께 바이러스 자체도 다소 약화되면서 여러 점을 고려하여 방역 해제란 판단을 내렸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방역 결과는 성공적이라 하기엔 영 찜찜한 수준이다. 분명 확진자 총 수치는 절대적으로 적지만, 오히려 방역 측면에선 아메리카 대륙이나 유럽 소재 국가에 비해 더 큰 사회적 비용을 들이고 있고, 이는 또한국민의 기본권 침해란 본질적 결함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현행 방역 체계를 유지하겠다는 것에서 실소를 금할 수가 없으며, 더불어이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이 방역은 진정 국민을 위한 것인가?
얼마 전 하버드 의대 교수인 스테파노스 케일스(Stefanos Kales)가 한 온라인 플랫폼에 올린 글에는'대다수 아동과 성인에게 코로나19는 심각한 위협이 아니라, 단지 등교와 출근, 여행을 방해하는 성가신 존재일 뿐'이란 구절과 '코로나 증상이 없는 건강한 사람을 검사하는 것은 중단하거나 극적으로 줄일 때"라며 "최근 라디오에서 들은 다른 어느 의사의 말처럼 밭을 갈아 길을 열어놓기보다 눈송이를 하나하나 잡아 눈보라를 막으려는 것과 같다.'는 구절이 포함돼 있었다(최서원 기자, <"젊고 건강하다면 일상 회복 허용할 때"-하버드대 의대 교수>, 뉴스원, 2022.02.04.). 물론 증상이 있는 이들은 회복을 위해 격리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더 이상 인류에게 그리 치명적이지 않은 이 바이러스로 인해 모든 이들이 방역 고려 대상이 되어 일상을 제한당할 필요는 없단 의견을 피력한 것이다.
확실히 밝혀두건대 나는(무조건적으로) 현 정부의 정책 기조를 반대하는 우파 혹은 극우가 아니다. 극우는 자신을 극우라 하지 않지만 우파는 스스로를 우파라 일컫는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난 아예 21세기에 19-20세기적 개념인 좌우 이념을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 여기는 사람이며, 저 '좌파 정권'의 몰락을 간절히 바라는 위치에 있지는 않다.
하지만 '방역'에 있어서는 정부를 강력하게 비판하며 그 오점 또한 지적하려 한다. 현 방역 체계는 즉각 중지되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는 국가 재정을 허투루 쓰는 꼴이 될 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가 감당해야 할 사회적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이미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빚을 내서 근근히 버티거나 아예 폐업 또는 파산하였고, 자영업자가 아닌 이들 또한 어마어마한 내외적 압력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확진자가 일 100명 이하는 나와야 그 효력을 충분히 발휘할 '감염자 동선 파악-접촉자 검사' 시스템(이른바 K-방역)을 무려 하루에 3만 6천 명이 나오는 상황까지 유지한다는 건 도대체가 이해할 수가 없는 처사다. 또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개인의 자유권을 국가(행정)적으로 1년 3개월째 제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게 코미디이고, 유감스럽게도 국민 절대 다수가 정부의 그 불합리한 지침을 따르고 있다. 정부는 국민에게 미안하고 송구스러워서라도 성공적이지 못한 방역 조치에 대해 사과하고 마스크 착용 강제 조치를 취소한 후 온전히 개인에게 맡겨야 할 터인데, 그렇게 하면 곧 '방역 실패'를 자인하는 것과 진배없기 때문에 순전히 공공보건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정치적 입지를 고려해 이 낡고 실패한 방역 정책을 유지한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백신패스라는 비과학적이고 별 소용이 없는 제도를 도입한 것도 문제인데 '안심하고 백신을 맞아 달라' 말하던 그때의 정부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애초에 백신 접종을 강제한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데, 국민의 80% 이상이 2차 접종까지 완료했음에도 중화항체가 크게 증가한다는 이유로 추가 접종까지 요구하는 것이야말로 방역의 수준을 뛰어넘은 '국가적 폭거'나 다름없다는 것을 진정 모르는가? 이미 무증상 확진자의 비율이 상당히 높은 상황에서 그들을 굳이 격리시키고 사적 및 사회 활동을 일절 차단한다는 점이야말로 가장 비합리적이다. 양성 판정만 받았을 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이들, 그들과 접촉한 이들까지 검사 대상으로 삼는 건 그만둘 때가 됐다.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모습은 결코 이상적이지 않으며, 그런 시기는 진작 지나갔다. 중요한 건 감염 고위험군이다. 그들을 중심으로 마스크 착용을 적극 권고하되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2020년 1-2월 수준의 삶으로는 돌아갈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인만 평생 마스크 쓰고 살다 갈 운명에 처할지도 모른다. 쓰고 싶은 이는 쓰면 그만이다. 그러나 나는, 다수의 국민은 이를 바라지 않는다. 본질적 자유를 방역이란 미명 하에 언제까지 박탈당할 수는 없다.
정부에서 뒤늦게 '코로나 바이러스의 계절독감 관리'를 언급했다. 솔직히 별로 환영하지도 않고 기대도 안 된다. 당한 게 있어서 또 문제가 생기면 소위 '위드 코로나' 조치를 철회하고 다시 거리두기 체제로 회귀한 것처럼 언제 말과 정책을 바꿀지 몰라서 그렇다. 하지만 이 방역 체계가 진작 한계에 봉착했고, 더 이상 이로써 국민을 괴롭게 할 수는 없음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아직 (방역 조치를 해제한) 서양 국가와 상황이 다르다"라는 식의 시기상조론운운하는 건 그만두고 국민에게서 빼앗아 간 자유를 하루속히 돌려주기를 강력히 요구한다. 국가는 국민과의 암묵적 계약을 이행하지 못했으니, 국민은 계약 불이행에 따른 대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제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했으면서 국민에게 사과 한 마디 없이 "이번이 3차 유행의 고비(정세균 당시 총리)"라거나 "이번이 오미크론 유행의 기로(김부겸 현 총리)"라며 명절 때마다 해묵은 말을 반복했던 과오를 어찌 씻으려 하나?
비록 바이러스에 따른 위험성은 상존하지만, 상황이 달라졌음을 인지했다면 이에 맞는 효율적 체제로 전환하여 필요한 이들에게는 조치를 취하되 다수의 국민에게는 자유를 돌려줌으로써 더 이상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이를 벌레 혹은 죄인 취급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방역을 통한 이로움보다 방역으로 인한 사회적 손해와 해악이 더 큰 것이 현실이다. 의료진은 계속된 확진자 치료로 탈진한 지 오래고 국민의 삶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으며, 금전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많은 이들이 무너져 있다. 이것보다 더 심각한 일은 없다.
예전엔 아니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이 딱 들어맞는 때다.정부는 이런 위기 상황을 외면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국민의 말에 귀를 기울여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라. 강력히 요구한다. 내게, 국민에게 자유를 반환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