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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Apr 25. 2023

스스로에 대한 신뢰가 낮은 사람은

집단주의 사회의 개인과, 그 사회가 지닌 위험성

집단적 대의나 명분에 몰입/열광함으로써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 한다.

그러나, 이는 비단 개인적 차원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자기결정권이란 당연하고 매우 쉬운 개념인 듯해도 사실 그렇지가 않다. 내가 무언가를 결정할 만한 상황이나 환경이 조성되어 있어야 하고, 그것이 자신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란 (어느 정도의) 믿음과 기대감이 있어야 성립하며 또 유의미하다.


그러나 집단적 대의는 다르다. 대의 실현을 추동하는 이는 무조건 성공을 전제로 하며, 이를 위해 그것이 이뤄질 것이란 강한 확신을 심는다. 그래야만 다수의 개인을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바로 (개인적 차원인)자기결정권과는 다른 측면을 포착할 수 있다. 집단 논리를 수용한 이는, 자기결정권 행사에 따라 개인이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책임의 무게와는 달리, 집단 차원의 명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책임을 '집단' 이름으로 덜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혼자 무언가를 해나가야 한다는 압박감 '여러 사람'과 함께 무언가를 수행한다는 이유로 어낼 수 있다. 그로 인해 개인적 차원보다는 집단적 차원의 목표 설정과, 이를 달성하기 위한 작업을 상대적으로 용이하게 여긴다. 그렇게 하면 설령 목표 달성에 실패하더라도 집단(=다수)이 이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문책이 유야무야되거나, 각 사람에게 고루 책임이 돌아감으로써 '나만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라는 의식이 형성되어 부담감이 경감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집단에게 자기결정권을 양도하거나 전가한다면 스스로의 불안감을 상당 부분 덜어낼 수 있다는 판단하에 자기 자신을 집단에 귀속시키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비단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으로, 이러한 인식은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보편화되어 있다. 즉, 한국인은 개별적 차원의 결정과 이에 대한 책임을 두려워하는 반면, 집단과 다수, 대중의 이름으로 결정되는 문제나 이로 인해 야기되는 결과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부담스럽게, 오히려 상당히 쉽게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근본적으로 집단적 대의나 명분에 의지함으로써 고민과 책임의 문제를 회피하려는 심리가 넓게 퍼져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한국인이 집단주의적 성향을 보이는 것도, 집단주의적 대응에 익숙해져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 해당한다. 물론 오랫동안 이어져 왔던 외부자(일제)의 억압적 통치와 내부 권력자(군부)의 철권통치로 인해 '조직된 개인'으로 행동하고 사고하는 것에 익숙해진 을 간과해서는 안 되나, 책임을 개개인에게 강하게 돌리는 문화, 이로 인해 개별적 의사결정에 있어 부담감을 크게 느끼는 문화가 한국인으로 하여금 이른바 '묻어갈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해주는 집단적 명분에 더 쉽게 매력을 느낀다는 점이야말로 위에 언급된 역사·정치적 측면만큼이나 중요하게 다뤄져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집단적 명분이나 대의는, 이를 이루기 위한 과정에서 심지어 이에 반대하는 개인이나 소규모 집단에 대한 각종 비난과 폭력을 '집단'의 이름으로 정당화할 소지가 다분하, 많은 사람들이 여론과 정책이란 힘을 갖고 소수의 의견을 묵살하는 만큼 이러한 행위에 대한 책임 의식을 저하시킴으로써 '올바르지 않은 행동'에 대한 거부감과 죄책감을 떨어뜨리며,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명분이나 대의를 추구하는 개개인에게 집단의식을 심어주어 더욱 열성적으로 모든 과정에 참여하게 하거나, 상대적으로 덜 적극적인 이들에게도 집단의 목표에 대한 심리적 지향(경향)을 심어줌으로써 다수가 다수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여러 행위를 합리화하고 정당화하게 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인이 집단을 거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정작 집단에 회귀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이 사회가 집단을 본위로 운용되고 있는 관계로 집단에 속하지 않으면 다수의 이름으로 추구되는 대의나 명분 실현에 참여할 기회를 얻지 못해 소외감을 쉽게 느끼게 되기 때문이며, 한편으로는 집단의 목표에 반대함으로써 감수해야 할 각종 비난과 공격적 대응을 회피할 목적으로 그리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한국 사회의 집단에는 이에 소속된 개개인의 결집도에 따라 더욱 큰 규모의 폐단이나 악습이 발생하며, 그 집단이 사회에 발휘하는 영향력에 의거하여 집단성에서 비롯된 문제 해결에 다수가 소극적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인다. 달리 말하면, 특정 집단을 대대적으로 비난하는 모습이 나타날 경우, 이는 해당 집단이 이를 포괄하거나 이와 분리되었다고(별개라고) 여겨지는 '더 큰 집단'의 존속과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기저에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그럴수록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결여되어 있는 사회의 개인은, 더욱더 집단에 속함으로써 그곳에서 발휘되는 집단적 힘에 도취되며, 이는 그 집단을 괴물로 만들어 끝내 사회 전반에 걸쳐 파국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하는 주요인으로 작용한다.


개개인이 집단에 속함으로써 본인의 역량이나 한계 또는 장애 요소를 넘어서는 힘을 발휘하게 되는 상황,

그리고 집단의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행되는 각종 부조리와 부정의가 '집단'의 이름으로 무마되고 은폐되며 심지어 정당화되는 상황,

이것이 집단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이자, 집단주의에 심리적으로 익숙한 한국인이 흔히 저지르는 과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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